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국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서 만날 때, 의제에는 무역, 대만, 우크라이나 등이 오를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이 언급했듯이 ‘펜타닐(fentanyl)’ 문제도 포함된다. 하지만 펜타닐과 함께, 캄보디아·라오스·미얀마에 있는 동남아시아의 ‘보이스피싱 및 온라인 사기 조직’ 문제도 우선순위로 다뤄져야 한다. 이들 중 일부가 펜타닐을 밀매하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인신매매에 가담하고 전 세계 일반 중국인, 미국인 등으로부터 수십억 달러를 사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양국이 따로 대응하는 것보다 협력하는 편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펜타닐의 주요 피해자가 미국인이었던 것과 달리, 이 사기 조직들은 지금까지 아시아인을 주된 피해자와 강제노동 대상으로 삼아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범위를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중국이 사이버 사기 방지책을 강화하고 국경 인근의 조직을 폐쇄하자, 이들은 더 남쪽으로 이동하며 새로운 기회를 모색했다. 이들은 인력을 모집할 때 소셜미디어를 통해 ‘고수입 일자리’를 내세워 사람들을 유인한다. 하지만 실제로 현지에 도착한 이들은 여권을 빼앗기고, 가혹한 폭행과 감금에 시달리며 세계에서 가장 잔혹한 범죄 조직을 돕는 노예 같은 삶을 살게 된다. 올해 초 태국 방콕에서 젊은 중국 배우가 ‘고액 아르바이트’ 제안을 받고 실종된 사건으로 이 산업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배우의 여자친구가 중국 SNS에 실종 사실을 알리면서 거센 여론이 일었고, 이는 태국 관광산업에도 타격을 줄 위기로 번졌다. 태국 경찰은 신속히 그 배우를 구출했고, 미얀마의 한 소수민족 무장세력이 수천 명의 억류 피해자들을 ‘해방’시켰다. 하지만 여론이 잠잠해지고, 태국 정부가 국경 전력·인터넷 공급을 차단하자 미얀마 최대 사기 거점인 ‘쉐꼬꼬(Shwe Kokko)’는 곧 발전기와 스타링크(Starlink) 위성 인터넷을 이용해 다시 가동됐다. 최근 미얀마 당국의 급습으로 30여 명의 통신망 연결자들이 체포되고, 스타링크 계정 2500개가 정지됐으며, 2000명 이상의 범죄자들이 검거됐다. 이 중 1000명 이상은 중국인, 인도인, 동남아인 등으로 태국으로 도피했다. 그러나 이 산업의 실제 중심지는 미얀마가 아니라 캄보디아다. 이곳은 인터넷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고위 정치권과의 연계 및 국가 차원의 묵인 속에 보호를 받고 있다. 지난 8월, 캄보디아에서 젊은 한국인의 시신이 발견된 사건은 한국 내 여론을 들끓게 했고, 수십 명의 한국인이 송환됐다. 일부는 자발적으로 사기 행위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다른 이들은 납치되어 강제로 일을 해야 했다. 한국 정부는 이 문제를 다루면서도 캄보디아와의 외교 관계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사기 조직들은 막대한 이익에 힘입어 활동 범위를 더욱 넓히고 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대응은 분절적이고, 임시적이며, 사건이 발생한 뒤에야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강력하고 지속적인 국제 공조가 없다면 이 잔혹한 산업은 계속 성장할 것이다. 이 문제의 근원과 피해자가 모두 중국인인 만큼 중국이 가장 적극적인 대응을 보여왔지만, 그 초점은 자국민 보호에 맞춰져 있다. 그 결과, 단순 하위범들만 단속하고, 조직들은 방어가 덜 된 국가로 이동하게 하고 있다. 미국도 최근에서야 이 문제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미 의회 산하 위원회의 7월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대응은 “분절되어 있고, 자원이 부족하다”고 평가됐다. 현재 추정되는 전 세계 사기 수익 500억~750억 달러 가운데 약 100억~125억 달러가 2024년 미국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 문제를 방치할 경우 피해 규모는 더욱 커질 것이다. 