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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타운 맛따라기] 커틀릿, 돈카츠 그리고 돈까스

‘돈까스’의 뿌리는 유럽의 ‘포크 커틀릿(pork cutlet)’에 있다. 19세기 말, 서양 요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일본이 영국식 커틀릿을 일본식으로 변형하면서 ‘돈카츠(とんかつ)’가 탄생했다.     이후 한국전쟁 직후 미군문화와 일본식 경양식이 섞이며 ‘돈까스’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우스터소스에 사과맛을 더한 달콤한 소스를 부어먹거나 찍어먹는 부먹·찍먹 논쟁은 그때부터 이어졌다. 여기에 카레를 곁들이면 카레돈까스, 새우나 소고기를 넣으면 새우까스, 비프까스로 변주된다.   한국에서 돈까스는 한때 ‘경양식집의 상징’이었다. 샹들리에가 달린 고급 식당에서 크림스프와 함께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먹던 음식, 말하자면 서구식 근대화의 상징이자 청춘의 추억이었다. 하지만 절반쯤 먹다 보면 느끼함이 몰려와 김치가 생각나는 것도 어김없었다.   LA 한인타운에서도 이 향수는 고스란히 이어졌다. 올림픽과 크렌셔의 ‘두발로’, 윌셔길 ‘안전지대’, ‘카페 모네’ 등은 80~90년대 한국식 경양식집을 모방한 카페들이었다. 90년대 3가와 버몬트길의 일본인 경양식집 ‘알프스’는 그 계보의 원조격이다. 이후 상호를 ‘아이팝(Eyepop·Popeye의 철자를 거꾸로 한)’으로 바꾸며 명맥을 이었다.   이 시기 한인 카페문화의 기본 메뉴는 단연 돈까스였다. 옥스포드 카페, 난다랑, 나무하나, 인터크루 등 젊은층이 모이던 모든 레스토랑의 메뉴판에는 돈까스가 빠지지 않았다. 심지어 주방의 실력을 가늠하는 기준이 “돈까스 소스를 제대로 만들 줄 아느냐”였다. 주방장은 소스 비법을 감추고, 헬퍼들은 배워보겠다고 들이대던 시절이었다.   돈까스는 대체로 돼지고기 등심을 손질해 힘줄을 제거하고 연육망치로 두드려 얇게 편 뒤, 빵가루를 입혀 얼렸다가 튀겨내는 방식이었다. 접시를 가득 덮는 크기, 성인 남자 얼굴보다 큰 돈까스가 당시 유행의 상징이었다.   이후 코리아타운플라자 푸드코트의 ‘왕돈까스’의 등장은 게임체인저였다. 케첩 베이스의 붉은 브라운 소스에 시큼달콤한 맛을 더해 아이들도 쉽게 즐길 수 있었다. 접시를 가득 메운 왕돈까스는 보는 재미와 먹는 즐거움을 동시에 줬다.   한인타운 돈까스의 품격을 한 단계 높인 인물은 ‘꿀돼지’의 단 김 사장이다. 그는 윌셔와 알렉산드리아, 현재 ‘담솥’ 자리에 정통 일본식 돈까스 전문점 ‘와코’를 열었다. 얼리지 않은 프리미엄 등심을 두껍게 썰고, 최소한의 망치질 후 바로 튀겨내는 ‘겉바속촉’의 기술은 한인타운 돈까스의 새 장을 열었다. 손님이 직접 미니 절구에 통깨를 갈면 서버가 소스를 부어주는 퍼포먼스까지 더해 대박을 터뜨렸다.   그 영향으로 옆집 카레 전문점은 문을 닫을 정도였다. 이후 와코는 아로마센터 푸드코트 입점으로 잠시 주춤했으나, 올림픽길 3호점 오픈으로 다시 부활했다.   벌몬트와 7가 ‘고바우 쇼핑센터’ 내에는 ‘명동돈까스’라는 이름으로 친척이 운영하는 분점이 생겼다가 몇 년 후 샤부미로 전업했다. 일본 하우스푸드가 운영하던 ‘카레하우스’가 마당몰에 문을 열었고, 이후 코코이치반이 6가 시티몰 코너에 들어서 타운 유일의 카레돈까스 전문점으로 자리 잡았다. 카레가 주 메뉴지만, 손님 대부분은 카레돈까스를 찾는다.   가주마켓 3층 푸드코트의 ‘브라운돈까스’는 라면과 돈까스 세트로 인기를 끌었지만, 푸드코트 폐점과 함께 사라졌다. 이후 시티센터로 옮겼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최근엔 올림픽과 하버드 코너에 문을 연 ‘라성 돈까스’가 매운 돈까스로 인기를 모았다. 일본식 정통 튀김 기술에 한국식 케첩소스를 입혀 두 세계의 장점을 절묘하게 섞어낸 맛이었다.   현재 한인타운의 돈까스 지형도를 그려보면, 일본식 정통 와코, 한국식 왕돈까스, 한·일 퓨전형 라성돈까스, 그리고 카레돈까스의 코코이치반 등 네 갈래로 나뉜다.   돈까스 역시 타운의 다이내믹한 맛을 상징한다. 한국인의 근대적 미식 경험, 일본식 경양식 문화의 변용, 그리고 LA 한인사회의 추억이 한데 녹아 있다. 고급 경양식에서 출발해 지금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일상식으로 자리 잡은 돈까스 한 접시는, 이민 1세대에겐 향수이자 2세대에게는 세대를 잇는 문화의 맛이라 할 수 있다. 라이언 오 / CBC 윌셔프로퍼티 대표K타운 맛따라기 커틀릿 돈카츠 카레돈까스 새우 한인타운 돈까스 돈까스 소스

2025.11.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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