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서 뭐 하세요?’ 낯선 질문 하나가 불현듯 내 삶에 찾아와 머릿속에 둥지를 틀더니 쉬이 떠나지 않는다. 그 질문은 나를 어린 시절로 이끌었다. 작은 것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두 눈을 크게 뜨고 사람들이 뭐 하는지 유심히 살피며 다녔다. 짐짝처럼 버스에 실려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한밤중에도 불을 밝힌 고층 빌딩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동네 어귀에서 장기를 두며 목소리를 높이는 어른들을 보면서도 ‘거기서 뭐 하세요?’라고 묻곤 했다. 물론 입 밖으로 낼 용기는 없었지만, 그 질문은 늘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살다 보니 어느 순간 그 질문이 사라졌다. 이제는 사람들 하는 것을 보면 굳이 묻지 않아도 뭘 하는지 웬만큼은 알아차릴 수 있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고, 내 삶 챙기기도 벅차 남의 일에까지 관심을 둘 여유를 잃어버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세상과 다른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조금씩 흐릿해지면서 누가 어디서 뭘 하든 더 이상 궁금하지 않게 되었는데, ‘거기서 뭐 하세요?’라는 질문이 이번에는 나를 향해 되돌아왔다. ‘거기서 뭘 하다니? 정말 몰라서 묻는단 말인가?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데, 남의 나라에 와서 이만큼 살려면 얼마나 노력했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 혼자 푸념하며 넘겨 보려 했는데, 이번에는 연말을 맞아 이 질문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고 자신을 위로해 왔지만, 지나고 나니 아쉬움만 가득하다. 그때는 최선이라고 믿었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한 채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도대체 거기서 뭘 했던 걸까.’ 이 질문을 던진 사람은 박정민이라는 배우다. 지금은 이름만으로도 알만한 유명인이 되었지만, 그 자리에 서기까지 적잖은 시간을 견뎌야 했던 사람이다. 그가 보잘것없고 변변하지 못한 상태를 속되게 일컫는 ‘찌질이’라고 자신을 부르던 시절, 그는 ‘찌질하다’의 반대말은 ‘특별하다, 잘 나간다’가 아니라 ‘찌질했었다’라고 정의했다. ‘찌질하다’라는 현재형 꼬리표를 ‘찌질했었다’라는 과거형으로 바꾸는 순간 찌질한 인생은 지나간 이야기가 되고, 찌질함을 벗어나 새로운 사람이 된다는 비밀을 그는 알고 있었던 게다. 오랜 기다림 속에서 갈고 닦은 내공으로 주변을 살피던 그가 이렇게 말했다. “가만히 보면, 모두가 의외로 살아 있다.” ‘의외’라는 말이 그리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 까닭은 그만큼 살아남기 힘든 세상임을 알기 때문이다.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박수받아야 마땅한 이들에게 그는 ‘거기서 뭐 하세요?’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 후 능글맞게 말했다. ‘거기서 뭐 하세요? 뭘 하시든 고맙습니다’라고 말이다. ‘거기서 뭐 하세요?’라는 별것 아닌 질문에 한참 동안 괴롭힘을 당했는데, ‘뭘 하시든 고맙습니다.’라는 담담한 감사의 고백 앞에 마음이 순식간에 녹아버렸다. 올 한 해도 각자 삶의 자리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버티고, 애쓰고 수고한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도 이 말이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도 있었을 것이고, 견디기 힘든 시간도 있었겠지만, 인내하면서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올 한 해 어디서 뭘 하셨든 고맙습니다.’ 이창민 / 목사·시온연합감리교회열린광장 현재형 꼬리표 동네 어귀 고층 빌딩
2025.12.29. 19:16
고층 빌딩 외벽에 고립된 청소원들 구조 LA다운타운 고층 빌딩 외벽과 유리를 닦던 청소원들이 타고 있던 곤돌라 고장으로 고립됐다가 구조됐다. LA소방국은 사고는 23일 오전 10시 20분쯤 사우스 브로드웨이 스트리트 400블록의 25층 자리 건물에서 발생했으며 오전 11시 청소원 2명을 안전하게 구조했다고 밝혔다. [KTLA캡처] 김상진 기자사설 면단독 청소부들 구조 고층 빌딩 스트리트 400블록
2022.12.23. 2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