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마지막 주일 예배, 예배당에서 1200~1300명의 교인들이 담임목사의 얼굴을 응시하고 있었다. 어떤 말로 한 해의 마지막을 마무리하는 설교를 시작할까? 1, 2, 3부 예배를 다 합하면 3000~4000명이 직접 이 설교를 들을 것이다. 교인들이 이 설교를 기다리고 집중하는 이유는 그의 말에 진정성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말을 하는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사실을 말하면서 듣는 사람이 그렇게 느껴지게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는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일을 대나무의 마디에 비유했다. 대나무가 곧고, 높게 자랄 수 있는 것은 마디에서 멈추고, 단단해진 뒤 다시 자라기 때문이다. 세찬 바람에도 흔들리며 쏴 한 소리만 낼 뿐, 쓰러지지 않는 것은 속을 비워 유연함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삶도 흘러 가지만 무작정 흘러가게만 해서는 안 된다. 새해는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다시 묻는 이정표와 같은 시간이다. 잠깐 멈춰서서 비울 것은 비우고, 단단한 마디를 만들어서 삶이 바르고, 곧게 나아가게 해야 한다. 어제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로 삼는 것이다. 마디를 만드는 일은 새해와 같은 어떤 시간에서도 할 수 있지만 삶에서 일어나는 어떤 사건에서도 할 수 있다. 자신의 삶에서 일어난 일에 단단한 마디를 만들어 삶의 방향을 바꾼 사람 중에는 스티브 잡스가 있다. 그는 그의 일생에서 세 번의 중요한 고비가 있었다고 2005년 스탠포드 대학의 졸업 연설에서 밝혔다. 그는 어려울 때마다 튼튼한 마디를 만들어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 계기로 활용했다. 첫째는 입학한 지 6개월 만에 대학(Reed College)을 중퇴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는 18개월을 더 대학에 머물며 흥미를 느끼는 과목을 청강했다. 친구의 방 바닥에서 자며 먹을 것을 마련하기 위해 빈병을 모아 팔았다. 당시 Reed 대학은 다양한 과목들이 전국 최상위에 있었다.그는 그 수업을 들었다. 이때 배운 지식은 최초의 컴퓨터 매킨토시에 그대로 활용되었다. 그가 대학을 중퇴하고 그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지금 개인용 컴퓨터가 가지고 있는 아름답고 다양한 서체는 없었을 것이라고 그는 회상했다. 두 번째는 30세에 자신이 세운 애플에서 해고된 사건이었다. 처음에는 좌절감과 극심한 스트레스로 실리콘 밸리를 떠날까도 생각했으나, 다시 시작하기로 생각을 바꾸었다.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사인 픽사와 넥스트를 만들었다. 그는 이때가 일생에서 가장 창의적인 시기였다고 밝혔다. 성공이란 중압감이 모든 것이 덜 확실한 초심자의 가벼운 마음으로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다양한 경험을 가진 채로. 우여곡절 끝에 애플이 두 회사를 매입하고 그는 다시 애플의 책임자가 되었다. 이때 넥스트에서 개발한 것들이 애플의 르네상스를 이루는 핵심이 되었다. 세 번째는 그가 죽음을 선고받은 일이었다. 그는 의사로부터 치료가 불가능한 췌장암이어서 6개월밖에 살 수 없으니 주변을 정리하라는 선고를 받았다. 이때 죽음 앞에서는 모든 자부심 외부의 기대들, 실패에 대한 두려움 등 모두 사라지고 진실로 중요한 것만 남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삶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 것이다. 나중에 수술을 받았지만 인생에 대한 중요한 교훈, 즉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누구에게나 삶에 전환점이 될 만한 일은 일어난다. 어떤 사건이든, 새해와 같은 시간이든, 어떤 희망의 끈으로 마디를 만들어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가는가 하는 것은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2026년은 단단한 마디를 만들어 더 멀리 갈 수 있는 해가 되길 희망한다. 최성규 / 베스트 영어 훈련원장열린광장 새해 마디 스탠포드 대학 컴퓨터 애니메이션 컴퓨터 매킨토시
2026.01.13. 20:06
