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현장에서 땅을 파는 기계인 ‘굴착기’를 ‘굴삭기’ 또는 ‘포클레인’이라 부르기도 한다. 셋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굴삭기’는 일본의 대용 한자에서 유래한 것이다. 일본은 한자 획수가 많으면 뜻이 다르더라도 발음이 같은 것을 찾아 획수가 적은 글자로 바꾸어 사용하곤 한다. 굴착기(掘鑿機)의 ‘착(鑿)’과 굴삭기(掘削機)의 ‘삭(削)’이 [사쿠]로 발음이 같다 보니 복잡한 ‘鑿’ 대신 ‘削’을 가져와 ‘굴삭기’로 쓰게 된 것이다. 여기서 착(鑿)은 삽으로 판다는 뜻이고, 삭(削)은 칼로 깎는다는 의미다. 국립국어원도 1956년 일본에서 한자 제한에 따라 기존 ‘굴착’이라는 단어가 ‘굴삭’으로 대체됐고, 이것이 우리나라에도 유입된 것이라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국어원은 ‘굴삭기’가 일본어 표현이므로 ‘굴착기’로 바꿔 쓰라고 권하고 있다. 관련 법령도 ‘굴삭기’에서 ‘굴착기’로 바뀌었다. ‘포클레인(Poclain)’은 프랑스 건설기계 제조 회사의 이름이다. 회사명이 굴착기를 가리키는 말로 일반화된 것이다.우리말 바루기 굴착기 굴삭기 프랑스 건설기계 한자 획수가 한자 제한
2022.06.27. 18:24
올 한해 국내외 뉴스를 되돌아보노라면 수에즈 운하에 꽉 끼었던 에버기븐(Ever Given)호가 이리저리 겹친다. 지난 3월 23일 해상교역의 급소에 좌초해 글로벌 물류 위기를 불렀던 컨테이너선 말이다. 22만t급 초대형 선박이 좁은 수로에 대각선으로 갇혀 옴짝달싹 못 한 초유의 사건이었다. 수천 척의 물동량을 멈춰 세운 이 배는 세계적 관심 속에 각종 밈(meme·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사진이나 영상)도 탄생시켰다. 할 일들 사이에 치여 있는 자신, 나아가야 하는데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불가항력을 빗대는 식이었다. 탈레반 점령 후 카불 공항에서 탈출을 모색하던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심정도 그렇지 않았을까. 철조망 너머 미군들에게 아이라도 받아달라고 던질 때 다른 선택지란 없었다. 고향에서 수만 리 떨어진 폴란드 국경 숲속에서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중동 난민도 다르지 않다. ‘난민 밀어내기’를 국제사회 압박으로 활용하는 벨라루스 독재 정권의 덫에 빠져 한기와 굶주림에 떨고 있다. 만신창이 된 나라를 벗어나 미국 불법 입국을 시도하다 리오그란데 강둑에서 채찍 든 국경수비대에 쫓겨나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밀항하던 보트가 전복됐는데 양쪽 해경으로부터 구조되긴커녕 “돌아가라”고 내침 당한 이들 역시 옴짝달싹 못 하는 에버기븐 신세다. 시베리아가 불타고 독일이 대홍수로 잠기는 등 이상 재해 속에 어쩌면 올 한해 지구 전체가 에버기븐이었을지 모른다. 온실가스를 부르는 화석연료를 대안에너지로 바꿔야 한다는 요구에도 불구하고 기후정상회의(COP26)는 제자리걸음을 반복했다. 남태평양 섬나라 투발루의 외무장관이 수중연설로 호소했지만 소용없었다. 팬데믹이 누그러질 조짐을 보이자 전 세계는 억눌러온 소비와 성장을 향해 앞다퉈 달려갈 뿐이다. 방역과 경제회복이라는 두 과제 사이에서 각국 정부는 대각선으로 낀 채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오미크론 변이가 덮치면서 내년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에버기븐호가 다시 움직이기까진 일주일이 걸렸다. 뱃머리가 박힌 운하 제방에서 모래와 흙 수만㎥를 퍼냈고 예인선 수십 대가 동원됐다. 그 사이 우리 눈길을 끈 또 다른 장면이 있다. 길이 400m, 폭 60m 골리앗 선박 앞에서 묵묵히 제방 흙을 퍼내는 굴삭기였다. 압도적인 덩치 차이는 ‘코로나19로 인한 스트레스 vs 하루 한 번의 산책 허용’ 등 또 다른 밈으로 번져나갔다. 불가항력적인 삶의 장애 앞에 할 수 있는 건 우공이산(愚公移山)뿐이란 걸 그렇게 자조했다. 내년도 올해처럼 다사다난할 것이다. 그리고 각자의 ‘묵묵한 삽질’ 또한 계속될 것이다. 수에즈 운하의 굴삭기처럼. 강혜란 / 한국 중앙일보 국제팀장J네트워크 수에즈 굴삭기 수에즈 운하 운하 제방 남태평양 섬나라
2021.12.23. 18: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