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광장] ‘지금’과 ‘여기’에서 찾는 새해
새 천년을 맞이한 지도 어언 스물다섯 해가 흘렀다. 어느새 2026년이 다가오고, 우리는 또다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주고받는다. 해가 바뀌면 나라마다 새해를 맞이하지만, 그 부르는 이름과 인식은 조금씩 다르다. 한국이나 미국에서는 해가 바뀌는 순간을 ‘새해(New Year)’라 부르지만, 프랑스에서는 ‘좋은 해(Bonne annee)’라고 인사한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쓰는 ‘새해’라는 말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어딘가 어색하다. 해의 숫자는 하나 늘었고, 우리의 삶은 그만큼 더 짧아졌을 뿐인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새것’이라 부른다. 공간적으로 보면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365일이 지나 다시 같은 자리에 돌아온 것에 불과하고, 시간적으로는 지구가 태양을 2025번 돌고 2026번째 순환을 시작한다는 의미일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출발점을 ‘새해’라 부른다. 미국의 철학자 윌 듀란트는 “이 세상에 새것이란 없고, 다만 다시 배열될 뿐이다(Nothing is new but arrangement)”라고 말했다. 성경 전도서에도 비슷한 구절이 있다. “보라, 이것이 새것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느냐. 우리가 있기 전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 역시 “자기 시간을 잘 살려 쓰는 일은 마치 삶 속으로 스며드는 한 줄기의 빛과 같다”고 했다. 결국 새로움이란 시간 그 자체가 아니라, 시간을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뜻일 것이다. 새것을 유난히 좋아하는 미국은 서기 2000년을 맞이하며 그 집착을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른바 Y2K 문제를 해결한다며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였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컴퓨터 결함을 대비하는 데 1220억 달러를 썼고, 시스템 점검과 중단으로 인해 추가로 220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큰 문제 없이 넘어간 러시아와 대비되며 논란이 일었고, 당시 미 국방성 정보담당자였던 스트라스만은 “미국은 컴퓨터에 지나치게 집착한다”고 꼬집기도 했다. 더 아이러니한 사실은 2000년이 21세기의 시작이 아니라 20세기의 마지막 해였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2000년을 ‘새 천년’, ‘새 세기’로 부르기를 원했다. 하루만 지나면 진짜 21세기인 2001년이 오기 때문이었고, 세상은 늘 그렇게 편리한 표현을 택해 왔다. 법에도, 관습에도, 언어에도 예외는 존재한다. 이제 우리는 또다시 2026년이라는 새해를 맞이하며 복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하지만 ‘새해’와 ‘행복’이 언제나 원앙처럼 잘 어울리는 것은 아니다. 행복은 달력이 바뀐다고 자동으로 따라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로버트 잉거솔의 말처럼 “행복해질 시간은 지금이고, 행복해질 곳은 여기”일 뿐이다. 하루하루의 ‘지금’에서, 한 달 한 달의 ‘지금’에서, 그리고 한 해의 ‘지금’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일이 중요하다. 내가 살아가는 여기에서, 내가 일하는 여기에서, 내가 믿음을 두고 있는 그 자리에서 행복을 찾는 삶이야말로 지혜로운 삶일 것이다. 행복은 새해가 가져다주는 선물이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일하는 사람을 돕기 때문이다. 윤경중 / 연세목회자회 증경회장열린광장 새해 자기 시간 컴퓨터 결함 대문호 빅토르
2026.01.12. 1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