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Chicago downtown Michigan 거리에 왔다. 젊은 시절 이 거리를 걸으며 미래를 꿈꾸었던 곳. 크리스마스트리에 전등이 켜지고 캐럴이 은은히 들려왔었다. 거리를 걷다 말고 마천루 빌딩 숲에서 불 켜진, 혹은 꺼져있는 창들을 기억한다. ‘우리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어떻게 만나랴.’ 김환기 화백의 점들로 찍힌 그림이 오버래핑 되던 시간이었다. 그의 뉴욕 유학시절, 점 하나에 찍힌 그리움, 점 하나의 사랑, 이별, 아픔, 견딤의 삶들이 절로 이해되었던 시간이 있었다. 그 거리를 다시 걷고 있다. Chicago Symphony Orchestra와 협연하는 조성진의 피아노 연주회에 왔다. 빈 곳을 찾아볼 수 없이 좌석이 차고 무대 위에는 악기의 음을 튜닝하느라 분주하다. 나는 upper level balcony left side F21 좌석에 앉아있다. 시카고 심포니의 ‘Musica Celestis’ 연주가 시작되었다. 이 곡은 String만을 위한 특별한 곡이다. 그러기에 여느 오케스트라 곡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숨소리마저 멈춘 높고 큰 공간 속에 바람이 불어오듯 부드럽고도 아픈 서막이 열리고 있다. 황량한 광야를 걷고 있는 사람의 등 뒤를 밀고 가는 바람. 격렬한 바람에 밀려 한참을 밀려가다 멈춰 선다. 물결 같은 잔잔한 울림이라고 해야 할까? 멀리 먼동이 트듯 천상의 음률이 들려오는 듯하다. 터지는 박수소리에 멈추었던 호흡을 길게 내쉬어본다. 무대 앞부분이 내려가고 길이가 긴 그랜드 피아노가 무대 위로 올라오고 있다. 앞자리 바이올린 1주자가 일어나 전체 튜닝을 한음으로 짧게 한다. 홀을 가득 채우는 박수소리와 함께 조성진이 무대로 오른다. 허리 굽혀 인사한 후 이내 자리에 앉는다. 지휘자 Gemma New의 손끝을 타고 베토벤의 피아노 콘서트 No.3 연주가 시작된다. 연이어 조성진의 물 흐르듯 감미로운 연주가 이어진다. 현악과 관악이 주고받으며 펼쳐지는 연주를 끌고 가는 피아노의 음률은 마치 구슬 굴러가는 소리 같았다. 때론 바위 같은 묵직함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눈을 감는다. 넓은 연회장이 펼쳐지고 미끄러지듯 남녀 한 쌍의 춤사위가 나비처럼 나른다. 건반을 누르는 상체의 힘으로 몸이 잠시 허공에 들린다. 지휘자의 어우르는 손과,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보이지 않게 움직이는 손과, 70명이 넘는 오케스트라 멤버의 각각의 손들이 만들어낸 소리. 심장 박동이 마구 뛴다. 이 곡을 작곡할 당시 베토벤은 청력을 잃었을 때였다. 작곡가가 청력을 잃었다면 그의 생명은 이미 끊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중 유일한 단조로 작곡된 피아노 콘서트 No. 3는 청력 상실이라는 좌절을 딛고 자신만의 심오한 작품 세계로 몰입하게 된 결과 탄생하게 되었다. 인상주의, 빛의 화가 모네는 말년에 거의 사물을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시력이 약해졌었다. 모네의 정원엔 연못이 있었고 수란이 아름답게 피어있었다. 모네는 그 시기에 250여 연작의 수란을 그렸다.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The Water-Lily Pond는 거의 실명 상태에서 그린 그의 대표작이다. 베토벤의 청각 상실과 모네의 거의 볼 수 없던 시각으로 희대의 작곡과 명작이 탄생된 것은 시련을 극복하고 자신을 이긴 뼈를 깍는 창작 활동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두 번의 Standing Ovation 끝에 앵콜송, Moonlight가 연주되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젊은 피아니스트 조성진을 열광하는 팬들은 그가 떠난 무대를 향해 오랫동안 박수로 그를 열광했다. 2시간에 걸친 공연은 막을 내렸다. 공연장의 계단을 내려오면서 나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이름. 김환기, 조성진, 베토벤 그리고 모네. 미시간 거리에는 잔잔한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조성진 김환기 피아니스트 조성진 피아노 연주회 당시 베토벤
