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의 어느 날, LA다운타운 한 길거리 모퉁이에서 만난 우원기(75)씨는 품속에서 슬쩍 서류 한 장을 꺼내 보였다. 자진 출국 신청서였다. 우씨는 “지난주에 이 서류 때문에 이민서비스국 신청지원센터(ASC)에서 지문을 찍었다”며 “만약 이민세관단속국(ICE)에 잡히면 보여주려고 외출할 때마다 이 종이를 꼭 갖고 다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빌딩 숲 사이로 내뿜는 담배 연기에는 그의 깊은 한숨이 담겨 있었다. 그는 요즘 하루하루가 두렵고 무섭다. 속히 한국으로 돌아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우씨는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데 갑자기 ICE에 잡히기라도 하면 기약도 없이 구치소에 갇혀 있어야 하지 않느냐”며 “말도 안 통하고 음식도 맞지 않는 곳에 갇혀 있느니 차라리 떠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 자진 출국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물론 한국에서의 삶이 미국보다 나을 것이라는 확신은 없다. 그곳엔 가족도, 친구도 없다. 그럼에도 모든 것이 불분명한 한국행을 선택한 건 그만큼 추방에 대한 두려움이 그의 모든 삶을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우씨는 지난 2012년 12월 샌프란시스코로 왔다. 관광차 입국했다가 그대로 눌러앉았다. 그는 “도박을 조금 했는데 그때 만난 사람들과 친해지면서 이곳에 남기로 했다”며 “그래도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불법 체류'라는 사실 외에는 이곳에서 어떠한 법도 어기지 않고 살았다”고 말했다. 우씨는 페인트 시공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그 외 시간에는 대부분 친구들을 만나며 미국에서의 삶을 나름 즐겼다. 문제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불법 체류자 단속이 강화됐다는 점이다. 그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사회 분위기가 너무 많이 변했다. 체류 신분 없는게 이렇게까지 중범죄자 취급을 받아야 하는 일인가”라며 “심리적으로 점점 위축되면서 갑자기 어느날, 언제라도 잡혀갈 수 있다는 생각에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일당을 받아 근근이 살아가던 그는 출국할 방법을 알아보기 위해 무작정 LA한인회를 찾아갔다. 불법 체류자가 세관국경보호국(CBP)을 통해 안전하게 출국할 수 있도록 한국어로 상담을 해준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CBP는 자진 출국을 신청하는 불법 체류자에게 항공권과 함께 1000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밝힌 상태였다. 결국 LA한인회의 도움으로 우씨는 신청서를 작성했고, 지금은 출국 일정이 정해지기만 기다리고 있다. 그는 인터뷰 도중 갑자기 “너무 불안해서 더는 밖에 못 있겠다”며 연달아 피우던 담배를 급히 껐다. 우씨는 “CBP에서 연락이 오면 지금이라도 당장 공항으로 떠날 것”이라며 “제발 빨리 한국으로 갔으면 한다”고 말한 뒤 뒤돌아 떠났다. LA에는 우씨와 같은 한인 불법 체류자들이 모여 사는 셸터가 있다. 두려움은 그들을 점점 더 은둔과 고립의 삶으로 몰아가고 있다. 지난해 11월의 어느 날, 한인타운 내 한 주택가 앞이다. 주름이 깊게 패인 한 남성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골목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골목 너머에는 홈디포가 있다. 종종 ICE 요원들이 불쑥 나타나 홈디포 앞 일용직 노동자들을 체포하곤 한다. 자신을 70대 불법 체류자라고 밝힌 이 남성은 한 주택을 가리키며 “지금 이 집에 나를 포함해 9명이 함께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이곳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정말 큰일 난다”며 “신분증 같은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ICE에 잡히면 그대로 끌려갈 것”이라고 했다. 그들에게 셸터의 문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출입구가 아니다. 누가 갑자기 들이닥칠지 몰라 항상 잠가둘 수밖에 없는 문이다. LA한인타운에서 사역 중인 세인트제임스교회의 김요한 신부는 그동안 불법 체류자들을 이 셸터로 안내해 왔다. 김 신부는 “내가 운영해 오던 (노숙자)셸터는 외부에 너무 많이 알려져서 ICE의 타깃이 될 수 있다”며 “그래서 절대로 신분이 드러나면 안 되는 사람들은 이곳으로 보낸다”고 말했다. 