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마당] 내 이름 변천사
사십이 다 된 어머니에게 이미 자식 다섯이 있었다. 그녀에게 내가 들어선 것은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맏며느리라 시부모를 모시고 시동생 시누이가 각각 셋이나 있었으니까. 내가 세상에 나오자 아버지가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하라는 뜻이었는지 ‘미래’ 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아름다울 미(美), 올 래(來).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내 이름은 미래였다. 처음 학교에 갔더니 내 이름이 없었다. 대신 정미애(鄭美愛)라는 이름이 있었다. 동사무소 서기였던 막내 삼촌이 간난 여자아이 이름으로 아름답고(美) 사랑스럽다(愛)가 더 나았는지 마음대로 그 이름을 호적에 올린 것이다. 그 후 나는 학교에서 선생님과 반 친구들이 부르는 이름과 가족이나 동네 친구들이 부르는 두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중학교 때 이사를 했다. 그 동네를 뜨자 나를 미래로 부르는 사람은 가까운 사람들로 한정되었다. 점점 나는 학교에서 부르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정작 나 자신은 ‘미래’라는 이름을 비밀스럽고 숨겨진 보물처럼 여기게 되었다. 친한 친구나 마음에 드는 남자들에게 특혜라도 주듯 은밀하게 그 이름을 알려 주고는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이름을 지키지 못했다. 일찍 사회로 나가 일하게 된 곳은 호텔이었다. 당시 한국사회는 여성의 이름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호텔에 들락대는 사람들의 수준에 따라 내 위상도 올라가거나 내려갔다. 서울손님들은 나를 미스 정이라 불렀고 지방에서는 정양으로 불렀다. 서울 조선 호텔 예약부에 입사하자 부장이 ‘아그네스 정’라는 이름을 내게 주었다. 그때 조선 호텔은 미국 프렌차이즈 회사가 운영하고 있었다. 함께 일하던 미국인 이사나 매니저들이 한국 직원들 이름을 기억하기도, 부르기도 힘들어했다. 그렇다고 본인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하사하듯 영어이름을 만들어 미국 직원들에게 부르기 쉬우라고 던져 준 부장을 나는 좋아하지 않았다. 우리는 일본 제국이 강요한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민족적 전통을 확립하고자 투쟁한 조선인의 후예가 아닌가. 다행히 그 이름은 오래 가지고 있지 않았다. 퇴사하면서 나와 상관이 없게 되었다. 하지만 왜 부장이 내게 아그네스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아직도 모를 일이다. 한 미국 손님이 명찰에 쓰여 있던 나의 영문 이름, M.I.A.E를 ‘마야’로 읽었다. 또 다른 이름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운명처럼 나는 그 이름을 덥석 물어 버렸다. 그것이 미국까지 나를 밀어붙인 것인지, 따라 왔는지 모를 일이다. 미국에서 나는 ‘마야’였다. 미국인들은 남의 이름을 자기네들이 부르기 쉽도록 바꾸려 들지 않았다. 그들은 사람의 고유 이름을 기억하고 제대로 부르려 노력한다. 그래서 ‘내가 당신의 이름을 올바르게 발음하고 있느냐’고도 묻는다. 세월은 내게 또 다른 이름을 내밀었다. 미국에서 새로운 직장을 찾아 옮겨야 할 때가 되자 다시 이름이 바뀔 위기가 온 것이다. 부동산 에이전트 라이선스를 따고 새 일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때는 한국 신문에 에이전트의 사진과 함께 가명으로 부동산 광고를 낼 수 있었다. 얼마 후 광고에 에이전트의 법적 이름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법이 바뀌었다. 한인 사장이 내게 광고에 낼 이름을 다른 것으로 바꾸라고 했다. 미국에서 15년 넘도록 사용한 내 이름 ‘마야’는 인류에서 망해 사라진 마야 문명의 잔재라고 했다. 그 이름으로는 부동산업계에서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란다. 내게 아그네스라는 이름을 던져 주었던 부장을 다시 만난 기분이었다. 나는 무슨 이름으로 바꾸어야 하겠느냐고 그에게 되물었다. 사장이 ‘에이미’라는 이름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또 그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사장의 촉’이라고 했다. 분명 부동산 에이전트로 성공하게 될 것이란다. 나는 단호하게 NO! 라고 대답했다. 그의 촉이라는 것이 찬란했던 마야 문명보다 훨씬 더 형편없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1986년, 미국에 도착했을 때 내 손에는 한국정부에서 발급해 준 여권이 들려있었다. 그 여권 속에 이미 내 성씨(姓氏)가 ‘애들란드(Edlund)’로 바뀌어져 있었다. 나의 성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나는 가족을 철저히 떠나야 했는지 모른다. 이렇게 멀리 와야 내 지난 허물을 벗을 수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인생이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살다보니 이름도 바뀌고 성까지 바뀌었다. 결혼한 한국여자에게 시집 귀신이라는 별명이 붙는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며느리에게 성씨를 내주지 않는다. 한국 며느리들은 친정 성을 가지고 있지만 친정으로 돌아 갈 수도 없었다. 친정 대문은 그녀들에게 다시 열리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어떤 곳에서도 존재하지 않았다. 떠돌이 같은 한국여성의 운명이었다. 애들란드 가문이 그들의 성씨를 내주며 나를 가족일원으로 맞아 들였다. 나는 더 이상 정양도 아니고 미스 정도 아닌 미시즈 애들란드(Mrs. Miae Edlund)다. 성씨까지 받았으니 진정 이집 귀신이 된 것이다. 이제 나는 죽어 구천을 떠돌지 않아도 된다. 갑자기 내 인생에 아름다운 것이 도착하기를 바란다며 ‘미래’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던 아버지가 생각난다. 그 이름은 어떤 서류에도 없다. 이름을 지으며 늦둥이 막내의 얼굴을 보며 미소 지었을 내 아버지. 자신이 지어 준 딸의 이름이 속수무책으로 바뀐 것을 알았을 때 정말 그는 아무렇지 않았을까. 왜 이제야 섭섭했을 아버지의 마음을 달래고 싶어지는 것일까. “아버지, 제가 비록 ‘미래’라는 이름은 잃어 버렸지만 ‘마야’라는 이름에 당신의 성씨를 붙이겠습니다.” 미국에서 ‘마야’라는 이름 또한 별명이었고 가명이었고 애칭이었다. 나는 ‘마야 정’이라는 이름을 나의 필명으로 정했다. 그는 한국과 미국에서 치열한 삶을 살아 온 이야기를 쓴 인물이다. 나는 그 안에 존재한다. 마야 정 / 수필가문예마당 변천사 이름 영문 이름 법적 이름 고유 이름
2026.06.04. 18: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