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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다음 타깃은 아시아계

70대 한인 노부부가 26년간의 LA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불법 체류자 단속이 강화되면서 더 이상 미국에서 살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딸은 온라인 모금 사이트에 부모의 사연을 공개하며 “아버지가 생계의 주수입원이었던 긱 드라이버(배달·차량 호출 등 단기 계약 운전) 일을 잃은 뒤 생활이 막막해졌고, 수개월 실직 끝에 귀국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가혹한 이민정책은 갈수록 강도가 거세지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만 미국을 떠난 불법체류자가 100만 명을 넘어섰다는 추산이 나온다. 그 중 25만여 명은 강제추방, 나머지 75만 명은 불안과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짐을 싸서 떠난 사람들이다. 한인 노부부의 선택도 그 흐름 속에 있다.   주목할 점은, 단속이 더 이상 중범죄자 불법체류자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선거 유세에서 “불체자 1100만 명을 모두 추방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었다. 출범 초기 행정부는 “중범자 불체자를 추방한다”고 발표했으나, 최근에는 “불법체류 자체가 범죄”라며 전면적이고 무차별적인 추방을 대놓고 강행하고 있다.   퓨리서치센터가 2024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미국 내 불체자는 멕시코 출신이 약 400만 명, 멕시코 외 중남미 출신이 216만 명에 달한다. 최근 단속이 라틴계 커뮤니티에 집중된 이유다. 하지만 아시아 출신 불체자도 약 100만 명에 이르고, 그 중 한국 출신은 17만3000 명으로 추정된다. 라틴계에 대한 대규모 단속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그 다음 차례가 아시아계가 될 것이라는 불안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미 단속의 방식은 공포전략 그 자체다. 연방법원이 “인종·언어·직종·장소에 근거한 단속(인종 프로파일링)은 위헌”이라며 중지 명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이민단속국(ICE)은 홈디포 주차장, 세차장 등을 기습적으로 단속하고 있다. 라틴계 커뮤니티 길거리를 순찰하다가 불체자로 의심되면 바로 체포하는 ‘로빙 패트롤(Roving patrol)’도 등장했다. 심지어 이민법원 복도까지 들이닥쳐 불심검문하고 서류미비자들을 마구 체포한다. 체류 심사를 받으러 이민법원에 출두한 서류미비자들을 기습 체포하는 ‘코트 앰부쉬(Court ambush)’는 이제 낯설지 않은 장면이 되었다.   지난달 국토안보부 산하 세관국경보호국(CBP)은 18세 이상 외국인은 영주권 카드나 외국인 합법체류 신분 증명서를 반드시 소지해야 한다고 재차 공지했다. 이민 및 국적법 ‘INA 264(d)’에 따르면 영주권 미소지는 경범죄로 간주된다. 위반 시 최대 100달러 벌금, 30일 이하의 구금, 또는 두 가지 처벌이 동시에 부과될 수 있다. 사실상 불심검문을 예고한 것이다. 영주권 소지 의무는 오랫동안 사문화된 규정이었으나, 이를 다시 꺼내든 것은 길거리 단속을 합법화하려는 포석일 가능성이 크다. “경범죄”라는 딱지를 붙여 위법 근거를 확보하고, 추방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또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공포전략이 특정 인종·언어·직종·지역을 대상으로 집중될 수 있다는 점이다. 라틴계 일용직 노동자가 몰리는 홈디포 주차장 단속이 단적인 예다. 비슷한 방식으로, 아시아계가 밀집해 사는 지역이나 일터가 차기 단속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우리는 잊고 있었다. “중범죄자만 추방한다”는 정부의 설명은 처음부터 사실이 아니었다. 트럼프의 공약은 “모두 추방”이었다. 다음은 공포의 칼끝이 아시아계로 향할 차례일 수 있다. 아시아 출신 불체자를 단속한다는 빌미로 아시아계 커뮤니티를 ‘로빙 패트롤’하고 불심검문할 수 있다.   한인사회는 대비해야 한다. 이민자 권익을 지키는 단체들과 손잡고, 인종 프로파일링과 무차별 단속에 맞서 반대 목소리를 내야 한다. 공포가 공동체를 침묵하게 만들 때, 역설적으로 무차별 단속은 더욱 쉬워진다. 아시아계 커뮤니티에서 불심검문이 일상이 되는 날이 올까 두렵다. 이무영 / 뉴스룸 에디터중앙칼럼 아시아계 타깃 라틴계 커뮤니티 대규모 단속 멕시코 출신

2025.08.18.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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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수첩] 매즈칼 한잔 합시다

과테말라 국경에 인접한 멕시코 남부 오하카는 증류주 매즈칼(Mezcal)로 유명하다. 특정 원료를 고집하는 데킬라(Tequila)와 달리 매즈칼은 30개의 다양한 용설란(Agave)에서 발효되며 광범위하게 소비된다. 증류도 한번으로 끝낸다. 데킬라가 특화된 고급주라면, 매즈칼은 민초들을 위한 ‘국민주’다. 그 값도 3~4배 차이가 난다.   최근 LA 시의원들의 녹취는 사적인 발언이지만 오하칸을 비하하는 정서를 명백하게 보여줬다. 한인타운 거리에 피부가 까맣고 키작은 ‘오하칸 코리안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매우 못 생겼다’는 부연까지 섞어서 말이다. 해서는 안될 말이 공개된 것이다.     라틴계 정객들은 선거마다 시민들에게 ‘화합’과 ‘자부심’을 강조했다. 서로를 이해하자며 피부색과 언어가 달라도 함께 일할 수 있는 것이 우리의 강점이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이들의 속내는 그렇지 않았다.     권력과 영향력으로 지역구 경계선을 좌지우지하고, 기업과 폭력조직으로부터 로비자금을 받았다. 산적한 문제들은 이들의 당선 후에도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이런 ‘권력 카르텔’을 부수는 작업은 라틴계 커뮤니티에서 시작돼야 한다. 힘과 영향력이 모이면 부패가 시작되는 것처럼 잘 뽑기도 해야 하지만 뽑은 뒤에 감시 작업도 중요하다. 한인들도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우리가 뽑은 시의원들이 으쓱해진 어깨에 걸맞게 값비싼 데킬라에만 취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그 옛날 복국집 누구처럼 “우리가 남이가”를 연발하며 ‘키작고 피부색 짙은 오하칸과 코리안’을 우습게 생각한 것은 아닐까.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시의원들은 물론 한인사회 안팎의 리더들이 모여 매즈칼을 한번 마셔보면 어떨까.     다양하면서도 숙성된 풍부한 문화를 어떻게 존중하고 기억해야 하는지, 그것이 우리 후손들에게 어떻게 남아야 하는지 절실히 고민하면서 말이다. 최인성 부국장취재 수첩 오하칸 코리안들 라틴계 커뮤니티 한인타운 거리

2022.10.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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