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시위대가 충돌하는 과정에서 지난 5일 60대 유대인 남성이 숨진 것과 관련, 16일 용의자가 체포됐다. 이날 벤투라카운티셰리프국은 팔레스타인 지지자로 무어파크 칼리지 컴퓨터 공학과 교수인 로아이 압델파타 알나지(50.사진)를 과실치사 혐의로 체포했다고 밝혔다. 알나지에게는 100만 달러의 보석금이 책정됐고, 오는 20일 벤투라카운티수피리어법원에 출두할 예정이다. 당시 시위 현장에 있던 목격자들에 따르면 유대인 지지자로 시위를 진행하던 폴 케슬러(69)가 친팔레스타인 지지가 휘두른 메가폰에 머리를 맞고 쓰러졌다. 이후 케슬러는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다음 날 숨졌다. LA유대인연맹(JFLA)은 이날 성명을 통해 “이번 체포는 폭력은 절대로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우리는 정의가 실현될 수 있도록 이 사건을 계속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무어파크 칼리지 측은 이날 해당 교수의 약력을 비공개로 전환하는가 하면, 성명을 통해 “알나지 교수는 행정 휴직 처분을 받았고, 우리는 법집행기관에 전적으로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장열 기자대학교수 유대인 현직 대학교수 유대인 살해 시위 현장서
2023.11.16. 21:53
대학교수는 2023년을 기준으로 얼마나 벌까? 테뉴어(tenure)를 보유한 정교수(full professor)와 부교수(associate professor), 조교수(assistant professor)는 각각 얼마를 벌까? 강사(lecturer)나 겸임교수(adjunct professor) 교수는 어떨까? 이처럼 교수의 세계에는 직급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가장 먼저 겸임 교수는 파트타임으로 1개 또는 몇 개의 다른 대학에서 일한다. 보통 이들은 대학별로 1~2개의 수업을 맡아 가르친다. 많은 겸임 교수들은 1개의 대학에서만 일할 경우 받는 월급만으로는 생계를 충당하기 어렵다. 겸임 교수는 가르치는 것 외에도 학생들이 찾아오는 오피스 아워(office hour)를 운영하고, 성적을 주는 임무까지 맡는 경우가 많다. 두 번째는 강사이다. 이들은 한 대학에서 풀타임으로 강의를 맡아 가르친다. 그러나 종신직인 테뉴어 계약을 하지 않고 보통 매년 갱신하는 단기 계약을 맺는다. 강사는 수업의 개요를 디자인하고 강의와 세미나, 워크숍 등을 진행한다. 그러나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 외에는 보통 추가적인 임무를 맡지는 않는다. 세 번째는 조교수로, 테뉴어 트랙의 첫 번째 단계라 할 수 있다. 때론 종신 교수가 될 가능성이 없을 수도 있고, 부교수가 된다면 종신 교수가 될 수도 있다. 조교수는 대학의 필요에 따라 파트타임 또는 풀타임으로 일한다. 이들은 종종 개론 수업이나 기존에 디자인된 커리큘럼을 가르친다. 또한 오피스 아워와 성적을 주는 임무를 맡는다. 네 번째는 조교수와 정교수의 중간 단계에 있는 부교수다. 부교수는 보통 테뉴어를 가지며, 업무는 조교수와 많이 겹친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오피스 아워를 지키며, 성적을 준다. 그러나 부교수는 어떤 수업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 등 수업에 대해 조교수보다 더 많은 권한을 가진다. 또한 종신직 정교수처럼 7년마다 안식년을 가는 옵션도 가진다. 다섯 번째, 정교수는 가장 상위의 단계다. 부교수와 마찬가지로 정교수는 테뉴어를 가지며 안식년 옵션도 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을 지속하는 한편 이들은 연구를 확장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정교수는 보통 더 유동적인 스케줄을 가지고, 어떻게 또는 언제 가르칠 것인지에 대해 더 큰 권한을 갖게 된다. 때로는 완전히 새로운 수업을 창조해서 가르칠 수도 있다. 