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다 보면 어떤 나라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나라의 대표적인 음식을 맛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음식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그 지역의 자연환경과 역사, 그리고 사람들의 삶이 녹아 있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접시 음식은 때로 한 권의 역사책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튀르키예를 여행하면서 필자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도 바로 그런 음식이었다. 그것은 바로 케밥(Kabab)이다. 케밥은 단순히 고기를 숯불에 구운 요리가 아니다. 그 안에는 중앙아시아 초원을 떠돌던 유목민의 삶과 오스만 제국의 역사, 그리고 오늘날 튀르키예 사람들의 일상이 함께 담겨 있다. 그래서 케밥을 이해하는 것은 곧 튀르키예라는 나라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된다. ◆불 위에서 태어난 음식 케밥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튀르키예 사람들의 조상인 튀르크족의 삶과 만나게 된다. 이들은 오래전 중앙아시아의 광활한 초원을 이동하며 살던 유목민이었다. 이동이 잦았던 그들에게 복잡한 조리법은 필요하지 않았다. 대신 가장 간단하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음식을 준비했다. 그 방법은 바로 고기를 꼬치에 끼워 불 위에서 굽는 것이었다. 양이나 염소를 잡아 고기를 잘라 꼬치에 끼운 뒤 모닥불 위에서 익혀 먹는 방식이다. 이렇게 탄생한 음식이 바로 케밥의 원형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튀르크족은 서쪽으로 이동해 오늘날의 아나톨리아 지역에 정착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케밥은 점점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제국의 음식이 되다 케밥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다양한 요리로 발전한 것은 Ottoman Empire 시대였다. 오스만 제국은 유럽과 중동, 북아프리카까지 넓은 영토를 가진 거대한 제국이었고, 다양한 문화와 식재료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궁정 요리사들은 고기를 굽는 방식에 향신료와 허브를 더했고, 지역마다 독특한 케밥이 탄생했다. 그중에서도 남부 도시 아다나에서 시작된 아다나(Adana Kebab**은 오늘날까지 튀르키예를 대표하는 케밥으로 꼽힌다. 하지만 케밥의 매력은 단순히 음식의 맛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 나라의 역사와 도시 풍경 속에서 더욱 생생하게 살아난다. ◆튀르키예에서 만난 케밥 지난 1월, 필자는 튀르키예 일주 여행을 할 기회가 있었다. 겨울의 튀르키예는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지중해의 따뜻한 풍경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차가운 바람이 불었지만, 도시의 골목마다 풍겨오는 숯불 향은 여행자를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다. 여행의 첫 도시는 이스탄불이었다. 유럽과 아시아 두 대륙을 연결하는 이 도시는 역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특별한 의미를 가진 도시다. 아침에는 소피아 대성당(Hagia Sophia)와 블루모스크(Blue Mosque)를 둘러보았고, 오후에는 오래된 시장인 그랜드 바자르(Grand Bazaar)을 천천히 걸었다. 시장 골목을 걷다 보면 향신료 냄새와 함께 고기를 굽는 냄새가 자연스럽게 여행자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그날 저녁 필자가 처음 맛본 케밥은 바로 회전케밥( Doner Keba)이었다. 길거리 음식으로 유명한 이 케밥은 커다란 고기 덩어리를 수직으로 세워 천천히 회전시키며 구워내는 방식이 특징이다. 이 독특한 조리법은 19세기 오스만 제국 말기에 등장했다고 알려져 있다. 회전하며 구워지는 고기의 겉부분을 얇게 잘라 빵이나 라바쉬에 싸 먹는 방식은 간편하면서도 풍부한 맛을 만들어 냈다. 흥미로운 사실은 도네르 케밥이 세계적인 음식이 된 데에는 터키 이민자들의 역할이 컸다는 점이다. 특히 독일로 이주한 터키인들이 도네르 케밥을 빵 사이에 넣어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이 음식은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오늘날 베를린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도네르 케밥 가게가 있는 도시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갈라타 다리에서 고등어 케밥 이스탄불에서 가장 인상적인 음식 경험은 갈라타 다리(Galata Bridge )근처에서였다. 