이 셸터는 겉으로 보기에는 여느 주택과 다를 바 없지만, 추방의 두려움 속에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유일하게 몸을 숨길 수 있는 장소다. 김 신부는 “그런 사람들에게 내가 직접 해줄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지만 딱 한 가지 만큼은 해줄 수 있다”며 “이 셸터에 머무는 이들이 누구인지 절대 발설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그 비밀을 지키는 일은 추방 위협에 떨고 있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김 신부만의 약속인 셈이다. 몸을 숨길 수 있는 유일한 공간마저 드러난다면 그들이 맞닥뜨릴 현실은 단 하나, 이 땅에서 쫓겨나는 일이다. 두려움은 오늘도 그들을 옥죄고 있다. 추방 위기에 처한 이들의 현실이 쉽게 드러날 수 없는 이유다. 글=장열 기자·사진=김상진 기자 [email protected] 관련기사 "어머니 돌아가셔도, 딸 결혼해도 못 가" "한국 국적자인데 왜 남수단 추방입니까" “미국선 추방자, 한국에선 이방인” “한국에서 나는 죽은 사람입니다” 〈이 기사는 미주중앙일보의 영어 매체 코리아데일리US에 2025년 12월 19일 게재된 기사를 한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이민세관단속국 불법 체류자 LA 로스앤젤레스 미주중앙일보 중앙일보 장열 김상진 ICE 도널드 트럼프 추방자 한인타운 이민자 단속 트럼프 남수단 한국 국적
2026.03.05. 21:54
지난해 9월, 수원 인근의 한 카페. 쉰 살을 넘긴 J.K(51)가 휴대전화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화면을 누르는 모습은 아직 휴대전화를 다루는 데 능숙하지 않은 듯했다. J.K는 “한국은 교통카드를 사용하는 것부터 모든 게 휴대전화를 통해 인증을 받아야 생활이 가능한 나라”라며 “스마트폰을 다루는 법을 잘 몰라 유튜브를 보면서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J.K가 그 흔한 스마트폰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는 수십 년간 사회와 격리돼 있었다. 지난 2000년 6월, 그는 한인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총격 사건의 당사자였다. 당시 LA 한인타운에서 발생한 차량 총격 살인 사건의 공범으로 체포됐었다. 법원은 J.K에게 최소 50년에서 최대 종신형을 선고했다. 사방이 막힌 감옥은 그에게 갱생의 공간이었다. 젊은 시절의 잘못을 뉘우치고 피해자에게 사죄하는 길은 수감 생활을 성실히 감당하는 것뿐이었다. 결국 사법 당국은 J.K를 모범수로 인정해 가석방 판정을 내렸다. 그는 수감 생활 25년 만에 죄의 멍에를 벗고 밖으로 나왔다. 2025년 4월의 일이다. 모범수로 출소했지만 그에게 완전한 자유가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J.K는 “출소하자마자 교도소 입구에서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들이 나를 텍사스주의 구금 시설로 데리고 갔다”며 “다시는 평생 수갑을 안 찰 줄 알았는데 그들은 나에게 수갑은 물론 족쇄까지 채웠다”고 말했다. 구금의 시간이 다시 시작됐다. 이번엔 기약도 없었다. 어떤 질문을 해도 ICE 요원들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받았다. J.K는 “ICE 요원이 오더니 나에게 ‘7일 내로 남수단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하더라”며 “나는 한국 국적자인데 왜 연고도 없는 그곳으로 가느냐고 따져 물었지만 그들은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시 남수단은 내전으로 인한 폭력 사태와 납치, 인권 침해 등이 잇따르며 미국 국무부에 의해 여행 금지국으로 지정돼 있던 국가였다. 이민법에 따르면 추방 명령을 받은 외국인은 국적국 또는 마지막으로 상주했던 국가로 우선 송환돼야 한다. 물론 예외는 있다. 추방 대상자가 ▶국적 불명 ▶국적국이 수용을 거부할 경우 ▶추방 시 생명의 위협이 있을 경우 등에는 제3국으로 송환이 가능하다. J.K의 경우는 이 같은 예외 조항에 해당하지 않았다. J.K는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고 미주중앙일보에 알렸고, 내 이야기가 기사로 보도되면서 결국 한국 정부가 나서게 됐다”며 “공항에서 남수단행 항공기에 탑승하기 직전 갑자기 명단에서 제외됐고, 한국 정부로부터 임시 여권을 받아 막판에 한국으로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본지 2025년 5월 22일 A-1면〉 관련기사 살인전과 한인 불체자, 아프리카 추방 위기 우여곡절 끝에 그가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건 2025년 6월 27일이었다. 