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중앙일보

광고닫기

전체

최신기사

[상법] 담보 재양도에 관한 법

융자를 완불한 후에는 담보증서를 해소하는 재양도증서를 등기해야 한다. 금융기관으로부터 융자를 받거나 개인 간에 금전 거래가 있을 때, 융자를 보증하는 방법으로 부동산을 담보로 제공한다. 담보설정에 대한 서류상으로 확인하는 방법으로 담보증서(Deed of Trust)를 작성한 뒤 부동산이 위치한 카운티에 등기하게 된다. 신탁증서에 기재된 금전적 의무가 완결되었을 경우에는 재양도증서(Reconveyance)를 카운티에 등기하게 되면 담보해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빚을 다 갖은 후에도 채권자가 담보증서를 파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담보 재양도증서를 카운티에 등기하는 것을 거부할 경우가 있다. 담보 재양도에 관한 법과 채권자가 재양도를 거부할 때 제가 가진 권리에 관해서 설명하겠다.     일반적으로, 담보를 설정하게 한 금전적 의무가 완결되면, 채권자(Beneficiary)는 채무가 완결된 후 30일 안에 차용증(Promissory Note)과 신탁증서 원본, 그리고 재양도신청서를 피신탁인(Trustee) 에게 전달해야 할 의무가 있다. 차용증과 담보증서의 원본이 없을 경우에는 카운티 등기소에서 등기된 담보증서의 사본과 채권자가 제삼자에게 양도한 지 않았다는 서약서를 첨부해야 한다.     재양도신청서를 받을 피신탁인은, 신청서와 신탁증서 원본을 받은 후 20일 안에 재양도 증서를 카운티에 등기해야 하고, 재양도 증서를 카운티에 등기한 후, 피신탁인은 채무자에게 차용증과 담보증서 원본을 돌려줘야 하고 재양도증서의 사본을 채권자에게 보내줘야 한다. 개인 간의 금전 거래가 아닌, 금융기관이 관련된 경우에는 채무의 완료와 이에 따른 재양도증서의 등기는 에스크로 회사가 대행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피신탁인이 재양도증서의 등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에스크로 회사가 채무 완료와 함께 은행에서 제출한 재양도증서를 등기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만약 재양도증서의 등기를 피신탁인이 거부하거나 법정 시한 내에 등기하지 않을 경우에는 채권자가 직접 재양도증서를 등기할 수 있으므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러나 채무자가 채무를 완료한 후에도 채권자가 재양도신청을 거부할 경우에는 전자의 경우와는 달리 복잡한 문제가 발생한다. 물론, 채권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재양도 신청을 거부할 경우에는 민사적인 손해배상의 책임뿐 아니라, 형사적인 책임도 있다. 그러나 채권자가 채무가 완료된 후 연락이 안 되거나 재양도신청을 거부할 경우에는, 재양도 증서를 등기하기 위해서는 채무 금액에 따른 본드(Corporate Bond)와 채권자가 채무가 완료된 후에도 재양도신청을 거부한다는 서약서를 피신탁인에게 제출한 후에야 피신탁인은 재양도증서를 채권자의 신청 없이도 등기할 수 있다.     따라서, 채무관계가 완료된 후, 재양도증서가 등기되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채권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재양도를 거부할 경우에는 전문 변호사와 상의하는 것이 좋다.       ▶문의: (213)487-2371 이승호 / 변호사 Lee & Oh상법 재양도 담보 담보 재양도증서 담보증서 원본 재양도 증서