다리 위에서는 사람들이 낚시를 하고 있었고, 다리 아래에는 수많은 음식 노점이 줄지어 있었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이 바로 고등어 케밥 (Balık Ekmek), 즉 숯불에 구운 고등어를 빵에 넣어 먹는 음식이다. 전해지는 이야기 중에는 튀르키예 공화국의 영웅이자 초대 대통령인 무스타파(Mustafa Kemal Ataturk)가 이스탄불을 방문했을 때 갈라타 다리 근처에서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는 고등어 케밥을 보았다고 한다. 그는 호기심에 직접 이 음식을 먹어 보았고, 그 소박하지만 깊은 맛에 크게 감탄했다고 한다. 차가운 겨울 바람 속에서 따뜻한 고등어 빵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그 고소한 맛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 순간 여행자는 이 음식이 왜 이스탄불의 상징적인 길거리 음식이 되었는지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카파도키아에서 떠오른 생각 여행이 계속되면서 필자는 중앙 아나톨리아의 카파도키아(Cappadocia)로 향했다. 기암괴석과 동굴 도시로 유명한 카파도키아는 마치 다른 행성에 온 듯한 풍경을 보여준다. 새벽에는 열기구가 하늘을 가득 채우고, 낮에는 오래된 동굴 교회와 마을을 탐험할 수 있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여행자들은 작은 식당에 모여 다시 케밥을 먹는다. 숯불 위에서 익어가는 고기 냄새는 하루 종일 이어진 여행의 피로를 잊게 만든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 나라의 풍경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나라 사람들이 무엇을 먹는지를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음식으로 읽는 한 나라 이야기 여행을 하다 보면 우리는 종종 유명한 관광지를 찾아다니지만, 어떤 때는 한 접시 음식이 그 나라를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케밥 역시 그렇다. 중앙아시아 초원의 유목민들이 모닥불 위에서 구워 먹던 고기에서 시작해 오스만 제국의 궁정 요리를 거쳐 오늘날 세계적인 음식이 되기까지, 케밥은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동하며 역사를 만들어 왔다. 그리고 여행자는 깨닫게 된다. 음식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그 나라의 문화와 시간을 함께 맛보는 경험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튀르키예에서 케밥을 한 입 베어 물 때 우리는 단순히 고기를 먹는 것이 아니라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역사와 이야기를 함께 맛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필자는 이번 여행을 통해 이렇게 느끼게 되었다. 튀르키예는 모스크와 궁전의 나라일 뿐만 아니 케밥을 통해 읽을 수 있는 나라라는 것을. 그리고 푸른투어와 함께하는 튀르키예 일주 여행에서는 이러한 역사적인 도시와 장대한 풍경뿐 아니라 케밥을 비롯한 다양한 튀르키예 전통 음식을 직접 경험하는 또 하나의 즐거움도 함께 만나게 된다. ━ 박태준 이사 푸른투어 서부본부의 박태준 이사는 25년째 여행 현장을 누비며 가이드, 해외 인솔자, 상품 기획자, 여행컨설턴트로 활동해온 여행 전문가다. 다년간의 현장 경험과 기획력을 바탕으로 고객 맞춤형 여행은 물론 미국 전역과 해외를 아우르는 고품격 여행 서비스를 선도하고 있다.천년제국 케밥 케밥 가게 길거리 음식 접시 음식
2026.04.02. 20:42
LA지역을 운전하다 보면 길거리에 밤, 낮 없이 즐비하게 늘어선 노점상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러한 노점상들은 길가 쇼핑몰 앞은 물론 주유소 옆 공터, 큰길 코너를 비롯해서 심지어 주택가 앞 골목까지 점유하며 계속 증가하고 있다. 한인타운도 버몬트 선상 올림픽 경찰서 맞은편에 하나둘씩 모여들 던 노점상들이 이젠 11가부터 남쪽으로 2블록의 긴 길가를 완전히 장악해 버렸고 샌타모니카 길과 웨스턴 길이 만나는 인근 지역도 노점상들이 삼삼오오 들어서고 있다. 이러한 노점상들은 초창기에는 대부분이 길거리 음식을 취급했으나 최근엔 농산물에서 잡화류까지 다양한 물건들을 판매하고 있다. 노점상의 증가는 한인타운뿐 아니라 LA시 전역에 넓게 퍼져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요즘은 다양한 장비까지 추가하면서 야간엔 전기 발전기를 활용하여 불을 밝히고 냉장고 등 다양한 식당 장비까지 보유하며 크게 활성화되고 있다. LA시는 팬데믹 이후 서민들의 경제활동에 활력을 주기 위해 음성적 노점상들을 합법적 비즈니스로 인허가를 확대했다. 