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침에] 덜해도 괜찮아
금요일 아침이다. 며칠간 음식을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약속했다. 이번만큼은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부쩍 늘어난 체중이 계속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변화를 원한다면, 나 자신을 위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다짐하던 중, 딸에게서 며칠간 강아지 시팅을 부탁하는 연락이 왔다. 나는 이른 아침 딸의 집으로 갔다. 남편의 아침은 파네라 브레드에서, 점심은 한남 마켓 푸드 코트에서 해결했다. 집으로 돌아와 나는 레몬을 짜 넣은 물 한 잔으로 대신했다. 뱃속은 비어 있었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 채우지 않음으로써 비로소 느끼게 되는 여유였다. 그 자유가 이렇게 조용하고도 달콤할 줄 몰랐다. 햇살이 식탁 깊숙이 스며들며 나를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강아지 체이스와 다코타가 꼬리를 흔들며 곁으로 다가왔다. ‘주인님, 저녁 하실 시간이에요.’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니, 오늘은 내가 주인공이야.’ 어제 사온 동태찌개를 데워 남편의 저녁상에 올렸다. 예전 같았으면 국을 끓이고 나물을 무치며 분주했을 텐데, 요리를 하지 않으니 어색한 마음이 들었다. “혼자 먹어서 그런가, 맛이 별로네.” 남편의 말에 잠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식사 후 그는 TV 앞에 앉아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나는 따뜻한 물 한 잔을 들고 그의 곁에 앉았다. 평생 가족을 돌보며 최선을 다해 살아왔는데, 음식을 만들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왜 나는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걸까. 밤이 되자 기운이 없었다. 하루 금식에 불과했는데 눈은 흐릿했고 몸이 힘들어 졌다. ‘괜찮아. 이틀만 더 견디자.’ 아침에 눈을 뜨자 다리에 힘이 없었다. 천천히 일어나 물 한 컵을 마셨다. 남편을 태우고 차를 몰았다. 익숙한 길, 익숙한 신호등, 늘 반복되던 아침 풍경인데 오늘은 조금 다르게 보였다. 운전대에 얹은 두 손이 나를 붙들어 주는 듯했다. 이만하면 아직 괜찮다고 스스로 말하며 파네라 빵집으로 들어갔다. 남편은 아침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었다. 나는 따뜻한 차로 대신했다. 속이 텅 빈 듯한 느낌이 배고픔인지 가벼움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음식을 먹지 않기로 스스로 선택한 길이라 불평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와 강아지 두 마리와 함께 뒷마당으로 나가 햇살을 받으며 여유를 즐겼다. 꽃나무는 아직 꽃은 피우지 않았지만 나뭇가지마다 연둣빛이 움트고 있었다. “쉬는 날은 나를 다시 만드는 시간이다.” 어디선가 들었던 그 말이 오늘따라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점심에는 집에서 가져온 된장찌개를 데워 남편의 밥상을 차렸다. 다시마와 멸치로 우려낸 국물에 호박과 감자, 두부가 어우러진 구수한 냄새가 부엌 가득 퍼졌다. “된장찌개, 맛있네.” 남편의 한마디에 나는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저녁은 삶은 계란과 상추쌈으로 남편은 간단히 식사를 마쳤다. 나는 보리차 한 잔으로 하루를 정리했다. 허기보다 마음이 먼저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해가 기울 무렵 남편이 물었다. “배 안 고파?” 그 짧은 물음에 눈물이 핑 돌았다. 말이 없는 그가 내 존재를 새삼 살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또 다른 하루가 조용히 지나갔다. 일요일 새벽, 다코타가 코를 들이밀며 나를 깨웠다. 창문을 열자 맑은 공기가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레몬꽃 향기가 코끝을 스치며 잠들어 있던 몸을 깨웠다. 기운은 여전히 없었지만 마음만큼은 평안했다. 파네라에서 남편의 아침 식사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햇살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내일 아침 일찍 집으로 돌아가면 금식도 끝난다. 식사를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새삼 고마웠다. 늘 남편의 식사 시간을 맞추며 살아온 나에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는 뜻밖의 위로였다. 사랑을 위해 내 힘 이상의 짐을 짊어지며 그것을 당연한 헌신이라 믿어왔지만, 이제는 안다. 덜해도 괜찮다는 것을. 놀랍게도 사흘 만에 체중이 4파운드나 줄어 있었다. 짐을 싸며 강아지들의 아쉬운 눈빛을 마주했다. 삶의 균형이란 소소한 날들의 작은 행복 속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사랑하는 이를 위해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도 나는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기꺼이 누렸다. 그 시간 속에서 비로소 ‘감사’라는 이름으로 다시 나를 만날 수 있었다. 엄영아 / 수필가이아침에 식사 시간 며칠간 강아지 강아지 체이스
2025.12.25. 1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