2024.03.31. 19:00

목숨 담보하고 걸어가는 광야…영성 다듬어지는 곳

최근 고고학자 성경학자 사이에서는 '시내산'이 이집트에 있는것이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 있다는 학설이 대두하고 있다.   현장 답사를 위해 미주 지역에서 세마포 호도스 선교회(대표 켄 안 선교사)가 처음으로 순례단을 모집했다.     미주성시화운동본부 공동대표 송정명 목사는 지난 2월21일~3월5일까지 사우디아라비아 지역 순례 일정에 참여했다. 시애틀 형제교회 권준 목사 뉴욕 시라큐스한인교회 지용주 목사가 동행했다.   특히 이번 답사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에서 한방 주치의로 일했던 김승학 박사가 현장에서 직접 세미나까지 진행했다. 송정명 목사의 답사기를 게재한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걸어간 길 방향 감각조차 잃을 황량한 지역 백성들의 원망과 아우성 있었던 곳 성경의 흔적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한마디로 말하면 감격과 흥분의 시간이었다.     모세와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걸었던 광야 길을 직접 눈으로 보았고 걸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광야가 어떤 곳인지는 현장에 직접 서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그야말로 놀라운 영적 도전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모세가 이집트 바로의 왕궁에서 차세대 왕자로 이집트의 역사 문화 정치 리더십 등의 훈련을 40년간 받아 왔지만 그의 영성은 오히려 미디안 광야에서 다듬어 졌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는 장소다.   광야는 길도 없고 물도 없다. 식량도 구하기 어려운 곳이다. 방향 감각조차 찾기 어려운 곳인데 때로는 세찬 모래 바람이 불어 앞뒤를 구별할 수도 없었다.   이런 길을 40년간 걸어 간다는 것은 목숨을 담보해야 하는 고행길이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과 도우심 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곳이다. 영성이 절로 다듬어 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곳에는 성경에 기록된대로 그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집트에서 실수로 애굽 사람을 주먹으로 때려 죽이고  바로왕의 눈길을 피해 미디안 광야로 도망쳐 나와 피곤함에 지쳐 앉아 있던 모세의 우물도 있었다.     그 근처에는 장인이 될 미디안 지방의 제사장 이드르가 살고 있던 집터도 남아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모세가 이드로의 양떼를 치면서 양들을 몰고 올라 갔다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나셨던 하나님을 만나 애굽에서 종 살이 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라는 특별한 명령을 받았던 호렙산(시내산)의 흔적을 생생히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시내산은 산세가 험하고 그 높이가 2285미터가 넘기 때문에 우리 일행이 함께 정상에 오르기에는 무리한 일정이었다.   사우디 사람들은 그 산을 '라오즈' 산으로 불렀다.     산 정상은 불로 그을린 검은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불 가운데 강림하셨던 하나님의 흔적이라고 믿고 있다. 만약 산 정상에 오르겠다면 4~5명이 텐트를 준비해서 야영하는 일정을 잡아야 할 것 같다.   그 바로 아래는 엘리야 선지가 아합왕의 부인 이세벨의 복수를 피해 도망친 뒤 기도하던 엘리야의 동굴도 있었다.   당시 모세는 시내산에 올라가 40일 동안 기도하고 십계명이 새겨진 돌 판을 받느라고 일정이 늦어졌다. 그러자 산 아래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론을 충동질해서 자기들을 인도할 신을 만들자고 금 송아지 우상을 놓고 경배하며 춤을 추었다. 놀라운 것은 그 제단의 흔적이 지금도 있다.     주변에는 200만 명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이 장막을 치고 거할 수 있는 넓은 평지도 있다.   금 송아지를 만들고 그 앞에서 춤을 추던 모습을 보았던 모세가 우상을 불살라 가루를 만들고 물에 뿌려 백성들에게 마시라고 명령했던(출 32:15-20) 그 냇가의 흔적도 그대로 있었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건기라서 물은 말라 있었지만 흔적은 여전하다. 그 아래 지역에는 맷돌 모양의 돌이 많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동행한 김승학 박사는 그 절구 같이 생긴 돌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만나를 갈아 먹었던 돌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출애굽기 17장에 기록된 르비딤 광야를 갔을 때의 감동도 잊을 수 없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물을 마시지 못하고 지냈기 때문에 모세에게 물을 달라고 아우성을 치며 원망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 모습을 보고 바위를 갈라 물을 공급해 주셨다. 그때 물을 내었던 큰 바위가 갈라진 채 아직도 그대로 버티고 있었다. 그 높이가 웬만한 아파트 7~8층 높이는 되는 것 같다. 누구나 압도당할 수밖에 없고 성경을 믿는다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바로 그 들판에서 갑자기 아말렉 군대의 기습을 받게 된다. 모세는 아론과 홀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고 지상 전투는 여호수아에게 부탁했다. 산에 올라간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하면 이스라엘 군대가 승리하고 모세의 팔에 힘이 빠져 손을     잠깐 내리면 아말렉 군대가 역습을 해오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았던 아론과 홀이 모세의 팔이 내려오지 못하도록 받쳐주었던 그 곳이다.   결국 이스라엘 군대가 아말렉 군대를 무찌르고 모세는 그곳에 기념 돌을 세웠다. 그곳을 '여호와 닛시(출 17:15)' 라고 불렀다. 승리의 현장이다.   그 근처  평평한 들판에는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거했던 터전들이 여기 저기 남아 있었다.     그 지역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모랫길을 약 3마일 이상 걸어 카메라에 담았다.   아직은 관광객이 갈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도로 사정이나 교통편도 불편했다. 특히 광야는 관광 버스 운행이 어렵기 때문에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그곳 사람들은 미국에서 한인이 이렇게 많이 들어온 것을 보고 깜짝 놀라 했다. 지금까지 유럽 지역에서 소수의 그룹이 간혹 방문한 경우는 있다고 했다.   우려가 되는 부분도 있다. 앞으로 관광지로 개발이 되면 여행자에게는 편안할 수 있겠지만 원형 그대로의 보존이 어려울 것 같다는 걱정도 든다. 아무래도 관광지로 개발이 되면 그 주변에 선물 가게 식당 커피숍 같은 상점이 들어오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 지역이 원형대로 보존되기보다는 상술에 의해 운영될 것 같다.   사우디 일정을 끝내고 출애굽의 일정을 따라서 요르단으로 들어가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모세를 불렀던 느보산에도 올라 가보았다  바로 눈 앞에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갈 가나안 땅을 보여 주셨던 그 곳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너는 그곳으로 건너가지 못할 것"이라는 섭섭한 말씀을 주셨던 바로 그 곳이다.   40년간 이스라엘 백성에게 수많은 원망과 삿대질 심지어는 돌팔매질을 당하면서 이곳까지 전심의 힘으로 인도해왔던 모세 아닌가. 꿈에도 그리던 그 가나안 땅에 본인은 들어갈 수 없다는 소리를 들었던 심경이 어떠했을까 하는 깊은 생각을 해봤다.   이번 순례와는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지만 물질 문명의 첨단을 과시하고 있는 두바이를 돌아볼 수 있었던 것도 유익했다.     앞으로 세마포 선교회는 미주 한인 교인들에게 이런 사실을 바로 알리기 위해 대대적인 세미나도 진행할 계획이다. 김승학 장로와 미국의 저명한 학자도 초빙할 예정이다.   동시에 오는 11월에 두 번째 순례단을 보낼 계획이 있다. 목회자들과 관심 있는 교인들이 직접 현장을 한 번 다녀 오기를 강력히 권한다.  목숨 담보 이스라엘 백성 사우디아라비아 지역 미디안 광야

2022.03.21. 18:50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