세수입도 늘리고 노점상으로서 합법적으로 보호받으면서 지역 주민 및 방문자들의 건강과 안전 등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노점판매 허가증 신청 및 발부를 간소화,서민 경제활동을 합법적으로 바꿔주겠다는 의도로 시작했다. 그러나 이를 지켜보는 많은 사람은 지역주민들의 보건 위생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인허가 규정에 위생 관리 규정도 강화했다고는 하지만 수도시설도 없고 열악한 환경에서 위생 규정 이행을 확인하고 관리 감독 맡는 것 역시 인력 부족과예산 부족으로 그 통제가 힘들어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노점상의 규모가 확대되고 취급 품목도 다양해지면서 기존 업소에서 영업하고 있는 스몰비즈니스 업주들이 경제적 타격을 받을 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존 식당 업주들은 LA카운티 공공보건국의 엄격한 위생규정을 준수해야 하고 비즈니가 용이한 로케이션을 찾아 높은 렌트비용을 부담하며 고액투자를 통해 비즈니스를 창업하고 유지해 오고 있는 상황에서 노점상들과 또 다른 경쟁을 하는 이중고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일반 물품을 판매하는 업소들은 노점상들의 취급품목이 다양해지면서 취급품목과 서비스가 겹치면서 주변에 저렴한 경쟁 업소가 갑자기 증가하는 것과 같은 결과 때문에 매상에 심각한 영향을 받게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장기화하는 불황과 인플레이션 상승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스몰비즈니스 업소가 타격을 받으면 상업용 부동산의 공실률이 상승할 수도 있고 이는 상업용 부동산에 불안요소가 될 우려가 있다. 지난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가 증가하며 사무용 건물의 공실률이 급격히 상승하며 사무용 상업용 부동산이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이들은 현재까지 회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상업용 부동산은 일반 부동산과 달리 한번 타격을 받으면 단기간에 회복이 불가능 한 요소들이 많다. 많은 전문가가 지금과 같은 고금리가 장기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상업용 부동산의 공실률이 상승하게 된다면 재융자에도 문제가 발생하여 상업용 부동산 전체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정부 기관이 지금보다 현명한 관리 감독으로 기존 업소와 노점상의 충돌을 완화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때다. ▶문의: (213)500-5589 전홍철 WIN Realty & Properties에이전트 노트 길거리 노점상 음성적 노점상들 스몰비즈니스 업주들 길거리 음식
2025.10.14. 23:23
“멋진 가족의 가장으로, 엔지니어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지만, 마음속 한켠에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가 항상 있었어요. 이젠 채울 수 있을까요?” 내년에 쉰이 되는 오성민(크리스 성 페돌레스키·사진)씨는 한서린 눈물을 흘렸다. 스튜디오에는 아내와 딸이 지켜보고 있었다. 1978년 그는 서울 노량진에서 길거리를 헤매다 발견됐다. 어렴풋한 기억에는 어머니가 아파서 병원에 있는 상태였다. 어린 성민은 사자 얼굴 모양의 쇠문고리가 달린 대문을 나가 길거리 음식 냄새를 쫓아가다 결국 길을 잃게 됐다. 그는 동작경찰서에서 미아로 신고돼 성로원(고아원)으로 인계됐고 동방사회복지회를 거쳐 뉴욕으로 가게 된다. 서류에는 그가 1973년 9월 10일생으로 적혀있지만, 이는 추정이며 그의 이름도 보육원에서 지어준 이름이다. “혼자 길거리를 헤매다 고아가 됐으니 부모님의 잘못은 전혀 없어요. 제가 행복하게 살아온 것처럼 부모님도 행복하게 잘 살아오셨으면 좋겠고, 제가 힘겨웠던 것 보다는 덜 힘드셨다면 좋겠어요.” 그는 40여년 내내 쉽지 않은 시간을 태권도로 이겨냈다. 이제 성인이 된 아들과 딸도 태권도인이 됐다. “아이들이 ‘아빠의 가족’을 찾는 일에 힘을 보태고 있어서 고마워요. 그리고 입 "입양인들에 귀 기울여준 아동권리보장원과 미주중앙일보에도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어요.” ‘룩킹포맘 투게더’는 미주중앙일보와 한국 보건복지부 산하 ‘아동권리보장원’이 공동 제작하고 있으며 ‘농심 아메리카’가 후원한다. 최인성 기자룩킹포맘-뉴욕주 오성민씨 동작경찰 엔지니어 미주중앙일보 유튜브 길거리 음식 마음속 한켠
2022.12.08. 2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