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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철딱서니 없는 일상

올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나의 네 자매 부부는 동해안 쪽으로 사흘간의 여행을 다녀왔다. 몇 년 만이냐 함께 여행 다녀온 지가, 다들 감격해 하며 꿈에도 잊지 못할 추억 쌓기에 여념이 없었다. 사달이 난 것은 마지막 날 오대산 국립공원 주차장에서다. 자매들끼리 한차, 남편들끼리 한차를 타고 와서 나는 남자들 상황은 몰랐다. 그런데 멀찍이 뚝 떨어져서 걸어오고 있는 형부와 막내 여동생 남편인 주서방 사이에 묘한 냉기가 감지되었다. 갸웃했더니 언니가 남자들이 참 철딱서니하고는 하며 피식 웃는다.     사연인즉 운전대를 잡은 막내 주서방이 일행의 걷는 시간을 줄이려고 공원 들어가는 입구 쪽에 차를 대려고 하는데, 형부가 조금 있으면 그늘이 되는 저쪽 나무 밑에 세우라고 주장을 좀 강하게 한 모양이다. 마지못해 빙 돌아와 주차한 주서방도 투덜대는 막내 동서를 바라보는 형부도 심기가 편치 않아 분위기가 저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얼마 전 바로 그 철딱서니 없는 일이 나에게도 일어났다. 운전대를 잡은 남편이 교회 주차장에 차를 댔을 때 왜 나갈 때 편한 자리 두고 나무가 막고 있는 자리에 차를 대는지 모르겠다면서 꽁시랑거렸다. 가만 듣고 있던 남편이 평소답지 않게 표정이 싹 바뀌면서, 하이힐 신은 내가 많이 걸으면 힘들까 봐 교회당 가까운데 댄 것이라며 남의 속도 모르고 잔소리한다며 화를 냈다. 그래도, 하면서 한마디 하려다가 마음이 불편하면 예배를 제대로 드리기가 어려울 것 같아 아니 그냥, 하면서 꼬리를 내렸다. 하지만 하이힐을 신지 않을 때를 위해 내 생각을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내 속에서 꼼지락댔다.   다음 날 아침 친구 남편의 생일 축하를 위해 네 가정이 만났다. 생일을 맞은 친구의 미국인 남편은 한국말을 알아듣지는 못해도 우리와는 대충 분위기로 통하는 편안한 사이이다. 생일 축하 인사 후 소소한 일상의 대화를 나누다가 나의 어제 일이 떠올라 ‘아니 글쎄’를 서두로 주차장 사건을 토로하게 되었다. 미국인 남편을 둔 친구가 크게 웃더니 미국부부들도 똑같이 겪는 문제라며 바로 그 부분을 다룬 미국 코미디 스토리를 들려주었다.     한 남편이 주차장에 들어서면 곁에 앉은 아내가 이런저런 이유로 저쪽이 더 좋은데 왜 이쪽이냐 종알댄다. 상한 마음이 일상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주차할 때면 둘 다 예민해지고 그러면서도 반복되고 그러다가 부부 위기를 맞게 되고 결국 카운셀러를 찾아갔다. 남편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것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카운셀러에게 그 남편이 말하기를, 혼자 운전해서 주차장에 들어설 때는 전혀 예민해지지 않고 아주 편안하다. 그 말에 관객들이 공감한다는 듯 배를 잡고 웃었다는 사연이다. 그날 함께한 친구들 모두 “맞네”, 즐겁게 웃으며 “우리 좀 참아야 해” 로 일단락이 났다.     아내만 남편에게 간섭하느냐, 그런 것은 아니다. 어쩌다가 내가 운전할 때면 남편이 주차 가이드를 하려고 든다.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좋은 자리일 때도 있지만, 나의 좋은 자리의 기준이 자기와 다르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 같다. 하, 그러고 보니 남편이 할 말을 내가 하고 있다. 가끔 이렇게 도사가 되어가는 듯하다가도 내 주장을 슬그머니 펴고 싶어진다. 주차장에 들어서면 눈 딱 감아야 하나 생각 중이다. 오연희 / 시인이 아침에 철딱서니 교회 주차장 주차장 사건 막내 주서방

