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마당] 작은 오라버니의 기일
오라버니가 돌아가신지도 어언 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2020년 12월15일 기일을 맞이하여 감회가 무척 새롭다. 12월은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기 때문에 희비가 엇갈리는 달이기도 하다. 그해에 나는 한영문 수필집 ‘잊을 수 없는 스코필드 박사와 에델바이스의 추억’이란 수필집 출간을 준비하고 있었다. 오라버니는 축사를 써주시고 갑자기 영면하셨다. 마음이 너무 아팠고 슬펐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 통화에서 오라버니는 스코필드 박사님에 대한 수필을 출간하게 되어 매우 기쁘시다며 흐뭇해 하셨다. 오라버니가 미국 유학의 장도에 오르셔서 김포 공항에 마중을 나가게 되었을 때 스코필드 박사님이 김포공항까지 환송하시겠다며 마중 나오셔서 너무나 기뻐하셨다. 그때에 함께 찍은 사진을 기념으로 나의 책에 올리게 되었다. 오라버니는 계시지 않지만, 대한민국 학술원 도서관에 스코필드 박사님에 관한 나의 책 ‘잊을 수 없는 스코필드 박사와 에델바이스의 추억’을 기증하게 되었다. 다음 글은 2018년 7월 20일 문화일보 이민종 기자가 쓴 오라버니에 대한 글을 이곳에 올려 본다. 올해 창립 64주년을 맞은 대한민국학술원은 학술 발전에 공적이 있는 학자를 국가 차원에서 우대 및 지원하는 기능을 맡고 있다. 대한민국학술원법에 따라 설립된 간판 국가학술기관으로 인문, 사회, 자연과학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150명의 석학이 망라돼 있다. 기초학문 종사자들에게는 최고 명예직이자 학술인 명예의 전당으로 꼽힌다. 2년간의 부회장직을 거쳐 지난 3월 제37대 회장에 선출된 김동기 회장은 학술원사에 새 기록을 세웠다. 학술원 최초의 경영학자 출신 회장이자 1호 고려대 출신 회장이다. 찬반 개표 결과는 112명 투표에 찬성 89표(79.5%). 김 회장은 청년 시절부터 경영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전교 수석으로 합격했던 고려대 상과대 상학과를 1958년 졸업한 후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마치고 귀국한 게 1964년 서른 살 때다. 이때 펴낸 첫 저서 '현대 마케팅원론'은 단숨에 마케팅 분야의 베스트셀러로 주목받았다. 1960년대 시장론·판매론이 대세일 정도로 마케팅 불모지였던 국내에 미국식 마케팅을 도입했다. 그가 일찍부터 뛰어난 두뇌와 전문성을 인정받았음을 보여주는 이야기 하나. 뉴욕대 경영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해, 한 학기를 다녔는데, 당시 고려대 학장이던 정수영 교수로부터 초청 제의가 왔다. 고려대가 한국 최초의 미국식 경영대학원을 설립하려 하는데 조교수로 임용할 테니 설립을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김 회장은 막 박사과정에 들어갔는데 어렵다고 했다. 이번엔 유진오(1906∼1987) 고려대 총장이 직접 나서서 '삼고초려(三顧草廬)' 친필 편지를 보내왔다. 대선배, 어른들의 여러 차례 요청을 더는 거절할 수 없어 귀국해 설립을 마무리했다. 그 후 다시 유학을 가려고 유 총장의 후임 총장에게 말했더니 이번엔 미국에 가지 말고 우리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으라고 강력히 권유했다. 그가 1974년 고려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배경이다. 2016년 석좌교수로 퇴직할 때까지 그는 고려대에서 봉사했다. 김 회장은 국내 최초로 미국식 물류관리(PDM)도 소개했다. 상공부 유통근대화 추진위원회의 핵심 멤버로 한국 최초의 슈퍼마켓, 할인판매점, 편의점, 쇼핑몰 및 대규모 물류단지 개설, 백화점 직영체제 및 상품권 발행, 소비자보호법 제정 및 소비자 신용카드 제도 도입 등 국내 유통근대화 정책 및 실행계획 수립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했다. 국내 물류 혁신과 유통현대화를 거론할 때 김 회장을 빼놓을 수 없다. 이런 공로로 대통령 표창도 받았다. ▶1934년 경북 안동 출생 ▶고려대 상학과, 미 뉴욕대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Harvard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고려대 경제학 박사 ▶고려대 경영대학장, 국제대학원장, 국제 교류 위원장, 국제대학원 석좌교수, 일본 와세다(早稻田)대 교환교수 ▶한국경영학회장, 대한민국학술원 부회장 ▶세계 인명사전 '마르퀴즈 후즈 후' 등재 ▶고려대 학술상, 올해의 교수상 수상.’ 오라버니는 원래 시인이 되고자 했다. 안동고등학교 2학년 때 그 당시 문학 월간지로 유명했던 ‘학원’ 문예지가 개최한 시 경연대회에서 전국 최우수상으로 시 ‘기(Flag)’가 뽑혔었다. 한국전쟁 때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큰 오라버니와 함께 작은 오라버니는 나의 문학 멘토가 되어 주셨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격을 도야시킨 훌륭한 스승이자 지도자였다. 오라버니를 그리면서 시 한 수를 썼다. 종소리 되어 청천벽력처럼 나의 가슴을 후벼 판 말 한마디 “오빠 돌아가셨어!” 너무나 급작스레 떠나시다니 며칠 전에 안부 전화 올렸는데…. 나의 새 책에 축사를 써 주셨는데 유언처럼 되다니 오빠의 맑은 음성이 호수에 파문을 그리듯 내 가슴 깊은 곳에 여울져 오네 아버지 대신 훈육하시고 스승처럼 문학의 꿈을 심어주신 나의 멘토 대한민국 학술원 회장을 두 번이나 연임하신 자랑스런 오라버니 나의 정신적 지주가 무너져 내린 날 통곡하고 오열해도 맨눈으로 다시 뵐 수 없으니 어이하리 갈기갈기 찢어진 이 아픈 가슴 눈 감으면 떠오르는 오빠의 얼굴 아른거려 오빠는 나를 위하여 종을 울리고 떠나간 사람 그 종소리가 내 마음속에 여운(餘韻)으로 감도네 그 여운 하늘길로 이어져 그 언젠가 그곳에서 뵈오리 김수영 / 수필가문예마당 오라버니 기일 스코필드 박사님 오라버니가 유학 뉴욕대 경영대학원
2025.12.25. 1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