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최신기사

[열린광장] ‘눈물 한 방울’은 고귀한 흔적인가

이어령 교수의 유작 ‘눈물 한 방울’은 암 투병 중 2년 4개월 동안 죽음의 문턱에서 써 내려 간 마지막 기록이다. 글과 그림으로 남긴 이 책은 단순한 회고록이나 철학 에세이가 아니다. 오히려 삶의 끝자락에서 인간 존재의 본질을 응시한 한 지성인의 깊은 성찰에 가깝다.   그는 평생 언어와 사상, 문명과 지성을 탐구하며 시대를 이끌어온 대표적 지식인이었다. 누구보다 인간 이성과 문명의 가능성을 믿었던 사람이다. 그러나 삶의 마지막 순간 그가 붙든 것은 거대한 철학도, 화려한 업적도 아니었다. 바로 ‘눈물 한 방울’이었다.   이 대목은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인간의 삶을 끝까지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현대 문명은 오랫동안 강함을 숭배해 왔다. 권력과 성공, 속도와 효율이 사회를 움직이는 핵심 가치가 되었다. 사람들은 더 높은 자리와 더 많은 소유를 위해 쉼 없이 달린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감정을 감추고, 연약함을 숨기며, 타인보다 우월해지려 애쓴다. 눈물은 종종 나약함의 상징처럼 취급된다. 울지 않는 사람이 강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시대다.   그러나 인간 역사를 깊이 들여다보면 문명을 지탱해 온 힘은 오히려 눈물에 가까웠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마음, 약자를 향한 연민, 상처 입은 존재를 품으려는 인애의 정신이 인간 사회를 유지해 왔다. 인간은 경쟁만으로 공동체를 만들 수 없다. 서로의 고통을 이해할 때 비로소 공동체는 문명이 된다.   특히 죽음 앞에서는 삶의 외형들이 놀라울 만큼 작아진다. 직함과 업적, 명성과 소유는 마지막 순간 힘을 잃는다. 결국 남는 것은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가 아니라 누구를 사랑했는가, 누구를 위해 아파했는가 하는 삶의 흔적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런 점에서 눈물은 단순한 감정 반응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안에 아직 인애가 살아 있다는 증거다. 타인의 슬픔 앞에서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할 때 인간성은 무너진다. 반대로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은 아직 마음이 살아 있다는 뜻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울고, 상실하기 때문에 울며, 죄책감과 연민을 느끼기에 눈물이 흐른다. 눈물은 인간이 단순한 생존 본능의 존재가 아니라 도덕적이고 관계적인 존재임을 보여준다.   이어령 교수가 죽음 앞에서 발견한 것도 바로 그것이었는지 모른다. 그는 평생 지성을 탐구했지만, 마지막 순간 그가 붙든 것은 논리의 승리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따뜻한 흔적이었다. 죽음은 인간이 평생 쌓아온 외형을 벗겨낸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결국 사랑의 기억만 남는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위기 역시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점점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고, 슬픔조차 소비의 대상으로 바꾸어 간다. 디지털 문명은 사람들을 끊임없이 연결하지만 정작 마음은 더 깊이 고립시키고 있다. 이런 시대일수록 눈물의 의미는 더욱 소중해진다. 눈물은 인간이 아직 완전히 비인간화되지 않았다는 마지막 신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물 한 방울’은 단순한 개인의 감상이 아니라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선언처럼 들린다. 인간은 완벽하기 때문에 고귀한 것이 아니다. 연약함 속에서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에 존귀한 것이다. 눈물은 그 사랑의 흔적이며, 인애의 마지막 언어다.   이어령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나의 유언은 군더더기 말이 아니라 내 눈에서 떨어진 눈물 한 방울이다.”   어쩌면 인간의 위대함은 얼마나 강한가에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얼마나 깊이 아파할 수 있는가, 얼마나 진실하게 사랑할 수 있는가에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결국 한 방울 눈물 속에 담겨있는지도 모른다. 박철웅 / 일사회 회장열린광장 눈물 방울 방울 눈물 이어령 교수 디지털 문명

2026.05.20. 19:49

썸네일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