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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타운 맛따라기] 쌍화차에서 마차까지, 성공의 DNA

차(茶) 한 잔에 담소를 나누고 정을 쌓아온 것은 우리 민족의 오랜 전통이다. 그런면에서 1980년대 초반 문을 연 8가 옥스포드 센터의 ‘여왕봉 다방’은 한국의 다방 문화를 그리워하던 한인들에게 어쩌면 필연과도 같은 존재였다. 계란 노른자를 띄운 쌍화차와 달달한 ‘다방 커피’ 한 잔은 단순한 음료를 넘어 위로와 향수 그 자체였다. 전복죽으로 유명했던 ‘산’ 식당과 숯불집을 성공시킨 박부생 사장의 손에서 탄생한 이 공간은 한인 커뮤니티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후 윌셔길의 한방 찻집 ‘화선지’는 다방과는 결이 다른 멋을 선사했다. 한국 전통 인테리어 속에서 진하게 달인 쌍화차에 꿀을 타고 잣과 대추를 띄워 마시는 여유, 여름날 곶감호두말이와 곁들이는 시원한 수정과는 이민 생활의 작은 쉼표가 되어주었다. 올림픽길의 ‘다루’, 가주마켓 3층의 ‘카페 예’ 등도 떡볶이와 팥빙수, 붕어빵 같은 추억의 메뉴를 한방차와 함께 선보이며 한인들의 발길을 붙들었지만, 이제는 모두 기억 속에만 남게 됐다.   전통 찻집의 시대가 저물고,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대만에서 건너온 ‘보바티(Boba Tea)’였다. 1990년대 초 ‘난다랑’ 쇼핑센터에 문을 연 ‘롤리컵’을 필두로, 물담배(후카)를 곁들인 ‘보바베어’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한인타운 음료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이는 한인 2세대를 중심으로 새로운 소비층이 형성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인들의 도전 정신은 빛을 발했다. ‘I Love Boba’는 한인타운 곳곳에 지점을 내며 프랜차이즈의 가능성을 시험했고, 7가와 버몬트의 ‘보바로카(Boba Loca)’는 보바티 사업의 성공을 발판으로 글로벌 프로즌 요거트 브랜드 ‘요거트랜드(Yogurtland)’를 탄생시키는 신화를 썼다. 필립 장 대표의 작품이었다. 전 세계 350개 지점을 거느린 요거트랜드 성공의 단초가 바로 보바티였던 것이다.     놀랍게도 ‘보바로카’가 떠난 자리에 들어선 ‘잇츠 보바타임(It’s Boba Time)’ 역시 100여 개에 달하는 가맹점을 거느린 기업으로 성장하며, 이 자리가 ‘성공의 명당’임을 입증했다.   최근 한인타운에는 프룻티와 흑당 버블티를 앞세운 중국계 보바숍들의 2차 공습이 거세다. ‘이팡(Yi Fang)’, ‘선라이트 티(Sunright Tea)’, ‘타이거 슈가(Tiger Sugar)’등이 연이어 문을 열었고, 특히 ‘3 Catea’는 타운 내 1등 보바숍으로 자리매김하며 시장의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마차(Matcha)’의 시대가 도래했다. 8가에 문을 연 ‘다모’와 ‘스테거’, 버몬트의 ‘온이스케이프 카페’ 등 타운의 최신 핫플레이스들은 약속이나 한 듯 마차를 가장 인기 있는 메뉴로 내세우고 있다.     특히 올림픽길 라성순부두 코너에 자리한 ‘Rok’에는 매일 수십 명이 줄을 설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으며, 곧 샌게이브리얼밸리와 풀러턴으로도 확장할 계획이다.   다방의 쌍화차에서 보바티를 거쳐 오늘의 마차에 이르기까지, 한인타운의 인기 음료는 시대의 흐름과 세대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모습을 바꿔왔다. 하지만 그 형태가 어떻게 변하든,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으로서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고국의 맛을 그리워하던 1세대부터, 새로운 트렌드를 창조하고 소비하는 2, 3세대에 이르기까지 한인타운의 차 음료 열풍은 유행을 넘어, 이민 사회의 변화하는 정체성과 끈질긴 생명력, 그리고 무엇이든 성공 신화로 만들어내는 한인 특유의 ‘DNA’가 담겨있는 문화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도 한인타운은 여전히 ‘차’와 함께 진화하고 있다. 라이언 오 / CBC 윌셔프로퍼티 대표K타운 맛따라기 쌍화차 마차 한인타운 음료 요거트랜드 성공 한인타운 곳곳

