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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나중이라는 시간

“나중에 기운 차리면 만나자.” 그 말이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은 몰랐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함께하며 오랫동안 자매처럼 지낸 명순 언니가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믿기 어려웠다. 언니의 문자를 받은 지 사흘 만이었다. 70세 생일을 불과 석 달 앞둔 때였다.   서울 서초동의 같은 아파트단지 옆 동에 살며 우리는 아이들을 함께 키웠다. 겨울이면 과천 서울랜드 눈썰매장에서 양 볼이 빨개지도록 썰매를 타고,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는 꾸벅꾸벅 졸곤 했다. 광화문 화랑에서 닥종이 작가 김영희의 ‘아이를 잘 만드는 사람’ 전시를 보며 한국의 전통 풍속을 언니와 경쟁하듯 아이들에게 설명한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는 몰랐다. 그 평범하고 분주한 일상이 훗날 가장 그리운 장면이 될 줄은.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날에도 우리는 함께 있었다. 조카를 맡아 다섯 아이를 돌보느라 기진맥진하여 백화점 폐장 세일에 가지 못했는데, 그 일이 우리를 살렸음을 알고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삶은 언제나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른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바쁘다는 핑계로 다음에 보자는 말로 만남을 미루지 않았던가.   한국을 방문하면, 당시 뷰티서플라이를 운영하던 나를 위해 언니는 기꺼이 남대문 시장을 안내해 주었다. 미국의 가게에서 판매할 반짝이는 머리 액세서리를 사고 시장통의 좁은 골목에서 갈치조림을 먹었다. 음식의 맛보다 더 진하게 남은 것은 마주 앉아 웃던 언니의 얼굴이다.   90년대 말, 우리는 손편지로 소식을 주고받았다. 언니 시누이를 통해 신청한 영주권이 나와서 내가 사는 도시로 오게 되었다는 소식에 뛸 뜻이 기뻤다. 낯선 타국에서 다시 이어진 인연이 신비롭게 느껴졌다. 삶의 고비마다 솔직하고 지혜로운 조언을 아끼지 않던 사람인 언니를 나는 많이 따랐다. 함께 바닷가와 공원, 트레일을 걸으며 서로의 건강을 걱정해 주었는데, 이제는 혼자 걸어야 한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나중’이라는 시간은 사라졌지만, 함께한 시간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   최근 이집트 여행 후 시차로 고생하다가 언니에게 연락했지만 위암 투병 중이라 전화를 받지 못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나중에 기운 차리면 보자”는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못했다. 우리는 ‘나중’을 당연한 미래로 믿지만, 그 시간은 누구에게도 보장되지 않는다.   온화한 미소와 수줍은 듯 양 볼에 패인 볼우물이 어여쁘던 언니의 모습과 추모식에서 마주한 언니의 야윈 모습이 겹친다. ‘기억이 지워질 때까지 그 사람은 죽은 사람이 아니다’라는 어느 인디언 부족의 말이 생각난다. 언니와 함께한 시간이 또렷이 남아 있는 한, 언니는 완전히 떠난 것이 아니다. 사랑한다는 말, 고맙다는 말, 보고 싶다는 표현을 더는 미루지 않겠다고, 나중이라는 시간 대신 오늘을 선택하겠다고, 다짐해 본다. 그것은 남겨진 이들이 서로를 지키는 방식일 것이다.  최숙희 / 수필가이아침에 시간 시간 대신 언니 시누이 명순 언니

2026.02.1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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