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에서 산티아고는 84일간 물고기를 잡지 못하고 혼자 보트에서 지내다가 대어를 만난다. 상어와 사투를 벌리는 노인은 많은 고난을 겪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한다. 물고기는 단순한 낚시 대상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의미와 고난을 상징한다. 헤밍웨이 글은 표면 아래 감추어진 의미와 감정을 독자 스스로 발견하게 하는 ‘빙산이론’으로 유명하다. 산티아고의 외로운 싸움과 고독을 존재론적 치열한 갈등을 통해 상징적으로 몰입하게 한다. 고독을 맛보지 못한 사람이 있을까? 무지개 색깔로 떠오르는 태양을 마주하고 홀로 마시는 향긋한 커피 한 잔은 따스하지만 적조하다. 고독은 홀로 떨어져 있는 듯 마지막 잎새들처럼 외롭고 쓸쓸함으로 뒷마당을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실로 오랜만에 비발디의 사계(四季, Le quattro)를 듣는다. 봄이 감미롭고 경쾌한 반면에 여름의 1악장은 천둥번개를 떠오르게 하고 황홀하고 격렬하다. 가을은 정숙하고 부드러운 음율로 둥지의 새를 남쪽나라로 날려 보낸다. 겨울은 어둡고 우울하지만 쇠소리 내며 마지막 잎새처럼 애절하게 나부낀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서 애절한 눈빛으로 왈츠(Natasha's Waltz)를 추던 연인들의 사랑처럼 겨울은 슬픈 작별을 견디며 가슴 아리게 등을 돌린다. 인생의 4계절은 소리소문 없이 왔다가 미처 껴안을 틈도 없이 세월 속으로 흘러갔다. 봄날은 아지랑이 머리에 이고 사랑이 있는 곳이면 무작정 달려갔다. 여름은 전쟁터처럼 치열했다. 수십 마리의 상어 떼를 만나도 목숨 걸고 싸워야 했다. 왜 그리 살았을까? 무엇을 얻기 위해 목숨 갈아먹는 줄도 모르고, 이리 뛰고 저리 달렸을까? 돌아오지 못하는 기차에 몸을 싣고 문패도 없는 역을 향해 물욕과 탐욕, 욕망과 성공의 지도를 그리며 무작정 질주했다. 세상을 다 가져도 빈손으로 떠나는 게 인생이다. 소명(疏明)할 까닭이나 기회 조차없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러시아의 저명한 소설가이자 사상가인 톨스토이는 82세 때 가출해서 열흘 만에 시골 아스타포보 간이역에서 객사했다. 16살 연하에게 열렬한 구애 끝에 결혼해 13명의 아이를 낳고 ‘전쟁과 평화’ 원고를 6번이나 필사한 소피아는 톨스토이의 반대로 임종을 지켜보지 못했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죽음을 보며 잘 죽는 것이 잘 사는 것보다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톨스토이는 돈 명예 명성 지위를 모두 가졌지만 이상과 욕망 사이에서 고뇌하는 불완전한 영혼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행복한 척하기는 쉽다. 요란한 포장지를 벗기고, 내려놓으면 두려움이 없어진다. 행복은 환상이다. 스쳐 지나가는 봄바람에 형체도 없이 계절이 바뀌듯, 아무 것도 바라지 않으면 행복은 평온한 고독으로 생의 순간을 따스하게 데운다. 죽음이 두려워 도망치지 말라. 죽는 것보다 살아있음에 찬가를 부르라. 용기 있는 자만이 고독이 머무는 자리에 생명의 나무 한그루 심는다. 고독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홀로 견디는 성찰이다. 마음의 바다에 돛단배 띄우고 목마른 나무에 물을 주며, 무너지는 날들 위해 튼실한 나무 가지 붙잡고, 쓰러지지 않기 위해 지렛대 하나 세우는 일이다. 마음의 바다에 폭풍우 가라 앉히고, 조약돌처럼 작은 일상에 감사하며, 사랑이 머무는 곳에 빛과 희망 있음을 믿으면, 고독이 생을 충만케 하리라.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대문호 톨스토이 나무 한그루 나무 가지
2026.01.20. 12:43
