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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 나의 안식처 ‘데스칸소 가든’

올해 봄, 한 달 새 3번이나 데스칸소 가든에 다녀왔다. 동백꽃을 보기 위해서다. 2월에 비가 많이 와서인지 처음 갔을 때는 동백꽃이 드문드문 피어 있었다. 두번째 갔을 때는 활짝 핀 꽃보다는 꽃봉오리들이 더 많았다. 세 번째 갔을 때야 비로소 만발한 동백꽃을 볼 수 있었다.                     데스칸소 가든은 LA를 넘어 타주에서도 방문하는 관광명소다. LA 다운타운 북쪽 산자락에 있다. 한인이 많이 사는 지역이어서 한인들도 많이 방문한다. 우리 집에서는 차로 10여분 거리라 관광지라기보다 앞마당 같은 느낌이다.               1920년대 초반에는 맨체스터 버디라는 사업가의 개인 소유였다. 그 후 1953년에 LA 카운티에 팔았다고 한다. ‘데스칸소’라는 말은 스페인어로 휴식, 안식이라는 뜻이다.     동백숲, 일본 정원, 장미 정원, 연못, 산책로 등이 잘 조성되어 있다. 중간중간 개울물도 흐르고, 정원 사이사이로 꼬마 기차도 다닌다. 나무 그늘마다 벤치가 있어 한가로이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말 그대로 휴식의 공간이자 안식처이다.       데스칸소 가든에서 특히 유명한 것은 동백꽃이다. 4만여 그루의 세계 최대 동백꽃 단지다. 초봄이면 데스칸소 가든과 동백은 어느 쪽이 먼저라 할 것 없이 한 묶음으로 떠오른다. 약 150여 종의 다양한 품종과 빨강, 분홍, 흰색의 동백꽃이 핀다. 성급한 녀석들은 이미 땅바닥에 떨어져 있다.     데스칸소 가든에 동백꽃이 그렇게 많은 이유는 소유주였던 맨체스터 보디의 취향 때문이다. 그는 특히 동백을 좋아해서 전 세계에서 동백을 수집했다고 한다. 일설에는 데스칸소 가든이 개발되기 전, 그곳은 일본인 소유의 동백나무 묘목장이 있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스파이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미국에 거주하는 일본인 강제수용 명령이 떨어졌기 때문에 그는 수용소로 보내지기 전 수십만 그루의 동백나무를 팔았다고 한다. 그때 맨체스터 버디가 시장에 나온 동백나무를 사들여 데스칸소 가든의 기초가 됐다는 슬픈 얘기도 있다.     동백꽃이 지는 모습은 마치 목이 떨어진 듯한 모습으로 느껴진다. 대부분 꽃은 꽃잎이 하나씩 흩어지면서 지는데 동백꽃은 꽃 전체가 통째로 ‘툭’ 떨어진다.     2월 말이나 3월 초에는 다양한 ‘동백꽃 쇼 케이스’가 열린다. 직접 본 적이 있는데 그토록 다양한 모양과 색상의 동백꽃 송이들이 있는 줄 몰랐다.   데스칸소 가든에는 조금씩 다른 산책 코스가 있다. 나는 입구에서 동백숲이 나오는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동백숲을 지나 산책로로 연결된 안쪽으로 들어가면 일본 정원이 나온다. 왜 미국 가든에 일본 정원이 있을까 궁금했다. 20세기 초반 남가주에는 많은 일본계 정원사, 조경사들이 활동했다고 한다. 그들이 LA지역 정원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고, 데스칸소 가든에 일본식 정원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는 설이 있다. 일본 정원을 보며 ‘한국식 전통 정원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부러운 마음이 든다.   일본 정원에서 위쪽으로 더 올라가다 보면 언덕 위에 버디 부부가 거처하던  ‘버디의 집’이 나온다. 그 옆에는 작은 갤러리가 있어 전시회가 열리는데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버디의 집에서 언덕을 내려오다 보면 장미 정원이 나타난다. 약 1600그루의 장미 나무가 있다.  5월에서 6월 사이에는 붉은색, 분홍색, 노란색, 흰색 등 다채로운 색상의 품종이 모여 있어 화려하기 그지없다.  화창한 봄날, 장미 정원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여인의 모습은 그림 같다. 장미 향이 가득한 정원에서 사진도 찍고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데스칸소 가든을 한 바퀴 산책한 후에는 입구에 있는 카페 의자에 앉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모두 표정이 여유롭다. 그들에게는 특별히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든다. 테스칸소 가든 특유의 평화로운 분위기가 사람들 얼굴에  그대로 나타나는 것 같다.           1988년 겨울, 미국에 온 후로 두 번 이사했다. 두 번 다 데스칸소 가든과 가까운 지역이었다. 바로 전 살던 집은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젊어서는 연 회원권을 사 놓고도 많이 이용하지 못했다. 바빠서라기보다는 자연을 즐길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     나이가 들어가며 자연에 대한 관심이 는다. 천천히 걸으며 자연을 감상한다. 자연이 내 삶의 질을 높여주는 것을 느낀다.  젊은 시절에는 일과 인간관계 등에 더 신경을 쓰느라 자연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서는 흙과 풀 냄새를 맡으며 걷는 것이 좋다. 자연의 소리를 듣거나 계절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느끼며 걷는 과정을 즐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소란스러울 때가 많지만 자연은 때가 되면 어김없이 약속을 지킨다. 잎을 틔우고 꽃이 피는 순리는 한결같다. 변함없는 자연의 모습에서 마음의 위안을 얻게 된다.         요즘은 동네를 천천히 걸으면서 새소리를 듣는다. 다람쥐들이 뒷발로 서서 두 손을 모으고 입을 오물거리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나무를 눈여겨 보고 길섶의 작은 꽃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앙상했던 가지에서 어느새 연둣빛 싹이 돋고, 화사한 꽃들이 차례대로 피어나는 것이 눈에 보인다. 분홍색 핑크 레이디는 어느새 지고, 동네 곳곳에서 백장미들이 고상한 자태를 뽐낼 준비를 하고 있다. 젊은 시절엔 보이지 않던 미세한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세월이 흐를수록 고은의 시 ‘그 꽃’ 이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목표를 향해 바쁘게 올라갈 때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소중한 가치들이 마음을 비우고 내려오는 길에서야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삶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그 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젊은 날, 분주함 속에서 보이지 않던 것들은 항상 우리 곁에 있었던 것임을 깨닫는다. 그 꽃의 존재가 우리 삶의 많은 부분임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짧은 시 한 편이 마음속에 조용히 머물다 간다.     데스칸소 가든은 한 번 가보고 마는 곳이 아니다. 일 년 내내 계절마다 바뀌는 꽃들과 나무들이 또 다른 풍경을 만들기 때문이다. 도심의 소란함에서 벗어나 아름답고 평온한 데스칸소 가든과 같은 안식처가 집 가까이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배광자 / 수필가문예마당 데스칸소 안식처 데스칸소 가든 동백숲 정원 동백꽃 송이들

2026.05.14.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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