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팔레스타인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이민세관단속국(ICE)에 쫓긴 컬럼비아대 한인 학생 정윤서씨는 마크 루비오 국무부 장관이 추방 대상으로 직접 지목한 두 명 중 한 명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15일 지역매체 더 시티(The City)에 따르면, 연방정부 관계자들은 루비오 장관이 추방 대상으로 직접 지정한 두 명의 영주권자 중 한 명이 정씨였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나머지 한 명은 역시 시위에 참가했다 이민당국에 체포된 컬럼비아대 대학원생 마흐무드 칼릴이다. 지난 11일 정부 측 변호사들이 제출한 메모에 따르면, 루비오 장관이 쓴 메모에는 “정씨가 계속 미국에 머무르면 미국에 심각하게 부정적인 외교 정책적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적혀 있었다. 정씨의 변호인 측은 국무부 장관이 언급하면서 갑작스레 정씨가 이민당국에 쫓기게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씨는 지난달 5일 컬럼비아대 버나드칼리지에서 열린 친팔레스타인 시위에서 체포, 정부행정 방해 및 치안 방해 혐의로 기소됐다. 이틀 후 국토안보부(DHS)는 정씨와 칼릴의 정보를 국무부에 공유했고 루비오 장관이 추방 대상에 올린 것으로 파악된다고 더 시티는 전했다. 정씨는 이후 뉴욕남부연방법원에 트럼프 행정부의 조치가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연방법원은 이민당국에 정씨에 대한 구금 및 추방 시도를 일시 중단하라고 명령했다. 한편 이런 가운데 팔레스타인 출신 영주권자이자 컬럼비아대 학생인 모흐센 마흐다위 학생도 전날 버몬트주에서 체포됐다. 그는 시민권 면접을 보기 위해 버몬트주 ICE 현장센터를 찾았다가 체포, 구금됐다. 김은별 기자컬럼비아대 국무장관 컬럼비아대 한인 컬럼비아대 버나드칼리지 컬럼비아대 대학원생
2025.04.15. 21:13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친팔레스타인 시위 가담 유학생의 추방 방침을 밝힌 가운데, 국무장관도 외국인 추방 확대 가능성을 언급해 파장이 예상된다. CBS뉴스에 따르면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16일 “(정부가 반이스라엘 시위 주동자로 지목한) 마흐무드 칼릴은 추방될 것이고,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라며 “추방 대상이 단지 학생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칼릴은 팔레스타인계 활동가로, 지난 8일 이민세관단속국(ICE)에 체포돼 루이지애나의 연방 이민 구금시설로 이송됐다. 국무부가 그의 학생비자를 취소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후 칼릴이 영주권자임이 확인된 뒤 영주권 역시 취소했다. 루비오 장관은 “국내 팔레스타인 무정 정파 ‘하마스’ 지지자들의 비자와 영주권을 취소해 추방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칼릴이 하마스를 지지했다는 명확한 증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또한 루비오 장관은 “하마스 지지자뿐만 아니라 테러조직으로 지정된 외국 범죄조직 소속 인물들도 추방 대상”이라며 “미국에 들어와 범죄를 저지르거나 국가 안보와 공공 안전을 위협하는 인물은 모두 퇴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토안보부(DHS)는 인도 국적의 컬럼비아대 박사과정생 란자니 스리니바산의 학생 비자도 하마스 지지 활동을 이유로 지난 5일 취소한 바 있다. 스리니바산은 지난 11일 자진 출국했다. 한편, ICE는 법원 제출 문서에서 칼릴이 “미국의 외교적 이익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추방 사유가 된다고 밝혔다. 칼릴 측 변호인은 “이번 체포가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와 절차적 적법성을 침해한 것”이라며 사건 기각을 요청했다. 강한길 기자국무장관 유학생 유학생 추방 외국인 추방 추방 도널드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 미국 LA뉴스 LA중앙일보 강한길 미주중앙일보 영주권 하마스 비자
