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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아인슈타인과 노벨상

아인슈타인 이전에는 시간과 공간을 의심해 본 사람이 없었다. 시간과 공간은 절대적이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은 인류 최초로 시간과 공간이 상대적이라고 생각했고 자신의 이론을 정리하여 두 번에 걸쳐 상대성이론을 발표했다. 물론 그는 노벨상을 받았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으로 노벨상을 받은 줄 알고 있는데, 아니다. 아인슈타인은 '광전효과'라는 논문으로 1921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광전효과란 금속에 빛을 쏘이면 전자가 튀어나오는 현상인데 광전효과의 발견이야말로 양자역학 시대를 활짝 열어젖힌 위대한 사건이었다. 어쨌든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으로 노벨상을 받은 것은 아니다.   기적의 해라고 불리는 1905년, 당시 26살의 청년이던 아인슈타인은 세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한 사람이 평생 논문 한 편 쓰기도 쉽지 않은데 이 젊은 과학도는 '광전효과', '브라운 운동', '특수상대성이론' 등 인류의 미래를 바꿀만한 위대한 업적을 세 개씩이나 남겼다. 하지만 혼자서 너무 빨리 나가면 뒤에 따라오는 사람들이 잘 쫓아오지 못하고 버거워한다.     베토벤은 고전주의 음악을 총정리하면서 낭만주의 음악을 소개했는데 사람들은 베토벤의 음악을 이해하지 못했다. 당시 음악의 중심지였던 비엔나 사람들은 베토벤을 인정하면서도 그의 음악에는 공감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베토벤의 음악이 너무 시대를 앞서 나갔기 때문이었다. 비엔나는 여전히 모차르트와 고전주의 시절의 베토벤에 머물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도 기성 과학자들의 공감대는 얻긴 했으나 확실히 증명되지 않은 상태여서 매년 노벨상 후보에는 올랐지만, 십 년 넘게 수상이 확정되지 못했다. 불세출의 아인슈타인이 노벨상을 받지 못하자 물리학계에서 볼멘소리가 나왔고 그런 여론에 밀려 그는 '광전효과'에 대한 논문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독일인이었지만 유대 혈통인 그는 히틀러가 집권하고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핍박이 시작되자 고국을 떠나 자신이 학교에 다녔던 나라인 스위스 국적을 취득하고 베른에서 직장을 잡아 인생을 시작했다. 대학 강단에 서고 싶었지만, 학교 성적이 좋지 않아서 일자리를 구할 수 없게 되자 스위스의 수도였던 베른의 특허청에 취직했다. 그곳에서 심사관 일을 하던 중 여유 시간에 틈틈이 연구했던 물리학 이론을 정리하여 논문을 제출했다.     뉴턴은 빛이 입자라고 했지만, 그 후 연이어 관찰된 결과로 빛의 파동설이 힘을 얻었다. 그러다 아인슈타인이 광전효과를 설명하기 위해서 만든 광양자설로 인해 빛은 입자이면서 파동이라는 빛의 이중성이 정설이 되었다. 빛은 파동의 형태로 퍼져나가다가 관찰을 당하는 순간 입자의 성질을 띤다. 광전효과로 인해 양자역학이 물리학의 주류로 떠올랐지만, 정작 개척자였던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을 인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양자역학을 추종하는 물리학자들과 죽을 때까지 대립했다.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으로 세계적인 명사가 되어 각국으로 설명회를 다니던 길에 자신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노벨상은 그의 상대성이론이 아닌 광전효과에 수여되었고, 부상으로 탄 상금조차 그가 이혼 합의서에 약속했던 위자료 조건대로 헤어진 아내에게 가버렸다. 천재 아인슈타인이었지만 노벨상과는 그다지 인연이 없었던가 보다.  (작가)       박종진아인슈타인 박종진 아인슈타인 이전 노벨상 수상 노벨상 후보

2025.10.10.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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