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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만두 빚는 날

새해 설날이 되면 떠오르는 음식이 있다. 어릴 적 엄마를 따라간 방앗간에서 몽실몽실 김이 피어나며 두 줄기로 내려오던 떡가래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하얗고 보드라운 촉감에 은은한 맛이 있었다. 며칠 후 야들야들하게 굳어진 떡가래를 도마에 놓고 서툰 솜씨로 일그러진 동그라미 모양으로 잘랐다. 그 떡으로 푹 곤 사골 국물에 떡국을 끓여 먹었다. 난로 위에 노릇하게 구운 후 조청에 찍어 먹었던 가래떡은 고향의 맛으로 기억된다.   시집을 가니 시어머니는 설날엔 으레 황해도식 만두를 빚으셨다. 큰 상 위에 반죽한 밀가루를 펴고 밀대로 얇게 밀어 만두피를 만들었다. 고기와 갖은 야채를 다져 넣어 만두 속을 만드는 게 손만두 비법이다. 가족이 함께 빚은 만두를 냉동실에 얼려 놓고 겨우내 끓여 먹었다. 나는 속내를 비치지 못하며 친정에서 먹던 떡국을 그리워했다.   딸과 손주가 만두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할머니가 만들어주던 손만두에 대한 향수가 남아 있어서리라. 새해 첫날 만두를 빚는 날로 정하고 손주, 조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손자가 운동으로 다져진 근육의 팔로 밀가루를 반죽했다. 철썩철썩 치대며 끈기를 더했다. 부엌 아일랜드 위에 밀가루 반죽을 넓게 펼쳤다. 오랜만에 서랍 속에서 찾아 꺼낸 밀대로 힘껏 밀었다. 쫀득하고 얇게 빚으려 콧잔등에 땀이 보송보송 맺혔다. 그 위에 그릇 뚜껑으로 찍어 동그라미를 오려냈다.   다른 편에선 손녀가 고기와 양파를 다지고 두부를 으깨어 물기를 빼고 만두 속을 만들었다. 숙주와 콩나물을 구분 못 한 딸 덕분에 콩나물의 머리를 떼어내는 데 시간을 소비해야 했다. 매운 양파 내음에 흐르는 눈물을 애써 참는 손녀의 모습이 기특했다. 손자가 좋아하는 김치를 많이 넣기로 했다. 소금, 후추 간을 하니 감칠맛이 더해졌다. 할머니 입에 넣어주며 “salty 해요?” 간을 보아달라고 했다.   양푼에 담긴 만두 속을 숟가락으로 떠 만두피 위에 얹었다. 만두피를 맞붙여 반달 모양을 만들고 주름을 잡고 끝을 둥글게 맞물렸다. 적당량을 가운데 올리고 양쪽 끝 부문에 물을 둘러 접착하는 방법이 생각처럼 쉽지 않은가 보다. 손끝에서 맛이 나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크! 불룩한 배 한 귀퉁이가 터져 피식 손녀의 웃음이 터졌다. 땜질하며 조금은 욕심을 내려놓으려 애쓰는 듯했다. 손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많이 넣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새해에 바라는 것들을 넣자고 했다. 기쁨과 소망을. 그러다 가끔 불평과 실망도 들어가겠지만. 마주 바라보며 가족의 정겨운 이야기도 담아 보았다. 푸른 용의 힘찬 기운을 만두 속에 넣고 한소끔 끓여 냈다.   나는 떡을 곁들여 떡만둣국을 끓였다. 밀가루 범벅이 된 손자 손녀는 입이 귀에 걸려 있다. 타인종인 사위는 뜨거운 떡만둣국을 “시원하다!”며 들이킨 후 인사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희숙 / 수필가이 아침에 만두 밀어 만두피 손주가 만두 황해도식 만두

2024.01.09.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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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그리움으로 빚는 만두