2022.10.26. 18:30

[이 아침에] 진땀 나는 인공지능 시대

교회 창립기념일 날 누군가가 기부한 물티슈를 교인 한 사람당 한 박스씩 선물로 받아왔다. 제법 묵직한 박스 안에 작은 물티슈가 100팩 이상 들어있다. 웬 횡재인가 싶어 그날부터 아무 곳이나 눈에 띄는 대로 청소하기 시작했다. 부엌, 화장실, 가구, 마룻바닥 할 것 없이 향긋한 물티슈의 세례를 받았다.   그러다가 주일날 교회에 가려고 차를 타자 차 안에 먼지가 쌓인 게 보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남편과 내가 차 안의 인테리어와 터치 스크린을 속속들이 반짝거리게 닦았다.   아뿔싸 스크린 잠금 설정을 한 후에 물티슈로 닦아야 하건만 그냥 대고 마구 문질렀더니 AI가 헷갈렸나 보다. 명령을 너무 여럿을 받아 혼동이 왔는지 차가 달리는 데는 이상이 없으나 에어컨과 히터 등의 시스템에 오류가 생겼다. 더운 날인데 남편이 등에 땀을 뻘뻘 흘린다. 좌석의 열선이 최대치로 작동하고 있는데 꺼지지 않는다고 한다. 차 안 에어컨은 추울 정도였는데 그것도 강약 조절이 안된 채로 교회에 당도했다.   주차를 하고 예배실로 갔는데 주차담당 장로님이 차에서 소리가 나고 차 밑에 물이 흥건하다고 알려주신다. 예배는 시작했는데 차의 에어컨이 계속 켜지고 팬이 도는 중이다. 휴대폰의 컨트롤러로 끄고 켜지면 다시 끄고 하느라 예배는 물 건너갔다.   내 나쁜 머리로 인공지능(AI)과 겨루려니 식은 땀만 났다. 교회 주차장에서 시간을 버리고, 해결 못하고 예배실로 돌아오니 목사님이 설교의 마지막 부분을 선포 중이셨다. 한국과 미국은 소돔 같이 부유한 나라가 되었지만 순결함을 잃고 돈과 재물만 따르게 되었다며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씀이셨다. 뜨끔했다. 차가 걱정스러워 예배를 놓친 내게 하는 말씀 같았다.   4년 전 전기차를 처음 샀을 때 기계 세차는 하지 말라고 해서 그동안 잘 지켰다. 차 외관만 손걸레로 닦고 안쪽은 대충 두었더니 먼지가 쌓여 공짜 물티슈로 열심히 닦다가 이런 변을 만난 것이다. 이런 체험으로 하나 배웠다. AI는 물티슈를 싫어하는 게 확실하다.   지난 겨울 한국에서 두 달간 체류할 때 식당에서 로봇이 서브하고, 은행 지점 대신 키오스크에서 일을 보고, QR코드로 메뉴를 선택해서 카드로 결제해야 음식을 먹을 수 있어 모든 게 낯설었다. 미국에서의 삶이 훨씬 아날로그적이고 인간적이었다. 기계조작이 서툴러 뒷줄에 선 사람들에게 미안했다. AI가 좋고 편리한 것인지 나는 아직도 판단이 안 선다.   30년 이상 가지고 있던 집 전화번호를 없앴다. 한국의 부모님이 내게 연락할 때 쓰시던 번호인데 두 분 모두 천국에 계시니 쓸모가 없어진 탓이다.   집 전화를 오래 고집하던 나도 모바일 번호만 쓰게 된 걸 보니 세태에 따라 느리게나마 AI 시대로 진입 중인가 보다. 진땀 나는 AI 시대. 이정아 / 수필가이 아침에 인공지능 진땀 인공지능 시대 공짜 물티슈 교회 주차장