공항에서 그를 맞이한 건 미국에서부터 가슴 졸이며 추방의 전 과정을 도왔던 아버지였다. 아버지 품에 안겨 한없이 울던 J.K는 안도감을 느낄 겨를도 없이 곧바로 한국 사회의 냉랭한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한국에 도착한 지 한 달 정도 지났을 때다. 경찰서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자신이 ‘수배 대상자’에 올랐다는 내용이었다. 어릴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가 병역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으로 돌아오자 병무청 전산망에 기록이 잡힌 것이다. J.K는 “현재 검찰에서 내 문제를 조사 중인데 병역 기피 의도가 없었기 때문에 잘 마무리될 것”이라며 “문제는 집으로 찾아온 형사에게 이 문제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내 과거를 어쩔 수 없이 모두 털어놓아야 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추방자들에게 한국에서의 삶은 아이러니한 양면이 존재한다. 미국에서의 과거를 완전히 숨기고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동시에, 자신을 숨기면 숨길수록 수십 년의 공백으로 인해 생긴 사회와의 이질감을 홀로 극복해야 한다. 그는 “주민등록증을 신청하고 은행 계좌를 만들고 의료보험을 신청하는데 사람들이 내심 궁금해한다”며 “그렇다고 과거를 털어놓으면 나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볼 테니 숨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J.K는 최근 수원의 한 차량 정비소에서 엔진 세척사로 일하게 됐다. 물론 직장에서는 그의 과거를 전혀 모른다. 그가 매달 받게 될 월급은 한화로 270만 원이다. 돈을 열심히 모아 훗날 비즈니스를 차리는 것이 그의 목표다. 그는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아마도 끝까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것 같다”며 “단, 결혼할 사람이 생긴다면 솔직하게 다 말하고 싶다”고 했다. 추방자의 삶에는 애환이 있다. 희망이 담긴 미래와 숨겨야만 하는 과거가 교차한다. 관련기사 "어머니 돌아가셔도, 딸 결혼해도 못 가" “미국선 추방자, 한국에선 이방인” “한국에서 나는 죽은 사람입니다” 〈이 기사는 미주중앙일보의 영어 매체 코리아데일리US에 2025년 12월 19일 게재된 기사를 한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글=장열 기자·사진=김상진 기자LA 로스앤젤레스 미주중앙일보 중앙일보 장열 김상진 ICE 도널드 트럼프 추방자 불법 체류자 한인타운 이민자 단속 트럼프 남수단 한국 국적
2026.03.04. 21:35
살인죄로 25년간 복역하다 지난 4월 가석방됐으나 불법체류자인 탓에 출소 즉시 이민세관단속국(ICE)에 신병이 인도됐던 한인 K씨가 아프리카 남수단으로 추방됐다는 일부 보도와 달리 한국에 간 것으로 확인됐다. K씨의 추방과 관련, 최근 일부 한인 언론들조차 K씨가 아프리카 남수단으로 추방됐다고 보도한 바 있다. K씨는 지난 5월 20일 남수단행 항공편 탑승 예정자 명단에 올랐지만 탑승 직전 제외됐었다.〈본지 5월 22일 A-1면〉 이후 그는 워싱턴주 타코마에 있는 노스웨스트 ICE 구치소로 이송됐으며, 지난달 27일 시애틀발 델타항공편을 통해 ICE 요원 2명과 함께 인천공항으로 입국했다. K씨의 부친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시애틀 총영사관으로부터 아들의 한국행 출국일이 6월 27일이라고 통보받았다”며 “아들이 한국으로 가게 돼 다행”이라고 밝혔다. 이어 K씨의 여권은 시애틀 총영사관의 김현석 영사가 6월 초 ICE 측에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K씨의 부친은 “6월 4일 김 영사가 ‘여권을 ICE에 전달했다’고 알려주고 직접 면회도 다녀오는 등 많은 도움을 줬다. 정말 감사하다”고 밝혔다. K씨의 부친은 지난달 9일 한국으로 먼저 가 아들의 입국을 미리 준비했다고 한다. 한편, 국토안보부(DHS)는 K씨를 제외한 8명을 5월 남수단행 전세기에 탑승시켰다. 그러나 이들이 국적과 무관하게 추방됐다는 절차상 문제가 제기되며 아프리카 지부티의 미군기지에 억류됐다가 최근 남수단으로 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중 남수단 국적자는 한 명 뿐이다. 관련기사 살인전과 한인 불체자, 아프리카 추방 위기 강한길 기자남수단 한인 한인 남수단 남수단행 항공편 아프리카 남수단 강한길 미주중앙일보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 미국 LA뉴스 LA중앙일보 추방 한국