내게는 누군가를 판단할 때 이 사람이 괜찮은 사람인지 별로인 사람인지를 구분하는 기본적인 판단 기준이 하나 있다. 자신이 잘못했을 때 상대방에게 곧바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수 있는지다. 나는 아무리 평소에 친절하고 살갑게 구는 사람이라도 자신의 명확한 잘못이나 실수 앞에서 뒤로 숨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을 결코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그렇게 자신의 잘못으로 벌어진 문제 앞에서 당당하게 나서지 못하고 뒤로 숨는 사람들은 직장인 혹은 사회인 더 나아가 어른으로서의 기본 소양인 책임감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자신의 실수 앞에 인정은커녕 다짜고짜 화를 내거나 울며불며 징징대거나 묵묵부답으로 가만히 있는 사람을 발견하게 되면 별다른 말 없이 조금씩 그 사람과의 관계에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다는 것은 참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피해를 받았을 상대방에 대한 배려 자기 책임으로 잘못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 잘잘못을 빨리 판단하고 그에 대한 행동을 취하는 순발력. 상대방의 화를 가라앉혀 상대방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사회성까지 그 사람의 인격적인 요소들을 진심 어린 사과를 하는 모습을 통해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정말 강한 사람은 잘못했으면 자기 잘못을 곧바로 인정하고 그것을 수습한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숙이고 들어가면서도 결국에는 남을 위해 설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한국 마켓에 가면 쇼핑 카트를 이용한다. 가끔 간장이나 된장, 김치 같은 것은 상당히 무겁다. 카트를 끌고 가다 보면 무거워 옆으로 비틀어지는 일도 생긴다. 카트에 물건을 가득 싣고 좁은 계산대에 물건을 올려놓으면 점원이 계산한다. 계산된 물건을 백에 담아 카트에 넣어주는 남미계 종업원이 있다. 무거운 카트를 끌고 나오면서 그 종업원 발을 다치는 사고 광경을 목격했다. 얼마나 아프겠는가. 무거운 물건을 실은 카트가 발을 쳤으니 아파서 아 소리를 내면서 쓰러지는 듯 움츠렸다. 그런데 그 손님은 아무 일 아닌 듯 그냥 카트를 끌고 가버렸다. 그 손님 뒤에 서 있던 내가 달려가 물었다. 그 종업원은 화를 내면서 여러 번 경험했지만 “Sorry”라고 말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힐난했다. 내가 그 남미 종업원에게 매우 미안하고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미국 사람들은 옷깃만 스쳐도 “Excuse me” 한다. “Sorry, Excuse me”를 입에 달고 산다. 우리는 왜 그 흔하고 쉬운 Sorry나 Excuse me를 말하지 않는가. 그 말을 하면 자존심이 상하는가 아니면 부끄러운가. 미국 사람들에게도 무뢰한 짓을 하고 그냥 모르는 척하며 지나가는지 몹시 궁금하다. 어떤 상황이 펼쳐졌을 때 그 상황에 대한 사람들의 판단은 크게 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누가 얼마만큼 잘못해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 누구의 잘못이 더 큰지 누가 사과를 해야 하고 누가 사과를 받아줘야 하는지 대강의 정황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그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 다만 섣부르게 참견했다가 불똥이 자신에게 튈까 봐 다들 쉬쉬하며 자기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 않고 있을 뿐이다. 그런 긴장된 상황 속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상대방에게 고개를 숙이는 사람을 주변 사람들은 결코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이미 자신의 잘못을 명확히 인지하고 기꺼이 사과까지 하는 사람에게 누가 구태여 무엇을 더 보태어 말할 수 있을까. 끝내 이기고 남의 위에 설 수 있는 사람은 당장의 알량한 자존심을 버리고 기꺼이 상대에게 먼저 고개를 숙일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양주희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마디 남미계 종업원 쇼핑 카트 남미 종업원
2023.08.21. 2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