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9000명이 참가한 축제의 뉴욕시티 마라톤 대회 날이다. 나에게는 연중행사다. 14241 번호표를 받아들고 20번째 출전이다. 햇빛이 빛나는 그야말로 좋은 날씨다. 15번 이상 뉴욕마라톤 메달을 받은 사람들은 많은 특혜 중에서도 허허벌판 추운 곳에서 기다리지 않고 체육관에서 따뜻한 커피, 물, 베이글 등 먹을 것과 화장실도 있어 편안하게 쉬면서 기다릴 수 있다. 베라자노브리지 중간쯤 가면 2~3시간대 뛰는 젊은이들이 쏜살같이 지나가면 나의 독무대였다. 사진 찍고 연기를 하면서 경관들과 담소하고 추위도 잊어버리고 달렸는데 올해는 전혀 다른 광경이 벌어졌다. 기부자들에게도 제일 먼저 출발하는 특전을 부여했다. 그분들은 마라톤을 연습하고 달리는 힘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한 번쯤 마라톤이 어떤 것인지 또 그 환경과 이치를 알기 위해서 참가한 사람들이다. 브루클린 4가에 들어서니 또 빨리 달리는 다른 팀이 오고 있다. 그 무리를 따라 스피드를 내다보니 숨이 차올랐다. 바로 스피드를 줄이고 내가 연습한 상태로 몸을 조절했다. 포니테일이 달랑거리고 짧은 바지에 소매 없는 셔츠까지 그래도 등 뒤에서 땀이 흐른다. 1마일마다 물을 공급해 주는데 그냥 스치고 앞만 보고 달리는 젊은이들 무리에 힘을 받는다. 3시간대 달리는 사람들은 연습도 많이 했고 마라톤에 진가를 터득한 마니아들이다. 뉴욕마라톤 한 번 완주하는 것이 다른 마라톤 대회보다 힘들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첫 번째 완주한 사람들의 반은 계속해서 마라톤을 이어가고 나머지 반은 포기한다고 통계에 나와 있다. 작년에 나에게 꽃을 사 온 켈리는 운 좋게 당첨되어 뛰었는데 다시는 안 하겠다고 다짐했다. 회사 일도 바쁘고 연습도 어렵고 코스가 언덕이 많아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도전 정신을 배웠고 아주 좋은 인생 경험과 잊지 못할 추억을 간직했다며 환하게 웃었다. 젊은 청년이 갑자기 쓰러졌다. 길가에 반드시 눕히고 숨을 제대로 쉴 수 있게 도와준다. 눈을 감고 몸을 옆으로 당겼다가 느슨하게 풀고 움직여보지만 얼굴색이 변하고 호흡곤란으로 힘들어하는 사이 앰뷸런스가 도착했다. 당뇨병 환자가 당이 떨어져 털썩 주저앉은 것은 보았지만 젊은 청년이 쓰러지는 것은 처음 보았다. 자기 스피드보다 빨리 뛰거나 호흡 조절이 안 되어 다리에 쥐가 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젊은 남성들이 뛰다가 전봇대에 기대어 다리를 스트레칭하거나 다리 운동을 하면서 걸어가는 경우도 있다. 퀸즈브리지 앞이 14마일이다. 그때는 허기를 느낀다. 친구가 모지를 들고 기다리고 있다. 얼마나 맛있고 긴요한 요기인지 모른다. 입가에 모지 하얀 설탕 가루가 묻어있는 것을 보고 바로 옆에 있던 백인 남자가 티슈를 내민다. 감사함과 포만감으로 쉽게 다리를 건너 1가에 도착했다. 응원 함성이 저절로 등을 미는 것 같다. 날씨도 좋아 양쪽 길을 빼곡히 메웠다. 76가에서 식구들을 만나 사진을 찍고 응원 열기로 브롱스를 향해 전진한다. 길가에서 물을 나누어 주는 자원봉사자들도 피곤을 모르고 물컵을 내밀면서 응원한다. 두 다리 대신 의족으로 달리는 사람 다리 하나와 크러치를 이용해서 달리는 사람, 한 사람은 휠체어를 밀고 두 사람은 양옆에서 보호하면서 휠체어에 앉아 두발은 열심히 걷는다. 장애인 팔을 자원봉사자 어깨에 얹고 끌리다 걷다 반복하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종점을 통과하는 사람, 다리가 아파 기어서 마치는 사람, 절룩거리면서 뛰고 걷고 자원봉사자가 밀고 앞에서는 당기고 그래도 환한 웃음으로 끝마치는 사람. 이 모든 이들을 “You are amazing”이라고 함성을 지르는 응원객 틈에 끼어 두 손을 번쩍 들고 전광판을 보니 7:00:22가 나를 반긴다. 양주희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amazing 이상 뉴욕마라톤 마라톤 대회 뉴욕시티 마라톤
2025.11.10. 22:04