2025.07.13. 20:41
살인죄로 25년을 복역한 후 최근 가석방된 한인 불법체류자가 아무 연고가 없는 아프리카의 남수단으로 추방될 위기에 처했다. 추방을 추진한 이민 당국은 “한국 정부가 당신을 받아주지 않는다”며 서류에 서명을 강요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 측은 “자국민 송환을 거부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양국 당국자간의 진술이 엇갈려 외교적 파장도 예상된다. 추방 위기에 놓인 K씨 부친에 따르면 그는 지난달 28일 프레즈노 인근의 밸리주립교도소에서 출소한 뒤 곧바로 이민세관단속국(ICE)에 신병이 인계됐다. 이후 그는 워싱턴주 노스웨스트 ICE 구치소를 거쳐 현재 텍사스주 포트이사벨 구치소에 구금돼 있다. K씨는 지난 2000년 LA 한인타운에서 발생한 차량 총격 살인 사건으로 유죄를 받았다. 이후 50년 형을 선고〈본지 2002년 8월 7일 A-1면〉 받았다가 지난해 12월 가석방이 승인됐다. K씨의 부친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ICE 측이 지난 19일 아들에게 ‘한국이 받아주지 않는다’고 했고, (추방에 동의하는 서류에) 서명을 안 하더라도 남수단으로 보낼 수 있다고 통보했다”며 “아들로부터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충격을 받아 쓰러져 지금 고관절이 골절된 상태”라고 말했다. 현재 남수단은 내전 우려, 폭력 사태, 납치, 인권 침해 등으로 국무부에 의해 여행 금지국으로 지정돼 있다. 이민법(INA 241(b))에 따르면 추방 명령을 받은 외국인은 국적국 또는 마지막으로 상주했던 국가로 우선 송환돼야 한다. 예외는 있다. 추방 대상자가 ▶국적 불명 ▶국적국이 수용을 거부할 경우 ▶추방 시 생명의 위협이 있을 경우 등에는 제3국 송환이 가능하다. K씨의 경우는 예외 조항에 아무것도 해당되지 않는다. 송정훈 이민법 변호사는 “시민권자가 아니면 이민법상 중범죄 전과자는 형기 종료 즉시 ICE에 의해 구금 또는 추방 재판 절차에 들어가는데 본국 송환이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민법 절차상 ICE가 K씨를 한국 정부의 송환 거부 등을 이유로 남수단행 추방을 추진한 것은 법률적, 외교적 문제를 야기할 소지가 있다. 이와 관련, 텍사스주 관할 공관인 휴스턴 총영사관 측도 K씨의 구금 사실을 파악하고 관련된 현재 발빠르게 외교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 휴스턴 총영사관 윤성조(사건사고 담당) 영사는 21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한국 정부는 자국민 송환을 거부한 적도 없고, (ICE로부터) 관련 정보를 전달받은 바도 없다”며 “K씨와 직접 통화도 했고, 한국으로 송환될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K씨는 20일 오후 공항으로 이송됐다가 남수단행 항공기 탑승 직전 명단에서 제외돼 일단 ICE 구치소에 재구금됐다. K씨의 부친은 “아들이 ICE 구치소에 있던 10명과 함께 공항으로 이송됐다가, 이중 아들을 포함한 2명만 제외하고 나머지는 이날 남수단으로 추방됐다”며 “아들이 갑자기 제외된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본지는 지난 20일 ICE 측에 K씨 사건 관련해 이메일을 보냈다. ICE 야스민 피츠오키피 대변인은 본지에 “(알아보고)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만 답했다. 문제는 K씨의 한국 송환 여부가 여전히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ICE가 한국 정부와 협의 없이 K씨를 언제든지 제3국으로 추방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21일 본지 확인 결과 국토안보부(DHS) 등이 지난 20일 K씨 등 2명을 제외하고 실제 남수단으로 추방한 8명은 미얀마, 베트남, 라오스 국적자 등으로 아시아계가 다수다. 모두 살인, 아동 성범죄, 강간 등 중범죄 전력이 있다. 이번 아시아계 수단행 추방 건과 관련해 연방법원 매사추세츠주 지법(담당 판사 브라이언 머피)은 이날 긴급 중지 명령을 내리면서 “이들은 이의 제기 기회를 갖지 못했으며, DHS는 명백히 법률을 위반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DHS는 “(법원은) 미국인의 안전부터 먼저 생각하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강한길 기자살해범 남수단 추방 절차 추방 재판 추방 위기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 미국 LA뉴스 LA중앙일보 강한길 미주중앙일보 이민세관단속국(ICE) 이민법 아시아계
2025.05.21. 2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