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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이제, 나를 울게 하소서

나를 이기지 못하면 아무도 못 이긴다. 참고 견디면 고통과 슬픔도 새벽 이슬처럼 꽃잎사이로 숨어든다. 가슴을 타고 방울져 내리는 눈물은 닦지 않아도 된다. 숨길 필요 없다. 뒷마당에 핀 이름 모를 꽃들처럼 기억할 사람들 없다 해도 슬퍼할 이유가 없다.   산다는 것은 죽음을 견디는 용기다. 견디며 안도하는 순간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진다.아이들은 놀이공원에서 롤러코스트 타고 하늘 높이 올라가 굴러 떨어지듯 내려올 때도환호성을 질렀다. ‘사고가 나면 어쩌나’ 마른 하늘에 주먹을 쥐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제는 리사 생일이다. 다운증후군으로 태어난 리사는 2년 전 우리 곁을 떠났다.리사는 우리집의 중심 축이었다. 지구가 하루에 한 번 서쪽에서 동쪽으로 자전하며 해와별이 뜨듯 리사는 가족들의 가슴속에 해와 별처럼 반짝였다. 일년에 한 번 지구가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날이면 예쁜 생일 케익을 구워 축포를 터뜨렸다.   리사 생일날 딸과 손주들이 리사 사진 앞에 리사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에 촛불을 꽂고기도하는 사진을 보냈다. 누구에게 기억된다는 것은 슬프지만 아름답다.   리사는 췌장암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수술할 여지가 없다고 했다. 대륙의 동쪽과서쪽 끝에서 달려온 아이들은 한달 동안 리사와 내 곁을 지켰다. 늘 행복한 미소로 웃던리사를 위해 절망 끝에서도 우리는 리사를 위해 눈물을 보이지 않기로 했다.   리사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집, 리사는 리사 방에서 동생들과 레고와 퍼즐을 했다.리사는 크리스티나와 내 손을 잡고 천사처럼 죽음을 맞았다.   남편이 죽으면 뒷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은 맞다. 가슴에 담기에는리사가 남긴 생의 부피가 너무 커서 뒷마당 양지 바른 곳에 유해를 묻었다. 오하이오주법에 의하면 자기가 소유한 땅에 유해를 묻을 수 있다.   리사 방에서 제일 잘 보이는 곳, 집안 어디서도 볼 수 있는 곳에 꽃밭을 만들어 리사를묻고 예쁜 꽃을 심었다. 봄꽃과 나무들이 줄지어 손을 흔든다. 리사가 발을 헛디디지않도록 꽃밭 가장자리에 태양광 램프를 설치했더니 캄캄한 밤에도 꽃밭이 보인다.   ‘울게 하소서(Lascia ch’io pianga)’는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에 나오는 아리아로 극의제2막에서 여주인공 알미레나가 납치당한 후 자유를 갈망하며 부르는 노래다.   “울게 하소서! /내 잔혹한 운명에/그리고 한탄으로/자유를 그리네/슬픔아 부수어라/내 고통의/이 속박을/오직 비탄을 통해서”   영화 ‘파리넬리’에서 거세한 남성가수 ‘카스트라토(castrato)’가 부르는 ‘울게 하소서’는노래라고 하기보다는 절규에 가깝다. 카스트라토는 변성기가 오기 전 소년에게 거세(去勢)를 해서 미성의 고음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   ‘카를로 마리아 미켈란젤로 니콜라 브로스키’라는 실제인물의 삶을 그린 영화‘파리넬리’에서 주인공은 가수로서 최고의 명성을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뜻과상관없이 어린 시절에 거세당한 아픔을 간직하며 평생 고뇌하는 모습을 보인다.   운명은 비참하지 않다. 비참하게 살아갈 뿐이다. 견디며 극복하는 자와 쓰러져 절망하는자가 있을 뿐이다. 세월은 잠든 순간에도 속수무책으로 달려가 운명의 다리를 건넌다.   남은 남이다. 타인은 내가 될 수 없다. 역경을 이기는 힘은 나에게서 나온다.   눈물을 참지 않겠다. 이제, 나를 위해 울도록 내버려 두겠다. 눈물이 흘러내려도 닦지않고, 슬프면 슬픔의 강물 따라 절망의 강을 건너고, 생의 곳곳에 별빛처럼 찬란하게빛나는 아침 이슬 머리에 이고, 짧고도 긴 생의 여정을 담담하게 걸어가리라.(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리사 생일날 꽃밭 가장자리 리사 사진

2026.05.19.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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