2025.03.17. 20:50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마코 루비오(53·사진) 연방 상원의원(플로리다)을 국무장관에 내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11일 뉴욕타임스(NYT)는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 트럼프 당선인이 국무장관을 루비오 의원에게 맡길 생각을 굳혔다고 전했다. 루비오 의원은 트럼프 당선인이 이번 대선에 출마하면서 한때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로 고려했던 정치인이다. 1971년생인 그는 플로리다주 하원에서 정치 인생을 시작, 2010년 첫 연방 상원의원 도전에 성공해 지금까지 자리를 지켰다. 쿠바계 이민 가정 출신으로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서 바텐더 아버지와 호텔 청소부 어머니를 둔 자신의 '아메리칸드림'을 내세워 지지를 호소했고, 강경 보수진영 정치 세력인 '티파티'에 힘입어 당선됐다. 이후 루비오는 2016년 대선의 당내 경선에서 트럼프 후보와 경쟁하다 플로리다 경선에서 패배한 뒤 사퇴했다.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로 선출된 뒤로는 그를 줄곧 지지해 지금은 트럼프 당선인의 대표적인 충성파 측근으로 꼽힌다. 루비오 의원은 중국과 이란 문제 등 외교·안보 분야에서 강경한 목소리를 내 '매파'로 분류된다. 〉〉관계기사 한국판 김은별 기자 [email protected]중국 국무장관 트럼프 국무장관 상원의원 내정 트럼프 당선인
2024.11.12. 21:21
학교를 28개월만 다닌 에이브러햄 링컨이 1861년 대통령으로 취임했을 때 동부 귀족들의 냉대가 심했다. 그를 도울 막료조차 찾기 어려웠다. 링컨은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윌리엄 수어드(William Seward·사진)를 국무장관으로 임명했다. 수어드는 뉴욕 주지사와 상원의원을 지낸 거물이었다. 그 무렵 러시아는 크림전쟁에서 이기고도 빚에 쪼들리는 입장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로부터 7000㎞ 떨어진 알래스카를 다스릴 의지도 여력도 없었다. 언제인가는 건설해야 할 시베리아 횡단 철도의 공사비도 부족했고, 어차피 알래스카는 영국령 캐나다에 합병될 운명이라며 체념하고 있었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영토가 탐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알래스카를 차지하면 적국인 영국(캐나다)을 포위하는 효과도 있어서 전략적 가치가 작지 않았다. 알래스카의 광물 매장량이나 어족 자원은 당시에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가 알래스카 매매 의중을 드러내자 수어드는 재빨리 링컨 대통령과 상의하고 매입을 서둘렀다. 면적 172만㎢에 가격은 720만 달러였으니 평당 0.014센트였던 셈이다. 그런데 의외로 상원의 반대라는 난관에 부딪혔다. 그들은 “수어드의 냉장고(Seward‘s icebox)를 왜 사야 하느냐”면서 “수어드의 바보짓(Seward’s folly)”이라고 빈정거렸다. 수어드는 우선 자기 돈으로 알래스카를 매입하는 계획도 생각해 봤으나 링컨이 반대하고 자금 사정이 만만치 않자 상원의원을 매수하기로 했다. 마침 자본이 다급했던 주미 러시아 공사(E. von Stoeck)가 매수 자금을 빌려줬고, 상원을 설득해 매입에 성공했다. 링컨은 알래스카를 밟아보지도 못하고 암살되는 바람에 공로는 다음 대통령에게 넘어갔다. 지도자의 자질은 앞을 내다보는 안목이다. 그는 중국 상하이 총영사(조선 공사 겸임)를 지낸 조지 수어드의 형이다. 신복룡 / 전 건국대 석좌교수신 영웅전 알래스카 국무장관 수어드 국무장관 알래스카 매매 윌리엄 수어드
2024.09.09. 21:13
공직자의 삶이란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할 때면 나는 딘 러스크(1909~1994) 미국 국무장관의 사례를 든다. 러스크는 1931년부터 4년간 로즈 장학생으로 선발돼 옥스퍼드대에서 철학과 정치경제학을 공부했다. 수업이 시작되기 15~20분 전 미리 교실에 들어가 교수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별명이 엘리야였던 그는 한때 목사가 되고 싶었다. 졸업식에서 ‘세실(Cecil) 평화상’을 받은 그는 귀국해 밀스 칼리지에서 교수로 근무했다. 스스로 수재라는 자부심을 품던 로즈 장학생은 박사학위 논문을 쓰지 않고 글에 각주를 달지 않았다. “우리는 남의 글을 읽고 그를 참고해 쓰는 것이 아니어서 우리의 주장이 곧 학설이다.” 