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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 신의 놀이터

나는 무슨 일이건 마지막까지 미루는 좋지 않은 습관을 갖고 있다. 더는 미룰 수 없는 순간이 되어야 일의 능률이 최대치에 다다른다. 반전을 향해 가는 셜록 홈스처럼, 최후의 스퍼트를 남겨둔 운동선수처럼 매사에 뜸을 들이다가 마지막 순간에 해치운다. 시간적 여유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도무지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   몇 해 전 4월, 세 번이나 마감일에 쫓겼다. 첫 번은 12일의 재산세 납부를 마지막 날인 12일까지 미루었다. 두 번째는 15일의 소득세(Income Tax) 신고 마감이었고, 마지막으로는 16일의 2020 센서스 등록이었다. 입안이 타들어 가도록 마감 시간에 맞추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몸살까지 호되게 앓았다.   자신의 삶이 언제 끝나는지 모른다는 것은 신의 배려이지 싶다. 무슨 일이건 마지막까지 미루는 사람에게 이 세상을 떠나는 날이 얼마나 분주할 것인가 생각하면 생의 마감일을 모르는 것은 신의 은총임이 분명하다. 독일 문호 괴테는 임종의 순간에, “More light, more light!”라고 말했다고 한다. 준비 없이 마지막을 맞을 나는 틀림없이 “More time, more time!” 외칠 것 같다. 그리되면 내게 줄 시간을 더는 갖고 있지 않은 신께서는 얼마나 곤란하실까?   나는 ‘급한 일’보다는 ‘중요한 일’을 항상 먼저 처리하는 편이다. 그런데 학창 시절 시험 하루 전의 ‘전날 치기’ 저녁이 되면 내 알량한 삶의 철학은 중대한 도전에 직면하곤 했다. ‘프리어리떼’와 ‘앵뽀르땅스’가 내 속에서 충돌한다. 전자는 따뜻한 이불 속으로 발을 넣어버리는 것이고 후자는 좋게 받아야 할 시험 성적 결과다. 한 번도 확실한 선택을 못 한 채 그럭저럭 대한민국 교육부의 혜택을 모두 받았으니 나는 행운아 중의 행운아인 셈이다.   남편은 우선순위를 정해놓고 철저히 지키는 사람이었다. 아침에 출근할 때면 손목시계를 오른팔에 차고 있는데 그 이유가 그날 처리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한 표식이라고 했다. 매사가 흐릿한 내 습관을 당연히 못 견뎌 했다.   6·25 전란 때 우리 가족은 미처 남으로 피난을 떠나지 못해서 북한군 치하의 서울에서 석 달을 지냈다. 처음 얼마 동안은 집에 있던 식량으로 그럭저럭 버텼지만 점차 양식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9·28 서울 수복이 가까웠던 그 날도 아버지는 한강 남쪽 농가로 쌀을 구하려고 물물교환할 물건들을 준비해서 집을 나섰다. 이런저런 준비와 어머니의 늑장으로 다른 날보다 반 시간가량 늦어서 광나루에 도착하셨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 30분 전에 미군의 폭격이 있었다. 광나루 다리는 흔적도 없이 무너져 내렸고, 주변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리더십에 관한 세계적인 권위자 스티븐 코비 교수는 성공하려면 ‘당장 급한 일보다는 멀리 보아 중요한 일에 몰두하라’고 권한다. 여기서 성공이란 ‘소소하고 일시적인 성공’이 아니라 ‘원대하고 근본적인 성공’을 말한다. 내가 지키려는 ‘중요한 일 우선주의’는 이런 차원 높은 성공 철학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나는 일찍부터 짧은 성공과 승리의 덧없음을 맛봤다. 6·25 전란 중 벽촌의 조그만 피난 초등학교에 다니던 나는 학급 자치회장에 당선되면서 들로, 산으로, 절집으로 함께 쏘다니던 피난지의 둘도 없는 친구를 잃었다. 그 친구는 자치회장 투표에서 나보다 한 표를 적게 얻었다. 그 일은 지금도 내 몸속 어딘가에 가시처럼 박혀 아픔을 준다.   ‘불가근불가원’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불가해한 인생과 앞으로 ‘불가속불가서(不可速不可徐)’로 경주할 생각이다. 인생이란 예측불허이며 어떤 노력으로도 손에 넣을 수 없는 거대한 신의 놀이터이다. 요즘 그것을 더욱 절절히 느낀다.   회사 일이건 집안일이건 마지막까지 뭉그적거리다가 일이 커지고 나면 남편의 기색이 심상치 않게 변했다. “원소는 장강을 너무 일찍 건넜기 때문에 조조에게 패한 것이다”라고 내가 눙치면 남편은 “시저가 갈리아에서 귀환할 때 루비콘강을 건너지 않았으면 그때 폼페이우스에게 당했다”고 반박했다.   그는 인생의 강도 그렇게 건넜다. 수술 후 나온 남편의 병리 보고서(Pathology Report)는 ‘완치는 어렵지만 컨트롤은 가능하다(not curable, but controllable)였다. 얼마 후 그는 루비콘강을 건넜다. 신의 놀이터는 인생의 강에도 있었다. 박유니스 / 수필가문예마당 놀이터 수필 성공 철학 회사 일이건 마감 시간