 새해 첫날, 일어나자마자 부엌으로 향했다. 올해는 만두피를 직접 만들 작정이다. 밀가루를 주먹으로 치대 반죽을 하고 젖은 헝겊을 덮어두었다. 전날에 미리 당면을 삶아 다지고, 속을 털어낸 김치도 잘게 썰어 베보자기에 짜서 물기를 빼놓았었다. 물기 뺀 두부와 숙주나물 다진 것, 간 돼지고기를 섞다보니 만두소가 커다란 그릇에 하나 가득이다. 이 많은 걸 언제 다 만드나? 괜히 시작했나? 시작하기 전에 생각이 오락가락이다.   해마다 새해맞이 음식은 나 혼자서 기름내를 맡아가며 산처럼 녹두전을 쌓아놓고 냉동실에 빚은 만두를 얼렸다. 미국이니 한국처럼 명절 기분을 낼 필요는 없는 일이다.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 혼자 고생한다고 투덜대도 그 투정을 해도 받아줄 사람이 없는 이곳은 LA가 아니던가.   녹두빈대떡을 안 부친다고 눈치 줄 사람도 없는 일이고 정 먹고 싶으면 간편하게 한국마켓에서 파는 만두를 사다 끓이면 되는 일이다. 연말이라고 밤늦도록 친구들과 쏘다니며 들떠있는 딸들더러 ‘만두 좀 같이 빚자’고 집에 일찍 들어오라는 부탁이 통할 리 만무다. 결혼을 해서 분가를 한 딸들이 자발적으로 손을 보태면 좋겠지만 지금도 두 딸네가 모두 각자 바쁘다.   ‘내가 만든 만두는 맛이 없으니 그냥 사 먹자’는 남편이 야속해도 나 혼자 나무 도마에 반죽한 밀가루를 떼어 밀대로 밀어 동그랗게 만들었다. 먼저 만두 한 개를 만들어 끓인 물에 익혀서 간을 봤다. 입안에서 아삭아삭 씹히는 김치와 댕글댕글한 당면이 왠지 겉도는 느낌이 났다. 뭐가 문제지? 재료는 똑같은데 왜 예전 맛이 나질 않는 걸까?   외할머니 생전에 친척들이 모이면 남자여자 할 것 없이 상에 둘러 앉아 만두를 빚었다. 나이 어린 나까지 고사리손을 보태니 양푼에 가득했던 만두소가 눈 깜짝할 사이에 없어졌다. 설설 끓는 곰국 국물에 썬 가래떡과 만두를 넣어 한소끔 끓인 만둣국에 양념장에 버무린 소고기 고명은 씹을수록 단맛이 났다. 초간장에 찍어 먹던 만둣국은 추억 속에서만 살아있는 모양이다.   뿐만인가. 설날 전에는 너나할 것 없이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만두를 빚었다. 맛 좀 보라며 앞집에서 만두를 갖고 오면 엄마도 만두를 챙겨 내게 이집 저집 배달을 시켰다. 만두를 돌리는 심부름 또한 나눠주는 기쁨이고 재미였다. 손맛에 따라 김장김치 맛이 다르듯이 만두 맛도 그러했다. 고기소를 많이 넣은 외할머니의 만두 맛은 든든한 맛이 났다. 엄마가 만들었던 우리 집 만두는 김치소를 많이 넣어 입안에서 사각거리는 식감이 느껴졌다. 솜씨가 있든 없든 온 집안 식구들이 달라붙어 만들었던 만두는 마켓에서는 절대 살 수 없는 그리움이고 추억이다. 내가 만든 만두는 맛이 없다는 남편은 아마 돌아가신 시어머니의 손맛을 기억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쉬엄쉬엄 만두를 다 빚었다. 눈대중으로 치댄 밀가루 반죽도 모자라지도 남지도 않았다. 녹두전과 얼린 만두를 배달할 일만 남았다. 딸네로 향했다. 운전하는 동안 만두가 녹아 달라붙을까 얼음 팩도 넣었다. 내가 만든 만두는 사랑으로 빚어서 혼자 만들어도 힘들지 않다. 권소희 / 소설가이 아침에 만두 동안 만두가 모두 만두 밀가루 반죽

2022.01.03. 17:40

[이 아침에] 만두와 삶은 닮았다

 싸한 가을에 만두를 빚는다. 상 위에 빚어진 하얀 만두는, 강물에 띄워진 쪽배가 되었다, 그리움에 물든 밤하늘의 반달이었나 하면, 세월의 언덕을 사뿐히 내딛는 수줍은 버선발이 되기도 한다.     처음에는 다진 새우에 부추를 더해 상현달과 하현달 같은 반달 모양의 만두를 만들었다. 하지만 나의 무의식 어딘가에서는 또 다른 달을 창조하고 싶었나 보다. 나는 부추와 돼지고기를 섞어 반달을 만든 후, 초승달을 닮은 통새우 한 마리를 한편에 세워 보름달 같은 둥근 만두를 탄생시켰다. 이제 달은 밤하늘에만 떠 있는 것이 아니라, 밥상 위에도 올라 내 영혼을 따뜻하게 위로해 준다.   한 주머니에 여러 음식을 품고 있는 만두는, 미국도시를 닮았다. 갖가지 소가 다양한 조화를 이루는 만두 속 같이, 한 공간에  여러 민족이 함께 삶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만두와 삶은 닮았다. 삶이라는 주머니에 누구나 나름대로의 그 무엇을 담아도 괜찮은 듯, 만두 역시 그 안에 무엇을 넣어도 문제될 것이 없다.     게다가 만두는 한 가지 소만 넣거나, 아니면 몇 가지를 섞어 넣어도 무난하다. 그것은 삶의 길이 단순한 외길이거나 몇 가지 길을 동시에 걷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과 같지 않을까.   그런가 하면 연한 만두피는 속에 어떤 것이라도 감싸 안아 감당해 내야 하는 것이 우리네 삶과 비슷하다. 간과 맛이 어떻든 만두피는 자기가 감당해야 할 것을 말없이 받아들여 품는다.     먼 타향에서 가을을 맞으며 만두를 빚는다. 내가 만드는 만두에는 한과 사랑과 추억이 담긴, 디아스포라의 오렌지빛 향수일 것도 같다. 이때의 만두는 내 영혼이 아늑한 고향으로 떠나고 싶을 때 나를 태우고 떠나는 작은 돛단배다.     삶을 마주하듯, 단정히 앉아 만두를 빚는다. 분수에 맞게 마련한 만두 소를, 세상살이에서처럼 둥글둥글 모나지 않게 접는다. 생을 빚어가듯 만두소를 욕심껏 많이 넣어 터지지 않게 하고, 너무 적게 넣어 인색하지 않게 한다. 또 만두소의 간을 너무 짜거나 싱겁지 않게 하여, 조화롭게 삶의 간을 맞추듯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한다. 그런가 하면 세상 일을 주변 상황에 맞게 처리하듯, 만두를 빚을 때도 모든 과정을 순리에 맞게 한다.   만두를 빚는 일과 살아가는 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만두 요리에는 세상살이의 이치와 순리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만두가 숙성되어 가는 과정은 삶을 터득해 가는 지침서가 된다고나 할까. 그리 보면 아직 세상살이에 미숙한 내가 빚는 만두는, 인생 수행 과정의 일부분이 될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만두를 만들어 가는 일은 삶을 실하게 숙성시키고 싶은 나의 작은 의지일 것도 같다.     세월 속에 익어가는 나의 만두는, 언제쯤 환한 보름달처럼 세상을 밝고 행복하게 비추게 될 수 있을까. 김영애 / 수필가

