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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부여에서 왕 노릇 하기

부여에서 왕 노릇을 하는 건 어떨까요? 부여라고 하면 충청도에 있는 도시 이름을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충청도 부여에서는 왕 노릇을 할 수는 없겠죠, 나라가 아니니까 말입니다. 부여에서 왕 노릇을 한다고 하면, 옛 만주 벌판에 있었던 나라를 떠올려야 할 겁니다. 저는 역사가 전공이 아니지만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다양한 역사책을 봅니다. 그중에 최근 가장 많이 보고 있는 나라는 바로 부여입니다.     그런데 부여라고 하면 한 나라가 아닐 수 있겠습니다. 역사책에도 부여는 다양하게 나옵니다. 북부여, 동부여, 남부여가 모두 등장합니다. 삼국유사에 보면 천제가 용을 타고 내려와 북부여를 세우고, 이름을 해모수로 하였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북부여의 왕 해부루가 동해 쪽으로 나라를 옮겨 세운 나라가 바로 동부여였습니다. 고구려는 졸본부여라고 적고 있습니다. 그것은 북부여에서 나온 주몽이 졸본에서 나라를 세웠기 때문입니다. 한편 삼국사기 백제본기를 보면 성왕이 도읍을 사비 즉, 지금의 부여로 옮기고 나라 이름을 ‘남부여’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부여는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여러 부여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각각의 위치에 대해서는 여러 논의가 있습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나오는 부여 이야기는 흥미로운 부분이 많습니다. 특히 관직과 사출도에 관한 이야기는 윷놀이와 관련하여 생각할 거리를 줍니다. 관직명으로 마가 우가 구가 저가가 나오는데, 이는 윷놀이의 도, 개, 윷, 모와 관련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도는 돼지, 개는 개, 윷은 소, 모는 말과 관련이 있다고 말합니다. 저도 어원을 살펴볼 때 특별히 이견을 달기 어려운 주장입니다. 여기에서 문제는 ‘걸’에 있습니다.   걸의 의미에 대해서도 여러 주장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양이라는 주장이 제밀 많고, 가끔 코끼리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도개윷모가 가축명이고, 우리와 가까운 동물이라는 점에서 ‘양’일 가능성을 높게 보는 것 같습니다. 코끼리라고 보는 것은 아마도 발음의 유사성에 끌리는 논의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저는 양을 ‘걸’과 연결 지을 수 있는 근거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다른 동물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오랫동안 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여를 공부하다가 사출도(四出道)를 다시 찾게 되고, 부여의 도읍을 둘러싼 지역을 네 부분으로 나누어 마가, 우가, 구가, 저가가 맡았다는 논의를 보고, 도읍에 해당하는 동물을 찾으면 ‘걸’의 비밀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송나라 때 자치통감에 부여가 처음에 도읍을 ‘녹산(鹿山)’에 정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기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가 있습니다. 바로 사슴이 가운데 있었음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논의는 추론입니다. 확실한 증거를 찾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다만 사슴에 해당하는 우리말에는 ‘노루’와 ‘고라니’가 있음은 추론의 가능성을 높여줍니다. 사슴의 방언에도 고라니의 유형이 나타납니다. 고라니는 ‘걸’과 음운적 유사성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즉, 걸이 사슴의 의미였을 수 있습니다. 사슴은 뿔이나 고기, 가죽 등 우리에게 매우 귀한 동물이었습니다. 사슴의 뿔은 하늘과 땅을 잇는 신비한 상징이기도 합니다.     한편 역사서에 나오는 부여에 관한 기록은 흥미로운 점이 많습니다. 부여는 체격이 크고 굳세지만 다른 나라를 쳐들어가거나 노략질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옛 부여의 풍속에 가뭄이나 장마가 계속 들어서 오곡이 영글지 않으면 그 허물을 왕에게 돌려 왕을 바꾸거나 죽여야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나라를 잘못 다스리면 쫓겨나거나 죽을 수도 있습니다. 부여에서 왕 노릇 하기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노릇 노릇 하기 걸이 사슴 관직과 사출도

2025.06.01.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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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시민 노릇 정말 어려워라!

