광고닫기

최신기사

[발언대] 성장하는 경제, 소외되는 다수

미국 경제는 분명 성장하고 있지만 미국인의 삶은 아니다. 경제분석국(BEA)에 따르면 지난 해 3분기 국내총생산(GDP)은 4.3% 증가했다. 그럼에도 퓨리서치센터 조사에서 미국인 네 명 중 세 명은 경기 침체를 체감하며 살아간다고 답했다.   2025년은 인공지능(AI)이 실험실을 넘어 경제의 중심축으로 자리잡은 해였다. 실리콘밸리는 사상 최대 규모의 자금을 끌어 모았고, 이를 AI 인프라에 집중 투자했다. 엔비디아와 팔란티어 같은 AI 기업들은 기록적인 기업 가치를 경신했다. 기술적으로는 AI 에이전트 시대가 열렸고, 인간과 로봇의 상호작용은 한층 자연스러워졌다. 올해는 AI가 기업 경영과 개인의 일상에 완전히 통합되는 해가 될 전망이다.   고용 시장의 현실은 냉혹했다. 지난해 약 120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으며, 그 중 5만 명은 AI 도입에 따른 직무 소멸의 결과였다. 감원은 테크 업계를 넘어 공공기관, 소매, 물류, 금융 등 화이트칼라 전반으로 번졌다. 공식 실업률은 4%대 중반으로 안정적이지만, 청년 실업률은 10.5%로 치솟았다. 특히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22~27세가 가장 고통을 받고 있다. 이는 단순한 경기 둔화가 아니다. 한 세대의 미래 소득 기반이 흔들리고 있음을 시사한다. 전문가들은 올해 역시 고용 시장의 추가 냉각과 구조 조정을 경고한다.   반면 자본 시장은 호황을 누렸다. AI 기술 확보를 위한 전략적 인수합병(M&A) 규모는 약 2조3000억 달러에 달했다. S&P500은 16.4%, 나스닥은 20.36% 상승하며 변동성을 이겨냈고, 이는 고소득층 자산 증가의 강력한 동력이 됐다. 시장의 관심은 AI의 수익성과 생산성 향상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주요 투자기관들은 성장의 축이 하드웨어를 넘어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분야로 확산될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의 그늘은 기업 파산 지표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났다. 지난해 미국의 기업 파산 건수는 1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고금리와 고물가, 소비 심리 위축의 직격탄을 맞은 비필수 소비재 기업과 소매업자들이 특히 취약했다. 관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각종 비용 절감과 할부 판매까지 도입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평균 식사 가격이 20~40 달러 수준인 중형 식당들의 폐업도 잇따랐다. 이러한 구조적 압박은 올해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현재 미국 경제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지속 가능한 지불 능력(affordability)’이다. 이는 단순한 물가 수준이 아니라, 가계 소득으로 주거, 의료, 교육 등 필수 지출을 감당할 수 있는 실질적 능력을 말한다. 과거에는 소득의 30%를 넘지 않는 주택 상환 능력을 가리켰지만, 이제는 경제적 생존의 기준이 됐다. 이미 오른 물가가 다시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을 기대할 수 없는 만큼, 서민 가계의 부담은 올해도 완화되기 힘들다.   이런 괴리의 근본 원인은 분명하다. 기술 혁신의 수혜가 자본과 고급 인력에 집중되는 반면, AI가 대체하는 일자리는 중하위 소득층에서 먼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소비 지형은 이미 프리미엄화(premiumization) 단계에 접어들었다. 기업들은 전체 소비의 절반을 차지하는 고소득층을 겨냥한 서비스와 상품에 집중한다. 반면 중산층과 저소득층은 일관성 없는 관세 정책과 고물가 속에서 경계로 밀려났다. KPMG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다이앤 스웡크 역시 정부가 발표하는 인플레이션과 GDP 수치가 다수 가계가 체감하는 생활 경제와 상당한 괴리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2026년 미국 경제는 새 연준 의장 인선, 금리 인하 압박, 대법원의 관세 합법성 판결, 유니콘 기업들의 기업공개 재개, 오바마케어 보조금 종료로 인한 의료비 급등 등 복잡 변수를 안고 있다. AI가 창출한 부가 사회 전반에 고르게 확산되지 않는 한, 미국 경제는 거시 지표와 다수 가계가 체감하는 현실의 간극에 고착될 가능성이 크다.     AI 시대의 국력은 기술 개발도 중요하지만 그 성과를 얼마나 넓게 공유하느냐에 달려 있다. 성장은 계속되는데 삶이 나아지지 않는 경제를 호황이라고 할 수 있을까. 레지나 정 / LA 독자발언대 성장 경제 고소득층 자산 고용 시장 청년 실업률

2026.01.20. 18:16

썸네일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