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인문학] “지금은 팔 때가 아니라 나눌 때”
LA 한인타운에는 베벌리 불러바드와 6가를 잇는 라파예트 파크 플레이스(Lafayette Park Place)라는 거리와 라파예트 공원이 있다. 라파예트 공원은 LA 초창기 부동산 개발로 큰 성공을 거둔 클라라 샤토 여사가 기부한 약 35만 평의 부지에 조성된 공원이다. 이 땅은 오늘날은 물론, 기부가 이뤄졌던 1895년 당시에도 손꼽히는 요지였다. 1896년 문을 열 당시 공원의 이름은 ‘선셋 공원(Sunset Park)’이었다. 이후 1919년, 미국과 프랑스 양국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라파예트 장군을 기리는 의미에서 지금의 ‘라파예트 공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라파예트 장군은 프랑스 출신의 정치가이자 군인으로, 미국 독립전쟁에 자원해 참전하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인물이다. 미국 곳곳에서 그의 이름이 지명으로 남아 있는 이유다. 실제로 미국 어디를 가도 라파예트라는 이름을 어렵지 않게 만난다. 도시와 산, 도로, 공원에 이르기까지 그의 이름이 널리 사용된다. 루이지애나주의 라파예트 시, 퍼듀대가 위치한 인디애나주의 웨스트 라파예트 시, 백악관 앞의 라파예트 광장은 대표적인 사례다. 왜 미국은 프랑스의 귀족이자 정치가였던 라파예트를 이토록 깊이 기릴까.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 이유는 분명해진다. 그의 본명은 ‘마르키 드 라파예트(Marquis de Lafayette)’. 프랑스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나이에 부모를 모두 잃고 작위와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았다. 미국 독립전쟁 소식을 접한 그는 19세의 나이에 전쟁 지원을 결심했다. 자유와 독립이라는 가치에 강하게 매료됐고, 아버지가 영국과의 전쟁에서 전사한 배경은 그의 반영 감정을 더욱 굳혔다. 그러나 프랑스가 공식적으로 참전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는 개인 자격으로 미국에 건너가야 했다. 가족과 정부의 반대도 거셌다. 그럼에도 라파예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개인 재산을 털어 ‘라 빅투아르(La Victoire)’라는 배를 구입했고, 뜻을 같이하는 몇몇 프랑스 육군 장교들과 함께 몰래 프랑스를 떠났다. 스페인을 거쳐 대서양을 건넌 그는 미국에 도착해 영어를 익히며 대륙의회에 참전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전투 경험이 많지 않은 20세 안팎의 프랑스 귀족을 미군 지휘부가 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라파예트는 조건을 내세우지 않았다. 봉급도, 계급도 요구하지 않고 병사로라도 싸우겠다고 했다. 그의 열정과 겸손에 감동한 미국 지도부는 그를 조지 워싱턴에게 소개했고, 워싱턴은 라파예트를 사령부 특별 참모로 임명하며 장군 계급을 부여했다. 그는 20대 초반에 소장으로 임명되는 파격적인 대우를 받았다. 프랑스 내 여론을 우호적으로 이끌려는 미국의 정치적 계산도 작용했지만, 선택은 결과적으로 옳았다. 라파예트는 워싱턴의 신뢰에 충실히 응답했다. 그는 직접 전장에 나서 싸웠고, 부상을 입으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병사들과 함께 추위와 굶주림을 견뎠고, 1778년 배런힐 전투에서는 지휘관으로서의 역량도 입증했다. 그는 열정과 인격, 실력을 고루 갖춘 독립전쟁의 핵심 인물로 자리 잡았다. 전쟁이 끝난 뒤 그는 프랑스로 돌아가 ‘신대륙의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한때 프랑스군 사령관을 맡기도 했지만 나폴레옹 정권에는 참여하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는 상속받은 토지에서 농장주로 살아갔다. 어느 해 극심한 흉년이 들었다. 마름병이 퍼지며 많은 이들이 굶주림으로 목숨을 잃었지만, 라파예트의 농장은 피해를 입지 않아 풍작을 거뒀다. 한 친구가 밀값 폭등을 언급하며 지금이야말로 팔 때라고 권하자, 라파예트는 단호하게 답했다. “지금은 팔 때가 아니라 나눌 때일세.” 그는 창고에 쌓아둔 밀을 이웃과 나누었다. 그의 위대함은 일상의 선택에서도 드러났다. 라파예트는 두 살에 아버지를, 열두 살에 어머니를 잃었고, 후견인이던 외할아버지마저 일찍 떠났다. 어린 나이에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았지만, 그는 특권에 안주하지 않았다. 자유와 독립이라는 가치를 삶으로 실천했고, 흉년에는 나눔으로 응답했다. 높은 이상과 실천적 삶을 함께 살아낸 인물, 그것이 미국이 프랑스의 귀족 라파예트를 오늘까지도 기억하는 이유다. 강태광 / 월드쉐어USA 대표·목사길 위의 인문학 라파예트 공원 라파예트 장군 웨스트 라파예트
2025.12.17. 18: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