그들은 괴벽스럽고 까칠한 인물들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러스크는 1940년에 대위로 다시 입대해 인도-미얀마-중국 전구에서 복무하다가 전쟁성으로 전보됐다. 거기서 정보국을 창설하고, 작전국 참모과장으로 활약했다. 이때 윗선으로부터 “인도차이나 반도가 중국 북쪽에 있는지 남쪽에 있는지 알아보는 정도의 일을 했다”고 회고록('As I Saw It', 1990년)에서 투덜거렸다. 러스크는 한국전쟁 뒤에 록펠러 재단 이사장으로 근무하다가 봉급이 25분의 1로 깎이는 것을 감수하면서 국무장관에 발탁됐다. 1961년부터 1969년까지 존 F 케네디와 린든 B 존슨 대통령 행정부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직업’을 즐겼다. 국무장관 재임 중에도 동네 세탁소에 가서 아줌마들과 25센트 동전을 넣으며 세탁했다. 은퇴할 때는 소득세 신고 자료와 지인들의 연락처가 담긴 수첩만 들고나왔다. 정계를 은퇴한 뒤에는 조지아대에서 강의했다. 부부 가운데 한 사람은 살아남아 자식들을 돌봐야 한다면서 평생 아내와 한 비행기를 타지 않을 만큼 섬세한 사람이었다. 큰일을 하다 보면 가정에 소홀하다는 말도 괜한 소리다. 신복룡 / 전 건국대 석좌교수신 영웅전 국무장관 러스크 러스크 국무장관 로즈 장학생 인도차이나 반도
2023.12.24. 18:00
미국 국무장관 국무장관 이스라엘
2023.10.11. 20:04
조 바이든(가운데) 대통령이 27일 워싱턴DC 국립대성당에서 진행된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부 장관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있다. 이날 장례식에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 등 전현직 정치인과 관료 1400명 이상이 참석했다. [로이터]올브라이트 국무장관 대통령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장례식 매들린 올브라이트
2022.04.27. 17:15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이 지병인 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84세.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미소 냉전 종식 시점부터 2001년 9·11 테러 발생 즈음인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외교·안보 정책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다. 그는 클린턴 행정부 1기(1993~1997) 때 유엔 주재 미국 대사를 맡았고, 2기(1997~2001년) 임기 때는 외교 정책을 총괄하는 국무장관에 올랐다. 첫 여성 국무장관 기록을 세운 것이었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확장을 옹호하고 발칸반도의 집단학살을 막기 위해 동맹의 개입을 촉구해온 인사로 통한다. 또 핵무기 확산 억제를 추구하며 전 세계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옹호한 인물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북한 비핵화 문제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그는 2000년 10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특사로 방미한 조명록과 논의 끝에 북미 공동코뮈니케 발표를 이끌었다. 직후에 그는 평양에서 김 위원장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올브라이트 국무장관 여성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 김정일 국방위원장
2022.03.23. 20:41
공화당 소속의 영 김 캘리포니아 연방하원(39지구) 의원이 최근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 케빈 맥카시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 전국구 스타 의원 데빈 누녜즈 등 중진 의원들과 세계 인권 옹호를 주요의제로 한 회동을 가졌다. 김 의원은 외교위원회 대표로 라이스 장관 등과 논의하면서 미국이 독재 국가들에 맞서 인권옹호에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 김 의원 제공]국무장관 라이스 국무장관 케빈 라이스 장관 캘리포니아 연방하원
2021.11.09. 20:20
국무장관 장례식 국무장관 장례식 콜린 파월
2021.11.05. 20: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