미국대학협회(AAUP)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2~2023학년도 현재 미국 내 대학들의 풀타임 정교수 평균연봉은 14만9629달러, 부교수 평균연봉은 10만1941달러, 조교수 평균연봉은 8만8597달러, 강사 평균연봉은 7만2995달러이다. 사립대 교수들의 평균연봉이 공립대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 ‘미국 교사연맹’(American Federation of Teachers)의 보고서에 따르면 겸임 교수 중 겨우 20%만 자신이 대학에서 강의를 통해 버는 수입으로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25%는 연간 2만 5000달러보다 적은 봉급을 받는다고 답변했는데, 이는 4인 가족 기준으로 연방 빈곤선보다도 낮은 금액이다. 같은 조사에서 겸임 교수의 33%는 연간 5만 달러 미만의 봉급을 받는다고 밝혔다. 38%는 정부의 보조금을 수령한다고 답변했다. 많은 겸임 교수들은 복수의 대학에서 스케줄을 맞춰 일한다. 조사에 응한 겸임 교수의 약 50%는 자신이 가르치는 전체 수업에 대해 3500달러보다 적은 급여를 받는다고 답했다. 이 말은 얼마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붓든지에 상관없이 고정된 적은 봉급을 받는다는 뜻이다. 매년 대학에 다니는 데 드는 비용은 인상되고 대학들은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인다. 그러나 대학교수에 대한 대우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 2020~2021년, 그리고 2022~2023학년도에 대학교수 연봉은 겨우 4%가량 인상됐다. 그러나 ‘도시 소비자를 위한 소비자 가격지수’(CPI-U)에 따르면 이 기간 물가는 평균 6.5% 상승했다.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대학교수 연봉은 오히려 2.4%가 하락한 셈이다. ▶문의:(855)466-2783 www.theadmissionmasters.com 빈센트 김 카운슬러 / 어드미션 매스터즈대학교수 정교수 대학교수 연봉 겸임 교수들 종신직 정교수
2023.06.18. 17:35
나는 직장이나 공동체 내 인간관계에는 관심이 없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향 초등학교 교사로 1년간 일했으나 그 학교는 교사가 셋뿐인 가정적 분위기였다. 중학교 선생님들과 초등학교 교사인 나 사이엔 직책과 인격의 차등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중학교 때 선생님들보다 한 차원 낮은 선생 같은 아쉬움 비슷한 생각이었다. 그런 느낌이 대학에 진학하겠다는 뜻을 뒷받침했을지 모른다. 대학을 끝내고 해방이 되면서 고향에 있는 중등학교를 운영했다. 고향 주변의 청소년들에게 중등교육까지는 책임지자는 뜻에서였다. 함께한 교사들은 중학교와 대학 동기들이었다. 역시 가족 분위기였고, 학생들은 순박한 시골의 청소년들이었다. 그러나 공산 치하에서 가르치는 것은 빙판에 씨를 뿌리는 것과 같았다. 불가능하다는 어두운 그림자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내 생존 자체가 위험한 처지가 되었다. 이승만과 김성수, 무엇이 달랐나 2년 후에 탈북하고 서울 중앙중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직장다운 일터에 들어선 셈이다. 자연히 공동체 안의 내 위상과 대인 관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당시 정치계 현실이 끼친 영향도 있었다. 그즈음 터득한 몇 가지 깨달음이 생겼다. 첫째, 상사에게 아첨하는 일은 하지 말자. 내가 상사나 지도자가 되면 절대로 아첨을 일삼는 사람은 가까이하지 말아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아첨 분자들과 함께했기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실정을 했다. 인촌 김성수는 함께한 사람들과 격의 없는 우정을 나눴기에 모범적인 인간관계를 남겼다. 존경과 흠모의 대상이 되었다. 둘째, 동료와 선의의 경쟁은 좋으나 상대를 비방하거나 나보다 안 되기를 바라는 반(反)인격적인 행위는 하지 말자. 