2025.10.0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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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일곱마리 말이 끄는 마차

세상에는 버릴 수 없는 것이 있다. 무겁고 힘 겨워도 어깨에 지워진 짐을 내려 놓지 못한다. 멍에를 맨 소처럼 지겹고 힘겨워도 묵묵히 앞만 보고 걷는다. 해 지기 전, 더 늦기 전에 넓디 넓은 밭고랑을 소처럼 묵묵히 갈아야 한다.    유년의 기억 속 덩치가 우람한 소는 슬픈 눈망울을 가졌다. 삼만이 아재가 날샌 솜씨로 멍에를 씌울 때도 큰 눈을 한두 번 꺼벅거릴 뿐 요동하지 않는다.     ‘멍에’는 수레나 쟁기를 끌기 위해 말이나 소의 목덜미에 얹는 굽은 나무 막대기다. 소의 몸 형태에 따라 크기를 다르게 만드는데 나무 양옆에 구멍을 뚫고 소의 멍에와 쟁기를 이어주는 보줄을 맨 다음, 가슴걸이판을 소의 목쪽 아래로 잡아당기면 멍에가 안정되어 소를 잘 끌 수 있다.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구속이나 억압’도 비유적으로 ‘멍에’라고 한다.   오래 전 화랑으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한국사람이 걸면 직원들이 무조건 바꿔준다. 캘리포니아에 사는 칼럼 독자라며 전업 화가가 되고자 조언을 얻고 인생상담을 하고 싶어 오하이오주까지 오겠다고 한다. 내 앞길도 구만린데 상담이라니, 목소리가 떨리고 절실해서 거절하기 힘들었다.     화랑과 아트센터 운영하며 아이 셋 간수하고 남편 섬기고(?) 시어머니와 어머니 두분 모시고 번갯불에 콩 튀듯 사는 형편이라 낯선 손님 맞을 상황이 아니었다. 화랑 경영하며 제일 민망할 때가 신예 화가(Budding Artist)들이 보내는 작품과 프로필을 외면하는 일이다. 그래도 나 좋다고, 존경(?)한다며 먼 길 오겠다는 여자분을 호텔에 혼자 재울 수도 없는 처지라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우리집에 숙식하며 화랑에 함께 출퇴근했다.     그 분은 ‘화가의 길이냐, 가정을 지키느냐’의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는 듯 했다.  세세하게 안 물어봤지만, 결혼 생활을 지키려면 ‘화가의 꿈’을 접어야 한다고 했다. 가정과 남편, 자식을 포기하고도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라고 말했다. 나도 모른다. 인생의 막다른 길목에서 후회하지 않는 선택이 있기나 한 건지. 마침 번화한 도시 한가운데 오래된 마차 한 대가 서있는 작품이 전시돼 있었다.     “이 그림은 마차를 끌고 갈 말이 필요하군요. 몇 마리 말이 필요한지는 마부가 잘 알겠지요”라고 했다. 출발 게이트 쪽으로 가던 그녀가 돌아와 날 꼭 껴안았다. “두 마리 말 고삐 잡아 볼게요.” 눈에 이슬 같은 눈물이 반짝였다.     홍상화 장편소설 ‘사람의 멍에’는 생의 멍에를 벗고 자유를 찾아 나선 한 예술가의 이야기다. 출판사 서평에서 ‘삶의 멍에에서 벗어나려는 한 인간의 아름다운 비상’이라 소개한다. 생의 멍에를 벗고 비상하는 그림은 없다.     나는 일곱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달린다. 가정도 자녀도 부모도 사업도 포기할 수 없는 내가 쥔 말 고삐다. 마르크 샤갈이 못 되도 화가 되길 꿈꾸고, 참회록 적듯 글을 쓴다. 청상의 어머니가 내 손을 놓지 않았던 것처럼 아이들 손을 꼭 다잡는다. 멍에를 목에 걸고 있었기에 위험한 탈출을 꿈꾸지 않았는지 모른다.     ‘수리아’는 인도의 베다 신화에 나오는 태양신으로 일곱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하늘을 달린다. 밤이면 어둠을 거두고 하계(下界)를 내려다 보며 지상을 둘러본다.     삶이라는 예술을 완성하기 위해 인생의 치열한 도면을 그린다. 그림이든 글이든, 형체 없는 바람이라 해도, 끝나지 않는 길을 향해 일곱번째 말이 달린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마차 전업 화가 신예 화가 홍상화 장편소설

2023.03.14.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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