2021.10.18. 19:28

[이 아침에] 만두와 삶은 닮았다

 싸한 가을에 만두를 빚는다. 상 위에 빚어진 하얀 만두는, 강물에 띄워진 쪽배가 되었다, 그리움에 물든 밤하늘의 반달이었나 하면, 세월의 언덕을 사뿐히 내딛는 수줍은 버선발이 되기도 한다.     처음에는 다진 새우에 부추를 더해 상현달과 하현달 같은 반달 모양의 만두를 만들었다. 하지만 나의 무의식 어딘가에서는 또 다른 달을 창조하고 싶었나 보다. 나는 부추와 돼지고기를 섞어 반달을 만든 후, 초승달을 닮은 통새우 한 마리를 한편에 세워 보름달 같은 둥근 만두를 탄생시켰다. 이제 달은 밤하늘에만 떠 있는 것이 아니라, 밥상 위에도 올라 내 영혼을 따뜻하게 위로해 준다.   한 주머니에 여러 음식을 품고 있는 만두는, 내가 사는 LA시를 닮았다. 갖가지 소가 다양한 조화를 이루는 만두 속 같이, 한 공간에  여러 민족이 함께 삶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LA는 여러 종류의 음식을 한 주머니에 품은 만두 같이, 나름대로의 맛과 멋이 어우러져 독특하고도 아름답다.     생각해보면 만두와 삶은 닮았다. 삶이라는 주머니에 누구나 나름대로의 그 무엇을 담아도 괜찮은 듯, 만두 역시 그 안에 무엇을 넣어도 문제될 것이 없다.     게다가 만두는 한 가지 소만 넣거나, 아니면 몇 가지를 섞어 넣어도 무난하다. 그것은 삶의 길이 단순한 외길이거나 몇 가지 길을 동시에 걷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과 같지 않을까.   그런가 하면 연한 만두피는 속에 어떤 것이라도 감싸 안아 감당해 내야 하는 것이 우리네 삶과 비슷하다. 간과 맛이 어떻든 만두피는 자기가 감당해야 할 것을 말없이 받아들여 품는다.     먼 타향에서 가을을 맞으며 만두를 빚는다. 내가 만드는 만두에는 한과 사랑과 추억이 담긴, 디아스포라의 오렌지빛 향수일 것도 같다. 이때의 만두는 내 영혼이 아늑한 고향으로 떠나고 싶을 때 나를 태우고 떠나는 작은 돛단배다.     삶을 마주하듯, 단정히 앉아 만두를 빚는다. 분수에 맞게 마련한 만두 소를, 세상살이에서처럼 둥글둥글 모나지 않게 접는다. 생을 빚어가듯 만두소를 욕심껏 많이 넣어 터지지 않게 하고, 너무 적게 넣어 인색하지 않게 한다. 또 만두소의 간을 너무 짜거나 싱겁지 않게 하여, 조화롭게 삶의 간을 맞추듯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한다. 그런가 하면 세상 일을 주변 상황에 맞게 처리하듯, 만두를 빚을 때도 모든 과정을 순리에 맞게 한다.   만두를 빚는 일과 살아가는 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만두 요리에는 세상살이의 이치와 순리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만두가 숙성되어 가는 과정은 삶을 터득해 가는 지침서가 된다고나 할까. 그리 보면 아직 세상살이에 미숙한 내가 빚는 만두는, 인생 수행 과정의 일부분이 될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만두를 만들어 가는 일은 삶을 실하게 숙성시키고 싶은 나의 작은 의지일 것도 같다.     세월 속에 익어가는 나의 만두는, 언제쯤 환한 보름달처럼 세상을 밝고 행복하게 비추게 될 수 있을까.  김영애 / 수필가

2021.10.15.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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