이 글은 나의 답답하고 서글픈 반성문이다.     대통령 예비선거 투표를 했다. 투표는 ‘동료 시민’의 신성한 권리요, 의무라기에 하기는 했는데 어쩐지 영 찜찜하고 죄스럽다. 신성한 한 표를 제대로 행사했는지 도무지 자신이 없다.   오늘날의 선거는 가장 훌륭한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니라, 덜 나쁜 분을 가려내는 일이라고 하는데, 누가 덜 나쁜지를 당최 알 수 없으니 투표를 제대로 했는지 영 자신이 없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민주주의와 선거라는 제도 자체에 대한 불신이다. 한국 정치판을 보면서 생겨난 정치 혐오감이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정치하는 인간 믿지 말라는 말을 나는 굳게 믿는다.   나의 투표과정을 복기해보면 참 한심하기 짝이 없다. 우편투표를 하기 위해 우선 투표용지를 펼쳐놓고, 두툼한 설명서를 읽는다. 컴퓨터 자동번역기를 돌린 모양인지 문장이 투박하지만 그래도 한글이니 읽을 수는 있다. 천만다행이다. 옛날에는 모두 영어로 되어 있어서, 검은 것은 글자이고 흰 것은 종이라고만 알고, 무척 답답했었는데 그에 비하면 그야말로 대한민국 만세다. 물론, 읽을 수 있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투표용지를 보니 후보자들의 이름이 쭈르르 적혀있고, 직업 같은 간단한 설명이 한 줄 쓰여 있는데, 누가 누군지 도대체 알 길이 없다. 대통령 후보는 워낙 시끄러우니까 겨우 알겠는데, 주 상원이니 카운티 수퍼바이저, 지방 검사, 상급법원 판사 등은 무슨 일을 하는 자리이고, 내 삶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그런데 그 많은 이름 중에서 한 분을 뽑으란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잠시 허공을 응시하며 심호흡을 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신성한 투표를 시작한다. 마음을 가다듬어봤자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머리를 굴려 내 나름의 논리를 세우고 잔꾀를 낸다.     이런 식이다. 우선 한국 이름 같으면 눈 딱 감고 찍는다 이왕이면 아시안 이름을 고른다 그래도 모르겠으면 정당을 본다 나와 같은 정당의 후보를 택한다 같은 정당 후보가 여럿이면 직업을 보고 직책과 연관 있는 직업을 가진 후보를 찍는다 그래도 겹치면 이름이 정겨운 사람에게 한 표를 던진다.(이름 정겨운 것이 정치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도저히 안 되겠으면 결국 기권한다. 아무튼 착한 시민답게 끝까지 노력은 한다.   이 과정에서 선거철이면 무더기로 날아오는 선전지가 매우 도움이 된다. 아무래도 돈 써가며 적극적으로 자기를 알리는 사람이 일도 열심히 할 것이라는 논리적 판단이 있기 때문이다. (당선된 뒤에 본전 회수를 위해 무슨 짓을 하는지는 전혀 모르겠다.)     뭐 이런 식이니 제대로 투표했다는 자신감이 생길 리 없다. 이건 터무니없는 폭력이 아닐까 하는 자괴감이 든다. 모르긴 해도 대부분의 동료 시민들도 나와 비슷할 것으로 짐작된다.   어쨌거나 그렇게 해서 표를 제일 많이 얻은 분이 당선돼서, 우리 위에 군림하며 우리를 다스리게 된다. 이것이 지금 우리 민주주의의 실체다. 장님 문고리 더듬기보다도 못하다. 차라리 투표를 하지 않는 편이 훨씬 옳은 것 같다.   그런데도 마땅한 대안이 없단다. 그나마 다수결이 진리이니 빠짐없이 투표에 참여하는 것이 세상을 좋게 만드는 지름길이요, 정의라고 우긴다.   물론, 따지고 보면 우리를 대표해서 세상을 움직일 사람을 뽑는 일인데, 무관심하게 공부를 안 한 내 잘못이 가장 크다. 잘못 뽑아놓고서, 정치가 개판이네 어쩌네 불평해봐야 소용없는 노릇이다. 정신 바짝 차리고 제대로 뽑아야 한다.   고분고분 법 잘 지키고, 또박또박 세금 잘 내면 되는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란다. 아, 시민 노릇 제대로 하기 정말 어려워라!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시민 노릇 동료 시민들 시민 노릇 정당 후보

2024.02.29.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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