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마당] 마지막 고추밭에서 듣는다
콩 잎사귀 오그라드는 늦여름 땡볕을 끌어당기는 고추잎들 붉은 숨 몰아쉰다. 먹구름 들이닥치는 마당에 널어둔 곡식 퍼 담듯 병원 유리 창구로 밀어넣을 돈 장만하려고 여인은 붉은 고추 불그스레한 고추들 화급하게 마대에 쓸어담는다 중환자실, 그래프 색깔들이 물결치며 깜빡이던 모니터 화면 수치가 급격히 떨어지고 알람이 울리자 발걸음들 바삐 몰려든다 봄날 굵은 손마디로 연푸르고 가는 모종들 옮겨 심고 농약 은색 분무기 짊어지고 한번 더 들어설까 이랑 따라 머리 뜯긴 채 흐느끼는 고추 줄기들 산발한 잡초들만 발돋음한다 옹달샘 버드나무에서 비명 같이 지르는 매미 소리들 옥수수 대궁들 목이 메어 몸을 트는 밭두렁에 큰 장화 발자국들 흙속에 묻혀 가고 한 뙈기 밭, 두메 산골에 타오르는 통곡 소리들 산비둘기들도 숨어서 운다 권정순 / 시인문예마당 고추밭 마지막 고추밭 고추 줄기들 중환자실 그래프
2025.10.16. 18: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