2022.06.29. 21:17

[이 아침에] 진땀 나는 인공지능 시대

교회 창립기념일 날 누군가가 기부한 물티슈를 교인 한 사람당 한 박스씩 선물로 받아왔다. 제법 묵직한 박스 안에 작은 물티슈가 100팩 이상 들어있다. 웬 횡재인가 싶어 그날부터 아무 곳이나 눈에 띄는 대로 청소하기 시작했다. 부엌, 화장실, 가구, 마룻바닥 할 것 없이 향긋한 물티슈의 세례를 받았다.   그러다가 주일날 교회에 가려고 차를 타자 차 안에 먼지가 쌓인 게 보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남편과 내가 차 안의 인테리어와 터치 스크린을 속속들이 반짝거리게 닦았다.   아뿔싸 스크린 잠금 설정을 한 후에 물티슈로 닦아야 하건만 그냥 대고 마구 문질렀더니 AI가 헷갈렸나 보다. 명령을 너무 여럿을 받아 혼동이 왔는지 차가 달리는 데는 이상이 없으나 에어컨과 히터 등의 시스템에 오류가 생겼다. 더운 날인데 남편이 등에 땀을 뻘뻘 흘린다. 좌석의 열선이 최대치로 작동하고 있는데 꺼지지 않는다고 한다. 차 안 에어컨은 추울 정도였는데 그것도 강약 조절이 안된 채로 교회에 당도했다.   주차를 하고 예배실로 갔는데 주차담당 장로님이 차에서 소리가 나고 차 밑에 물이 흥건하다고 알려주신다. 예배는 시작했는데 차의 에어컨이 계속 켜지고 팬이 도는 중이다. 휴대폰의 컨트롤러로 끄고 켜지면 다시 끄고 하느라 예배는 물 건너갔다.   내 나쁜 머리로 인공지능(AI)과 겨루려니 식은 땀만 났다. 교회 주차장에서 시간을 버리고, 해결 못하고 예배실로 돌아오니 목사님이 설교의 마지막 부분을 선포 중이셨다. 한국과 미국은 소돔 같이 부유한 나라가 되었지만 순결함을 잃고 돈과 재물만 따르게 되었다며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씀이셨다. 뜨끔했다. 차가 걱정스러워 예배를 놓친 내게 하는 말씀 같았다.   4년 전 전기 차를 처음 샀을 때 기계 세차는 하지 말라고 해서 그동안 잘 지켰다. 차 외관만 손걸레로 닦고 안쪽은 대충 두었더니 먼지가 쌓여 공짜 물티슈로 열심히 닦다가 이런 변을 만난 것이다. 이런 체험으로 하나 배웠다. AI는 물티슈를 싫어하는 게 확실하다.   지난 겨울 한국에서 두 달간 체류할 때 식당에서 로봇이 서브하고, 은행 지점 대신 키오스크에서 일을 보고, QR코드로 메뉴를 선택해서 카드로 결제해야 음식을 먹을 수 있어 모든 게 낯설었다. 미국에서의 삶이 훨씬 아날로그적이고 인간적이었다. 기계조작이 서툴러 뒷줄에 선 사람들에게 미안했다. AI가 좋고 편리한 것인지 나는 아직도 판단이 안 선다.   30년 이상 가지고 있던 집 전화번호를 없앴다. 한국의 부모님이 내게 연락할 때 쓰시던 번호인데 두 분 모두 천국에 계시니 쓸모가 없어진 탓이다.   집 전화를 오래 고집하던 나도 모바일 번호만 쓰게 된 걸 보니 세태에 따라 느리게나마 AI 시대로 진입 중인가 보다. 진땀 나는 AI 시대. 이정아 / 수필가이 아침에 인공지능 진땀 인공지능 시대 공짜 물티슈 교회 주차장

2022.06.27.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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