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침에] 우리집 관식이
노란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핀 제주도가 눈에 아른거린다. 36년 전 신혼여행지가 제주도였다.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남자 주인공 ‘관식이’는 가족을 향한 지고지순한 헌신과 책임감으로 인기를 끌었다. 소위 ‘관식이 신드롬’이라는 단어까지 유행할 정도로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을 끌어냈다. 말보다는 묵묵한 행동으로 사랑을 보여주는 남자로 ‘관식이 같은 남자랑 결혼하고 싶다’라는 여성도 많다고 한다. 나는 우리 부부를 ‘로또 부부’라고 부르곤 했다. 로또를 사본 사람은 알 것이다. 로또가 대부분 ‘꽝’이라는 것을. 혈액형이 같은 걸 빼고는 하나도 맞는 것이 없었다. 기억하기도 힘든 아주 먼 옛날 일이긴 하지만 하늘이 내린 인연이라 믿고 복권을 긁듯 설렌 적도 있었다. 인생살이 모진 풍파를 오랜 시간 함께 헤쳐온 배우자로서의 ‘의리’ 외에 무엇이 더 남았을까, 싶었다. 그런데 인생의 영원한 반려자로 여생을 함께할 사람이라고 가슴 깊이 새길 일이 일어났다. 나는 겁이 많다. 내 손으로 내 손가락을 바늘로 찔러 피를 보는 것이 힘들었다. 자가 혈당 채혈기를 사 두고도 사용이 겁나서 시험지의 유효기간을 넘겨 버리기 일쑤였다. 다행히 과학의 발달로 연속혈당기(Continuous Glucose Monitor)가 나와서 사용한다. 센서를 팔에 부착해 실시간으로 혈당을 측정할 수 있다. 어떤 음식을 먹을 때 혈당이 오르는지 안 오르는지 추이를 알려주어 식생활을 조절하게 한다. 나침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식사와 운동, 수면이 혈당에 주는 영향을 알 수 있다. 고혈당과 저혈당일 때 경고 알람이 울려 대처를 할 수 있게 돕는다. 당뇨를 가지고 사는 삶은 불편하다. 음식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나는 음식 참기가 제일 어렵다. 약으로 당뇨가 조절되겠거니 했으나 오산이었다. 복용 중인 약을 바꾸었더니 한밤중에 저혈당이 와서 연속혈당기가 알람을 울린다. 새벽 3시에 저혈당의 위험을 미리 알리는 경고음이 울렸다. 남편이 우유 한잔과 참외를 깎아와서 준다. 혈당을 읽어주는 핸드폰을 남편 것와 내 것을 연동시켜 알람을 듣고 대처를 한 거였다. 오랜만에 맛보는 뭉클한 순간이다. 친구들과 외식으로 스시와 빙수, 붕어빵까지 먹었더니 남편한테 무엇을 먹고 있느냐고 묻는 전화가 온다. 집에서도 밥 먹고 나면 실내 자전거 타라고 잔소리한다. 내 당뇨병 지킴이가 되기를 자처하며 유튜브에서 식사조절 팁과 운동법을 찾아 부지런히 알려준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원인이고 남편의 잔소리가 제일 큰 스트레스라며 불평하곤 했다. 마음속 깊이 나를 위하고 있음을 이번 일로 깨닫게 되었다. 무뚝뚝해서 다정함이나 상냥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지나고 보니 든든한 울타리 역할을 해온 남편이다. 말이 없어도 행동으로 보여주는 수고와 사랑을 이제는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고나 할까. 안 맞아서 로또가 아니고 수많은 사람 중에 당신을 만난 것이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고 기적인 ‘로또’라고 한다면 오글거린다고 하겠지. 최숙희 / 수필가이아침에 우리집 관식이 우리집 관식이 관식이 신드롬 식사조절 팁과
2025.06.29. 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