따라서 중국과 미국은 자국민과 전 세계를 위해 사기 및 불법 마약 조직에 대한 공동 대응을 주도해야 할 책임이 있다. 두 나라가 주도하는 공동 캠페인은 사기와 펜타닐 문제를 동시에 포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각국의 전담 기관 강화, 정보·수사·금융 규제의 국내외 협력이 필요하다. 자금세탁 방지처럼, 정부 관계자가 연루된 경우라도 ‘큰 물고기’와 그들을 돕는 세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중국과 미국이 최고 수준에서 공조한다면, 태국·싱가포르·호주·캐나다·멕시코 등도 참여하는 다국적 공조체제가 가능할 것이다. APEC은 관련국이 다수 참여하고 있는 만큼, 이러한 협력의 출발점으로 적합하다. 불과 몇 년 만에 수만 명을 인신매매하고, 무능하거나 공모한 정부의 보호 아래 전 세계 수백만 명의 돈을 갈취한 이 산업을 근절하려면, 강력한 정치적 의지와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사기와 마약이라는 ‘두 악(惡)’에 맞서는 국제적 전환이 이루어진다면, 그 자체로 노벨평화상감의 성취가 될 것이다. 찰스 E 모리슨 / 이스트웨스트센터 선임연구원특별 기고 동남아 출발점 사기 조직들 태국 관광산업 태국 정부
2025.10.29. 19:06
배달의민족과 고젝이 베트남을 떠난다. 고젝은 인도네시아 최초의 유니콘 기업이다. 그랩·티키 등 동남아 대형 플랫폼에 투자한 국내 투자자들이 기업가치 하락에 속앓이 중이다. 미국 증시에 상장한 그랩은 주가가 70% 가까이, 고투그룹은 80% 이상 폭락했다. 동남아 ‘온라인 투 오프라인’(O2O) 플랫폼 기업들은 치열한 경쟁과 낮은 수익성으로 고전한다. 배민과 고젝은 슈퍼앱 그랩과 경쟁에서 패했고, 그랩 역시 일부 지역에서만 흑자일 뿐 적자다. 이커머스 시장도 비슷하다. 싱가포르 1위였던 큐텐은 쇼피와 라자다의 공세에 흔들리며 무리한 확장으로 정산지연 사태의 주범이 됐다. 고투그룹은 손실을 못 견디고 토코페디아 지분 70%를 중국 틱톡샵에 넘겼다. 일부 기업이 허덕여도 ‘동남아에는 비즈니스 기회가 없다’는 속단은 금물이다. 전체 디지털 경제는 어느 지역보다 성장이 빠르며, O2O 플랫폼 외에도 소셜커머스·헬스케어·푸드테크·그린테크에서 기회가 창출되고 있다. 올해 한국의 고피자에 ‘태국의 삼성’으로 불리는 CP그룹이 1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CP그룹은 식품·유통·통신 등 사업 분야가 다양한 1위 그룹이다. 양사 협력은 글로벌 시장에서 상당한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바이오연료 스타트업 리피드도 주목받고 있다. 리피드는 베트남에서 폐식용유를 수거해 지속가능항공유(SAF)로 정제하고, 이 과정에서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한 종합 솔루션을 제공한다. 이미 380여 개 글로벌 기업을 고객으로 확보한 리피드는 기후위기 대응으로 인한 SAF 수요 급증과 전 세계 폐식용유의 70%가 아시아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성장 가능성이 매우 크다. 아세안 지역 내 데이터센터와 인공지능(AI) 투자도 급팽창하고 있다. 디지털 산업의 빠른 성장과 각국의 데이터 주권 보호 강화로 데이터센터 수요가 급증하기 때문이다. 아마존·구글·메타·마이크로소프트·오라클 등 주요 글로벌 기업들이 이미 동남아에서 데이터센터 투자를 진행 중이며, 여기에 중국의 알리바바와 화웨이, 일본 텔레하우스, 호주 넥스트DC도 가세했다. 향후 3~5년 안에 데이터센터는 두 배 이상 증가가 예상되며, 이에 따라 데이터센터 운영에 필요한 친환경 전력 수요도 많이 늘어날 전망이다. 승자독식 구조인 플랫폼 비즈니스에서 실패했다고 아세안 시장을 평가절하하고 돌아서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더 정교한 전략을 수립하고, 동남아의 신산업에서 새로운 기회를 발굴해야 한다. 실패는 시장이 아닌 전략의 문제다. 최적의 파트너와 협력하고 명확한 솔루션으로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고피자·리피드처럼. 고영경 /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디지털통상 연구교수마켓 나우 동남아 시장 글로벌 시장 데이터센터 수요 동남아 대형
2024.10.21. 18: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