뉴욕시티 마라톤 19번째 출전이었다. 출전번호 12491. 아침 5시에 자이언트 스타디움에서 버스를 타고 스태튼 아일랜드 베라자노 브릿지 밑에서 모였다. 15번 이상 참가자는 우대해준다. 벌판에서 떨지 않고 건물 안에 들어가면 커피, 따뜻한 물, 베이글까지 준비되어 기다린다. 50여명 넘는 사람들이고 48번 완주한 사람도 있다. 거의 20번 이상의 노장들이다. 그래도 젊은 사람 못지않게 건강해 보였다. 특혜는 11시 30분까지 기다리지 않고 9시 10분 첫출발을 한다. 기다리는 것도 지겹지만 7시간을 달려야 하는 나는 오밤중에 센트럴 파크에 도착한다. 그 고통을 덜어주니 기다리는 가족도 훨씬 가벼운 마음이고 나 또한 햇볕이 있을 때 끝마치니 홀가분한 기분으로 출발한다. 엄청 빠른 속도로 달려나가면 썰물 빠지듯이 베라자노 브릿지 중간쯤이면 나 혼자 달린다. 이 넓은 다리가 완전히 내 차지다. 어느 누가 이 다리를 혼자 뛰면서 지나가겠는가. 브루클린 4가 중간쯤 가면 9시 45분 출발 팀이 지나간다. 힘이 넘치는 젊음과 바위도 쪼갤 수 있는 파워가 넘친다. 여자 선수들은 날씬한 다리에 포니테일이 박자를 맞추듯 출렁거린다. 이 팀은 마라톤의 진수를 보여준다. 구령을 외치는 사람도 없는데 박자를 척척 맞춰가며 팀을 만들어 군가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이 달린다. 외국에서 온 선수들도 많다. 속도가 같은 부류들이 셔츠에 자기 나라를 표시했다. 한 번쯤 뉴욕 마라톤 참가를 원하는 사람들이 무리 지어 달린다. 늦게 출발했지만 속도가 빨라 나 혼자서 달리는 일은 없어졌다. 예전에는 커스텀이 많이 보였는데 이제는 운동복을 입고 뛴다. 그리고 외국 선수들도 나이 들어 보이는 사람은 드물고 모두가 젊은 청춘들이다. 달리고 있는데 다운 신드롬이 있는 학생과 같이 달리게 되었다. 묵묵히 앞만 보고 달린다. 길가에서 방울을 흔들며 목이 터지라 응원을 해준다. 응원하는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하이파이브해달라고 애원하면서 “You can do it, You are the best. Go”를 외쳐준다. 퀸즈 브릿지를 지나 1Ave65가에 들어서면 응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고막이 터질 듯이 우렁차다. 75가에 우리 식구들이 모여 있다. 콜로라도에서 동생과 조카 2명 그리고 조카 아들딸까지 대식구가 기다리고 있다. 할머니를 응원하기 위해서 자리를 잡고 혹시나 찾지 못할까 설레면서 기다리다 내가 나타나니까 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고함을 질러댄다. 몇 분 만나서 응원하려고 먼 곳에서 온 동생 식구들의 박수와 환호 소리에 에너지를 듬뿍 받고 달린다. 뉴욕 마라톤 클럽에서는 선천적 장애인과 후천적 장애인들을 전문가의 도움으로 훈련한다. 특히 정신적 장애인은 어려운 고통을 겪으면서 지속해서 훈련을 반복하며 마라톤에 출전시킨다. 그들을 뒤따라가면 왼쪽 오른쪽에 가이드가 있고 한쪽 손목과 가이드 손목으로 줄을 이어 놓았다. 물이 먹고 싶다면 물을 주고 화장실에 가고 싶다면 화장실을 같이 간다. 가다가 짜증을 내면서 뛰지 않겠다고 길가에 더럭 주저앉기도 하고 팔을 뿌리치면서 울기도 한다. 울면 같이 울고 성질부리면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달래고 얼리면서 앞으로 나간다. 어려운 고비마다 길가에 나와 있는 관객은 더 힘찬 박수와 딸랑이를 흔들면서 “You can do it”을 외친다. 다시 일어나 떠날 준비를 하면 “Good” 하면서 응원석에서도 달랜다. 그는 혼자가 아닌 모든 사람과 함께 한다는 공동의식을 느낀다. 장애인을 지도하며 교육하고 연습을 반복하는 이 어려운 과정을 뉴욕 마라톤 클럽에서만 하고 있다. 26마일은 나와의 긴 싸움이다. 시간 단축하려고 무리하지 않으면 연습한 데로 내 몸의 여건에 맞추어 달리면 그리 힘들지 않다. 여러 사람의 제각각 다른 점을 보면서 달리면 7시간이 그리 길지 않게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릴 수 있다. 이튿날 우리 가게 손님이 인스타그램을 가지고 왔다. 내가 웃는 모습으로 종착점에 들어오는 것을 찍은 사진이다. 손을 번쩍 들고 자연스럽게 잘 찍힌 사진이 어느 수퍼 스타와 비슷하다고 농담도 한다. 다른 손님은 꽃을 사 들고 와서 격려해 주었다. 양주희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마라톤 뉴욕시티 마라톤 뉴욕 마라톤 후천적 장애인들
2024.11.14. 17: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