내 인품과 인격을 훼손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는 선한 사회생활에서 밀려날 뿐이다. 셋째, 같은 직장이나 공동체서 편 가르기를 하는 어리석은 과오를 범하지 말자. 윗사람이나 동료를 대할 때 서로 존중하며 공생의 미덕을 높여야 한다. 정치계의 편 가르기가 국사를 망치는 사례를 자주 보았기 때문이다. 연세대에 오면서 두 가지 기대를 품었다. 중고등교사보다 인격과 학문의 수준이 높은 선배들과 함께하기에 인격함양과 학문발전의 희망을 안고 출발했다. 내 대학동료들은 먼저 교수가 되었고 나는 10년 정도 학문을 소홀히 했으므로 나 자신의 부족을 인정했다. 그러나 5~6년 후에는 그 거리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대학교수의 수준과 학문적 열정이 기대보다 높지 못했던 것 같았다. 도산·인촌 등 사회 지도자와 교류 내가 중앙학교 교감으로 있을 때, 신인 교사에게 당부했다. “우리 학교에 있는 동안에 열심히 공부해서 학문의 길을 걷든지 교육자로서의 사명감을 간직해 주세요. 둘 다 놓치고 60세가 되면 후회하게 되고 인생의 공허감과 낙후감을 갖게 됩니다”라고 했다. 대학에 몸담고 있을 때도 모범이 될 만큼 인격과 품위를 갖춘 선배나 동료는 많지 않았다. 내가 대학 다닐 때의 교수들과 차이가 있어 보였다. 학문적 열정과 인격적 소양에서는 나도 비슷한 위치에서 출발해 늦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다. 두 가지 이유였을 것이다. 나는 대학에 오기 전부터 도산·인촌을 비롯해 여러 종교계 지도자나 사회 인사들과 접촉하는 기회가 많았다. 특히 기독교계 지도자들과의 교류는 다른 교수들보다 앞서 있었다. 또 다른 이유는 운동권 학생들의 활동이 표면화하면서 같은 계통의 일부 교수들이 편 가르기에 앞장서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상과 학문은 물론 대학교육의 전통과도 어긋나는 태도였다. 기독교교육이 폐쇄적이 되면 인문학의 우수성과 창조적 가치창출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대학을 떠날 때쯤 되어서는 새로운 희망이 생겼다. 내가 존경하는 김태길·안병욱을 비롯한 친구들이 대학과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학문적 열성과 높은 인격을 갖추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후배와 제자들이 그런 소중한 친구들을 사표로 삼으면서 대학의 전통을 이어가게 되리라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그들의 애국심과 지성사회를 위한 성의 있는 노력이 새 역사를 이끌어 갈 것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큰 소가 떠나면 작은 소가 지켜 큰 소가 떠나면 작은 소가 자라 그 뒤를 계승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요사이 나는 후배 교수들에게 “총장의 존경을 받는 교수가 되라”고 권고한다. 그런 교수는 대학의 운영을 책임 진 총장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협조하게 된다. 세계를 이끌어 가는 대학이 모두 그렇다. 내가 교육계로 진출한 때는 교육이 목적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에 있을 때는 훌륭한 대학이 희망이었다. 그러나 대학을 떠난 뒤부터는 넓은 사회와 유구한 역사의 고장에 다시 동참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그만큼 성장했거나 지도력을 갖추었다는 뜻이 아니다. 나에게 주어지는 책임과 의무가 아직 남아있다는 사명감 때문이다. 나무는 홀로일 때는 영향이 크지 않다가 같은 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루게 되면 그 공동체는 역사의 주체가 된다. 그 숲이 한 산을 차지하면 위대한 유산을 남길 수 있다. 지성인의 사명이 그런 것이다. 김형석 / 연세대 명예교수김형석의 100년 산책 초등학교 대학교수 고향 초등학교 신인 교사 중학교 선생님들
2023.03.31. 19: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