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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이름을 빌리지 않는 용기

10대 초에 흑산도에서 3년을 사는 동안 바다를 마음에 들였다. 해안선이 기다란 캘리포니아에서 40년을 사는 동안 바다와 친구가 되었다.만남이 늘어갈수록 바다의 다양한 표정과 감정을 더욱 깊이 알게 되었다. 청탁(淸濁)과 호오(好惡)를 가리지 않고, 받아들인 물을 차별하지 않는 바다를 닮고 싶었다.   물과 대면할 때마다 공자의 논어 옹야편에 있다는 문구를 생각했다. ‘지자요수(知者樂水), 인자요산(仁者樂山).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인자한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물을 좋아하는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그저 물을 좋아할 뿐, 지혜와는 무관하다고, 그러니까 기원전 500년에 살았던 공자의 사상은 한 개인의 시대적 견해일 뿐 공식(公式)이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은데, 마땅한 표현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숙원을 풀어주는 문구를 발견했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지자(知者)는 물을 즐기고, 인자(仁者)는 산을 즐긴다 하였으나, 나는 그저 물과 산을 즐길 뿐, 지자와 인자의 이름을 빌리지 않는다.’     북송 시대 문장가 소식(蘇軾)의 글이다. 공자에게 정면으로 맞서며 세기의 논리를 뒤흔드는 당당함에 반해버렸다. 시대문화의 전횡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기개가 매력적이었다. ‘~하니까’, ‘~ 때문에’ 라고 변명하지 않고 자기 의지대로 살겠다는 단호함에 환호했다.     ‘그저’는 이 문장에서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대충 얼버무릴 때 사용하는 어정쩡한 단어가 아니다. 내적으로 작심하고 선택한 어휘다. 기대지 않는 독립성, 관계와 무관한 자존감이 내재되어 품격이 돋보이는 표현이다.   어느 날 공자의 생각을 읽었다. 혼란과 분열의 시대에 살았던 그는 인간의 완성을 인(仁)에서 찾고, 그 인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지(知), 즉 분별력과 통찰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에게 지(知)는 변화를 읽고 길을 찾는 능력으로, 흐름 속에 자신을 놓을 줄 아는 것이요, 인(仁)은 감정이 아닌 지속성으로, 쉽게 흔들리지 않고 관계를 견디며 자기 자리를 떠나지 않고 타인을 감싸 안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지자요수 인자요산은 취향이 아니라 자연의 성질을 닮은 덕의 성향에 대한 비유였다.     공자의 비유에 대한 화답 같은 소식의 글 또한 네 본성대로 살라는 존재 방식에 대한 비유였다. 물과 산처럼 사람마다 타고난 결이 다르지만 완성을 위해서는 서로가 필요하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혹은 물이니 산이니 구분하지 말고 산이든 물이든 제 속성대로 살게 하면 조화로운 하나가 되지 않겠는가, 라는 청유였을까.   낳고 살고 죽기. 인생이란 연습 없이 태어나 결과를 보장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티다가 이 세 가지 항목으로 간단히 요약정리된다고 말한다.     함께 견딜 때 오래 버틸 수 있다. 우리 서로가 타인의 이름을 빌리지 않고 자신의 본성에 맞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따스한 눈길로 그저 응원해주면 어떨까. 상대방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  하정아 / 수필가이 아침에 이름 용기 문장가 소식 독립성 관계 동안 바다

2025.12.15.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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