피지도 않은 창가 매화나무를 보다 어제가 다르게 봄이 오고 있단 생각을 하는 중입니다. 한 달 내에 나무는 꽃을 피울 것입니다. 흐드러지게 필 매화는 이층 나의 창문을 두드릴 테고, 바람에 진한 향기를 담고 창문을 열어 달라 속삭일 것입니다. 사실 매화가 내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그때 나무는 열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나무에서 뻗은 몇 개의 가지가 시들어 갔고 이내 그 옆의 가지들도 말라갔습니다. 이 집에 이사와 심은 작은 묘목이 자라 이제 나의 창가에까지 키를 키웠는데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나무를 잘라내야 하나 고민하다 죽은 가지를 잘라내고 잔가지를 정리하면서 둥그렇게 모양도 내 주었습니다. 모양이란 말이 쉽지 그야말로 사다리를 타고 곡예를 하듯이 나무의 구석 구석을 다듬었지요. 뿌리 근처에 흙도 덮어주고 가지에 약도 쳐주었습니다. 나무는 이듬해 작은 꽃망울 몇개만을 터뜨리며 몸을 추스리더니 그 이듬해 분홍빛이 도는 하얀 꽃을 내 창가에 토해 놓았습니다. 창가에 앉아 흐드러지게 필 매화를 생각하다 매화가 혹 내 마음을 알고 있나 싶어 나무를 쳐다 보고 있습니다. 나무 가지 끝마다 동그란 움이 터 있어 가까이 보니 나무가 온통 꽃망울을 피우려고 신열을 앓고 있습니다. 매화가 나에게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너는 창가에 매화를 피웠다 눈부시게 향기로운 봄날 허공에 부딪치는 눈송이처럼 너는 창문을 두드렸다 바람을 타고 흔들거리며 지긋한 시선을 창가에 던졌다 “가까이 와 나를 보세요” 말하기 전 들어야했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매화는 피고, 지었다 “가까이 오라 했잖아” 허리 굽혀 떨어진 너를 만지며 떨어진 말들을 주어 담는다 “아직 늦지 않았어” 버려진, 말도 안 되는 대화를 말 되게 다시 짜 맞추는데 꿍꽝거리는 왼쪽 가슴 깊이 봄날이 나를 쿡 찌른다 나를 포함해 사람들은 아무리 부인해도 자기 중심적 삶을 살고 있음에 틀림 없습니다. 간절히 바라고 원했다 가도 바라던 일이 이루어지면 처음 가졌던 그 간절함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응당 받아야 할 것을 받은 양 표정을 바꾸어집니다. 지푸라기라도 잡을 듯 뻗었던 두 손으로 이웃과 세상은 뒷전이고 나만 행복하면 그만인 듯 제 것만 쓸어 담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너와는 상관없는 나만의 천국입니다. 나에게서 너에게로, 나라는 울타리에서 너라는 울타리 밖의 세상으로 시선을 돌리는 경우를 점점 찾기 어렵습니다. 개인 주위를 넘어 집단 이기주의에 빠져들어갑니다. 나와 너와의 관계에서는 물론이거니와 나와 세상에 펼쳐지는 모든 것들을 향한 내 중심적 사고를 버리는 것은 일상을 움직여가는 바른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봄이오면 봄을 맞이하고 꽃이 피면 그 아름다움에 감탄과 고마움을 느끼며 사는 것이 성숙함이요 나이듦의 깊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은 만남의 연속이라는데 매일의 삶 속에서 궁극적 타자(절대자)와의 만남은 삶을 변화시키고 풍요롭게 합니다. 사람과 자연과의 깊은 호흡은 내게 주어진, 또 앞으로 주어질 시간과 공간의 소중함을 느끼게 합니다. 우리 인생도 피고 지고, 매화꽃도 피고 집니다. 다만 긴 공전과 짧은 자전의 축이 다를 뿐입니다. 매화나무에게 말 하기 전 나무가 말하는걸 듣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봄날 매화나무 속에 있습니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매화가 창가 매화나무 봄날 매화나무 나무 가지
2022.03.22. 1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