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단점유·철거, 노숙자촌 악순환 끊어야…타운 개발지 장기간 방치
“자전거만 꺼내게 해 주세요.” 18일 오전 8시 30분, 한인타운 7가와 8가 사이 맨해튼 플레이스. 공터를 가득 메운 텐트와 짐 사이에서 한 노숙자가 경찰에게 울분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다니엘 차베즈 LA경찰국(LAPD) 올림픽경찰서 순찰반장은 자전거를 꺼내 준 후 “오전 6시부터 충분히 시간을 줬다. 다시 들어가면 체포될 수 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사유지인 이곳은 오랫동안 방치됐다. 몇 달 새 노숙자 10명이 모여들더니 작은 ‘노숙자촌’을 만들었다. 이들에겐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이 됐지만 인근 주민들에게는 불안과 불편의 장소가 됐다. 이날 경관 6명이 현장에 출동한 가운데, 노숙자들은 침낭과 비닐가방 등 본인의 짐을 챙겨 공터 밖으로 나갔다. 이날 철거 작업은 땅 소유주의 ‘사유지 무단 침입’ 신고가 있어 가능했다. 소유주는 엘크 디벨롭먼트(ELK Development)라는 부동산 개발업체로 이곳에 60유닛 규모의 아파트를 지을 것으로 알려졌다. 해리 조 올림픽서 순찰반장은 “몇 달 전부터 주민 민원이 이어졌으나 뚜렷한 해법이 없었다”며 “최근 5지구 시의원실이 소유주와 협의해 신고가 공식 접수되면서 퇴거 조치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현장에는 시정부 관계자들도 보였다. LA홈리스서비스국(LAHSA), LA시장실, 케이티 야로슬라브스키(5지구) 시의원실 관계자들이 노숙자들을 상대로 상담을 진행했다. 노숙자 10명 중 7명은 시가 제공하는 임시 주거 시설로 이동했고, 3명은 입주를 거부한 채 다시 거리로 떠났다. 3개월간 이곳에 살았다는 사퀴타 오웬스는 “이번 기회에 정부 시설로 들어가고 싶다”고 했고, 또 다른 여성 노숙자는 “친구 따라 왔다가 살았는데 이제는 안정된 시설에서 지내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다른 지역 노숙자 3명이 현장에 나타났다. 그중 한인 전명오씨는 한인타운청소년회관(KYCC)가 운영하는 노숙자 지원주택에 거주 중이었지만, “언제 쫓겨날지 몰라 다른 시설을 알아보러 왔다”고 말했다. 상담 과정에서 그는 갱단 공격을 받은 적이 있고 고령이라는 점을 언급했다. 노숙자 개개인의 사연은 절박했지만, 공터가 비워지자 곧장 다시 ‘자리’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나타난 셈이다. 퇴거 후 오전 10시부터는 청소가 시작됐다. 개발업체가 고용한 청소 인력이 텐트와 쓰레기를 치우며 최소 이틀간 정리 작업을 예고했다. LA시장실 관계자는 “사유지이므로 청소 책임은 소유주 측에 있다”고 덧붙였다. 캐런 배스 LA시장은 성명을 내고 “노숙자 텐트촌이 어디에 있든 줄이는 것이 목표”라며 “이번에도 대상자들에게 주거와 서비스를 제공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시는 ‘인사이드 세이프(Inside Safe)’ 프로그램을 통해 노숙자들을 실내 공간으로 옮기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노숙자촌이 다시 생겨나는 걸 막지 못하면, 정책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이번 사례는 ‘방치된 공터’가 곧 노숙자촌의 발판이 된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개발이 지연되거나 소유주 관리가 미흡한 땅에는 어김없이 텐트가 들어서고, 불법 전기 연결, 쓰레기 투기, 심지어 범죄 위험까지 번진다. 인근 주민 김찬오씨는 “진작 철거했어야 한다”며 “밤마다 폭언이 들리고, 길거리에서 불을 지피는 등 치안이 무너졌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반색은 단순히 ‘불편 해소’ 차원이 아니라 생존과 안전의 문제였다. LA 한인타운 내 작은 노숙자촌 철거는 일단락됐지만, 근본적 질문은 남는다. 시와 소유주가 협력해 공터 관리와 활용을 선제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또 다른 텐트촌은 언제든 다시 생겨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노숙자 문제 해결은 지원만큼이나 예방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번 사건은 방치된 땅이 어떻게 도시의 취약 지점이 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주거 지원과 더불어 사유지·공터 관리에 대한 제도적 장치가 함께 가동될 때, 노숙자촌의 악순환도 끊을 수 있을 것이다. 김경준 기자무단점유 노숙자촌 노숙자 지원주택 지역 노숙자 여성 노숙자
2025.09.18. 2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