2024.02.12. 13:27
“여전히 항아리를 그리고 있는데 이러다간 종생 항아리 귀신만 될 것 같소.” 전시장에서 이 문장을 보고 슬며시 웃음이 났습니다. 이 작가가 누구인지 짐작되시는지요. 네, 맞습니다. 김환기(1913~1974)입니다. 1956년 파리로 간 그가 이듬해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 “여전히 항아리를 그리고 있다”며 쓴 것입니다.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5월 18일 개막한 ‘한 점 하늘 김환기’ 전시가 100일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하고 10일 막 내렸습니다. 회화와 드로잉, 신문지 작업과 스케치북 등 약 120여 점을 망라한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아십니까. 미술관에서 이런 규모로 열린 김환기 전시가 거의 40년 만이었습니다. 1975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1주기 전시, 1985년 10주기 전시가 열린 적 있는데요, 이번이 역대 최대 규모였습니다. 전시의 감동은 규모 그 자체보다 내용의 깊이에서 왔습니다. 정제된 구성으로 배치된 그림과 글은 그의 화폭에서 달과 달항아리가 점으로 변화해가는 여정을 선명하게 보여줬습니다. 다시 ‘항아리 귀신’ 얘기로 돌아가 볼까요. 김환기가 왜 그토록 집요하게 달과 항아리를 그렸는지 궁금하시죠. 그는 달항아리의 빛과 형태에서 한국적 추상화의 가능성을 보았고, 자신의 화폭에 이를 실현하는 데 평생을 바쳤습니다. “형과 늘 얘기했지만 코르뷔제(르코르뷔지에,1887~1965) 건축이나 정원에다 우리 이조자기를 놓고 보면 얼마나 어울리겠소.” 1953년 김중업(1922~1988) 건축가에게 보낸 편지에서 ‘현대 건축의 선구자’ 르코르뷔지에의 건축과 백자를 함께 언급한 대목도 눈에 띕니다. 시대를 초월해 아름다움의 본질을 꿰뚫어 본 예술가의 안목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참 신기하죠. 전시를 보면 볼수록, 그리고 작가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될수록 사실은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는 게 별로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좋은 미술관 전시일수록 작가를 새로 발견하는 경험을 선사합니다. 김환기의 그림 한 점 가격이 2019년 132억원을 기록했다는 것은 너무 유명합니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오십 넘은 나이에 낯선 땅 뉴욕에서 하루는 절망하고, 또 하루는 자신감 얻기를 반복하며 작업을 지속해 온 그의 삶을 차분히 조명했습니다. 전시를 위해 작품을 대여해준 개인 소장가가 40명에 달하니 아무 때나 쉽게 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모로 한국 미술사에 기록될 의미 있는 전시입니다. 삼성문화재단에 따르면 이번 전시를 본 관람객은 15만 명에 이릅니다. 2021년 ‘야금(冶金): 위대한 지혜’ 전을 본 관람객 수의 3배입니다. 이 전시를 놓쳐 너무 아쉽다면 서울 부암동 환기미술관에서 열리는 ‘환기, 점점화(點點畵) 1970-74’(12월 3일까지) 나들이는 어떨까요. 우리는 지금도 김환기를 알아가는 중입니다. 이은주 / 한국 문화선임기자아트&디자인 김환기 사랑 김환기 전시 하늘 김환기 항아리 귀신
2023.09.13. 2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