2026.04.30. 17:49

[이 아침에] 늦은 오후의 모놀로그

낮잠을 자고 일어났는데도 창밖으로 해가 길다. 어찌 된 일인지 아무런 스케줄이 없다. 내친김에 T.J.맥스도 갔고 한인 마켓에 가서 장도 한 보따리 보고 왔는데도 햇빛은 아직도 강렬하다. 습관적으로 리모컨을 잡고 TV를 켜니 새로운 프로그램은 보이지 않고 전에 하던 드라마와 영화를 재방송하고 있다. 그렇다고 심심하다고 바쁜 친구에게 전화하기 망설여지는 오늘.     매일 오는 카톡도 조용해서, 꽃이나 나무 그림, 커피잔을 배경으로 한 “오늘도 행복하세요”, 아니면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됩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라는 주로 귓등으로 흘려듣고 보는 문자 메시지조차 그립다.     기온이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를 반복하고 간간이 비도 몇 번 내리더니 집 앞에 있는 돌배나무에 꽃이 피었다. 봄에 하얀 눈송이 같은 꽃을 피우는 나무인데. 흡사 지난봄에 미처 개화하지 못한 꽃을 지금 피워대는 것 같았다. 나무는 마치 시간의 흐름을 간직했다가 원할 때 꺼내서 쓰는 것처럼 보였다.     이럴 때는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하면 속이 상하고 해결 방법이 없는 사건을 기억에서 꺼내 곱씹으려 했으나, 컨트롤할 수 없는 문제에 보내는 시간은 생산적이지 않아 아깝다. 차라리 이런 자투리 시간을 보자기에 고이 싸서 차곡차곡 모아 놓으면 좋겠다.     짐 크로스가 부른 ‘Time in a bottle(병 속의 시간)’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만약 병 속에 시간을 모을 수 있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영원함이 지나갈 때까지 하루하루를 저축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보물처럼 아껴두었다가 당신과 함께 보내는 데 쓰고 싶습니다’. 시간을 모아 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서 쓰고 싶다는 소망. 지금 나는 이 가사를 완벽하게 이해했다.     세상만사가 내 손아귀에 있는 느낌이 들 때, 구름을 걷는 느낌이 들 때, 장미꽃 위에 맺힌 이슬을 볼 때, 아니면 시험을 볼 때, 마감 시간에 쫓길 때,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때, 소중히 보관한 시간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 풀어서 쓸 수 있다면.   아니면, 우울할 때, 세상에서 시달릴 때,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잊히지 않는 상처가 올라올 때, 그런 시간을 꽁꽁 묶어 영원히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던져 버릴 수만 있다면 좋겠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에는 이런 글이 있다. ‘당신이 시간의 씨앗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어떤 곡식이 자랄지, 어떤 곡식이 나지 않을지 말할 수 있습니다’. 시간의 씨앗이라니. 역시 대가다. 그가 성큼 옆으로 다가온 느낌이다.     어느덧 해는 잦아들고 있다. 잠자리가 나비보다 눈에 더 뜨이는 오늘. 나는 돌배나무 꽃잎 위에 앉아 있었다. 이리나 / 수필가이 아침에 모놀로그 자투리 시간 마감 시간 돌배나무 꽃잎

2023.10.0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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