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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의 사랑, 영화사의 전설이 되다

사랑, 연인이라는 통상적 단어가 이들 사이에서는 금기어가 된다. 브로크백 마운틴(Brokeback Mountain)에서 만난 두 남자의 원초적 시선이 그 사랑의 시작이었다.     2005년 대만 출신의 거장 이안 감독이 애니 프루의 동명 단편 소설을 각색, 영화화한 ‘브로크백 마운틴’이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2006년 아카데미상에 작품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여우조연상 등 최다 8개 부문 후보에 올랐고 감독상, 각색상, 음악상 3개 부문을 수상했다. 그해 작품상이 ‘브로크백 마운틴’이 아닌, ‘크래쉬(Crash)’로 선정된 것은 역대 아카데미상 최대 오점 중 하나로 거론된다.     영화가 발표된 2005년 당시, 할리우드 주류 영화에서 동성애를 주된 서사로 다룬다는 것은 금기에 가까운 파격적인 시도였다. 특히 ‘서부극’이라는 전통적인 남성성을 상징하는 장르에 동성애 코드를 접목한 것은 보수적 성향의 대중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브로크백 마운틴’은 동성애를 특정 소수자의 문제가 아닌, 보편적인 인간의 사랑과 상실, 그에 따른 고뇌 등 비극적인 감정으로 접근했다. 이는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토론을 촉발했고 관객들을 동성애 커플의 감정선에 깊이 공감하게 하여 동성애에 대한 대중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허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영화의 배경이 된 1960년대 와이오밍은 매우 보수적인 사회였고, 동성애 행위가 발각되면 폭력의 대상이 되던 시절이었다. 영화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통해 두 주인공의 사랑이 얼마나 외롭고 고통스러운 여정이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1960년대 와이오밍의 브로크백 마운틴의 양 떼 방목을 위해 에니스(히스 레저)와 잭(제이크 질렌할)이 채용된다. 이들은 낮에는 초원으로 양들을 몰아 풀을 먹이고 밤에는 방목지 근처 텐트에서 잠을 자며 양을 돌본다. 부족한 음식을 보충하기 위해 사슴을 사냥해서 먹는 등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 지면서 잭과 에니스는 조금씩 서로에게 이끌린다.     이들은 식사를 같이하는 등 하루 종일 함께 지내지만 서로 맡은 일이 달라 밤에는 각자의 텐트에서 따로 잠을 잔다. 둘은 어느 날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다 취해버린다. 양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하는 에니스는 몸을 가눌 수 없어 땅 바닥에 담요를 덮고 누워 동이 트길 기다린다. 모닥불이 꺼지고 추위에 떠는 에니스를 잭은 텐트 안으로 들어오라 한다. 옆자리에 누운 에니스를 뒤에서 포옹하는 잭의 돌발행동에 놀란 에니스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만 끝내 뿌리치지 못하고 관계를 맺는다. 잠시 동안의 어색한 시간이 지나가고 둘은 서로에게 강하게 끌리며 더욱 친밀해져 간다.     사랑에 빠진 두 남자는 예상보다 일찍 철수하게 되면서 기약 없이 헤어진다. 에니스는 알마(미셸 윌리암스)와, 잭은 루린(앤 해서웨이)과 결혼해 자녀를 낳고 살아간다.     에니스를 잊지 못하는 잭이 4년 만에 찾아온다. 둘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후미진 곳으로 들어가 키스로 재회의 기쁨을 나눈다. 우연히 이 광경을 목격한 알마는 충격에 휩싸이고 두 남자의 관계가 지속하는 것에 절망한다. 이 사실을 모르는 에니스는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받은 알마는 에니스와 이혼한다.   20년 동안 이어진 잭과 에니스의 만남은 잭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끝맺음을 맺는다.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방황하다 끔찍한 최후를 맞은 잭의 본가를 찾아가는 에니스, 가고 없는 잭의 방에 앉아 그를 그리워한다. 평생 자신을 감추고 억압하고 부인하며 살아왔던 에니스의 애처로운 모습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전반적으로 섬세하고 깊이 있는 연출, 두 주연 배우를 포함한 전체 캐스팅의 뛰어난 앙상블 연기, 아름다운 영상미와 음악이 조화를 이룬 명작으로 평가받는다. 이안 감독은 와이오밍의 거대한 자연을 배경으로 두 남자의 비극적인 사랑을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으로 그리기보다, 인간의 외로움, 갈망, 그리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비극성을 서정적이고 절제된 방식으로 표현했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퀴어 영화가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갖추며 주류 영화계에서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준 최초의 영화로 영화사적 가치를 지닌다. 동성애라는 민감한 주제를 인간적 감정으로 승화시켜 대중에게 다가섰고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와 퀴어 영화의 지평을 넓히는 선구자 역할을 했다.     영화의 아카데미상 수상은 동성애 영화가 특정 커뮤니티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충분히 공감될 수 있는 주제임을 증명하며 이후 퀴어 영화들이 더 넓은 관객층에 어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문라이트’ 등 다양한 퀴어 영화들이 발표되어 아카데미상을 받는 등, 퀴어 영화의 위상은 해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흥행 성공은 사회적 변화와 함께 진화하며 문화적 다양성을 확장하는 동기가 되었다. 최근 동성애 영화는 LGBTQ+ 스펙트럼 전반을 아우르며, 성을 남녀로 구분하지 않는 ‘논바이너리’, 지정받은 성을 스스로 정체화하는 ‘트랜스젠더’, 무성애자를 뜻하는 ‘에이섹슈얼(Asexual)’ 등 이전보다 훨씬 다양한 이슈들을 다루고 있다. 특정 정체성이나 경험에 초점을 맞춘 세분된 이야기도 증가하고 있으며, 아시아 등 비서구권 영화에서도 활발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히스 레저와 제이크 질렌할의 강렬하고 몰입 적인 연기는 영화를 명작의 반열에 올려놓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레저는 과묵하고 감정을 억누르는 에니스의 고뇌하는 내면을 눈빛과 미세한 표정 변화만으로 완벽하게 표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레저는 2008년 1월 뉴욕의 자택에서 28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는데 다음 해 ‘다크 나이트’의 조커 역으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 사후에 남우조연상을 받은 최초의 배우가 된다.   제이크 질렌할 역시 에니스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좌절을 동시에 지니고 살아가는 불운한 남자 잭을 탁월하게 그려냈다. 미셸 윌리엄스와 앤 해서웨이 등 조연 배우들의 연기 또한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드넓은 와이오밍의 웅장한 자연 풍광, 그 속에 묻혀 있는 브로크백 마운틴의 고독함은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그 고독함이 없었던 들, 애초에 두 남자의 사랑은 싹트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김정 영화 평론가 ckkim22@gmailcom영화사 사랑 브로크백 마운틴 동성애 행위 동성애 코드

2025.06.2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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