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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눈부신 발전…목숨 바쳐 지킨 보람"

"목숨 바쳐 지킨 대한민국이 오늘과 같은 발전을 이뤄낸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고 해도 해군 전투 조종사로 지원해 미국과 한국, 그리고 민주주의를 수호할 것입니다."   한국전 참전용사인 엘머 로이스 윌리엄스(Elmer Royce Williams·사진) 미 해군 예비역 대령이 지난 4일 100세 생일을 맞았다. 그는 미 해군 전투기 조종사로 한국전쟁에 참전, 소련 전투기 7대와 단독 공중전을 벌여 4대를 격추한 기적과 같은 전과의 주인공이다. 군사 전문가들은 이 공중전을 '항공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로 평가했고 윌리엄스 대령은 그 공로로 해군십자훈장, 은성훈장을 수훈했고 지난해에는 한국 정부로부터 태극 무공훈장을 받았다.   윌리엄스 대령은 대공황이 한창이던 시절 사우스 다코타의 작은 마을 윌멋에서 태어났다. 4살 무렵 할머니와 처음 타 본 비행기에 완전히 매료됐고 학창 시절 이글 스카우트 단원으로 활동하다 세계 2차대전 당시 일본의 진주만 공습 이후 형과 함께 입대를 결심했다. 이후 미네소타에서 해군으로 복무하며 학사 과정을 수료하고 플로리다에서 해군 비행사 자격을 취득했으며 한국전에 참전해 70여 개 작전에 투입돼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윌리엄스 대령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국전쟁에서의 첫 임무를 생생하게 회상했다. 그의 첫 임무는 북한 지역에 폭탄 6개를 투하하는 것이었다.      첫 출격 당시 공포나 불안은 없었다고 했다. 미국 시민으로서 충성 서약을 했고 해군으로서 철저한 군사 훈련을 받았으며, 자유 대한을 방어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본인 능력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었다. 실제로 당시 그가 투하한 6개의 폭탄은 북한군에 큰 피해를 준 것으로 알려졌다.     윌리엄스 예비역 대령은 본지와 인터뷰를 하며 지금의 한국 안보 상황에 대한 우려도 나타냈다. 공식적으로는 한반도 상황이 '종전'이 아닌 '휴전' 상태라는 것. 그는 남한과 북한이 5000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던 만큼 앞으로는 '하나의 국가(One Nation)'가 되어 새로운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세상에 이념이 생기고, 그 이념이 도전받을 때 전쟁은 피할 수 없겠지만 핵무기는 한반도뿐만이 지구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기에 절대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젊은 세대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100세 생일을 맞은 노병은 "젊은이들이 '큰 그림에 대한 예측과 전망(High Level Outlook)'을 가지고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며 "국가가 여러분에게 뭘 해줄지 묻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뭘 할 수 있는지 생각하라"는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뉴 프런티어 정신을 인용했다. 나아가 젊은 시절 도전이 없다면 어떤 성취도 기대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엘머 윌리엄스 예비역 대령은 지난 5일 발보아 파크에 위치한 항공우주 박물관에서 300여 명의 참전용사들과 함께 100세 생일 파티를 가졌다. 이날 파티에서 그는 해군이 되지 않았더라면 요세미티를 지키는 국립공원 관리인이 되어 마음껏 낚시와 사냥과 하이킹을 즐겼을 것이라는 농담도 더했다.     이날 그는 지난 100년의 세월 중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결혼 생활이었다며 평생 든든하게 자신의 곁을 지키며 세 아들을 훌륭히 키워준 아내에게 큰 감사를 전했다.   글·사진= 박세나 기자보람 목숨 윌리엄스 대령 한국 정부 로이스 윌리엄스

2025.04.1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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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한끗 차이로 목숨 건진 순간 포착

 영상 목숨 포착 순간 포착

2024.12.13.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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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목숨과 바꾼 자존심

사람이 명예나 지위, 자존심, 그리고 돈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좀 더 심하게 말하면 죄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람의 목숨은 이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가치다. 우리에게는 목숨이 하나밖에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무너진 자존심과 수치심 때문에 교사들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너무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나중에 진상이 밝혀져 교사들의 무고함이 밝혀졌다니 이처럼 황당한 일이 어디 있겠나. 사후에 명예를 회복하고 표창장을 받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또 남아있는 가족의 슬픔은 어찌하라고. 자존심이나 명예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근거 없는 비난쯤은 한쪽 귀로 흘리고, 조금만 더 인내하며 견뎠다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터무니없는 비방으로 마지막 궁지까지 몰고 간 사람들에게도 큰 잘못이 있다.   옛날 중국의 한 고조 유방은 자존심을 버리고 항우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갔지만 끝내는 승자가 됐다. 자존심을 잠시 내려놓고 실리를 택했고, 결국 그것이 현명한 선택이었던 셈이다.     학교 성적에 낙담하거나 친구 문제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청소년들이 있다. 또 취업이나 결혼 문제로 인생을 포기하는 젊은이들도 있다. 이런 잘못된 선택은 자신을 낳아주고 키워준 부모에게는 차마 해서는 안 될 죄를 짓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세상에 사람의 목숨보다도 중요한 것은 없다. 사람이 한평생 살다 보면 성공도 있지만 실패하는 일도 생기게 마련이다. 무슨 큰일이 생길 때마다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한다. 인생을 길게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매 순간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성실하게 살겠다는 자세가 중요하다. 아무리 자존심 상하는 일이 있더라도 절대 극단적 선택은 하지 말아야 한다.    김영훈독자 마당 자존심 목숨 지위 자존심 극단적 선택 친구 문제

2024.10.01. 19:08

홈리스 사망 22% 감소…약물 남용 많아

지난해 LA에서 사망한 홈리스 수가 전년과 비교해 22% 줄었지만, 마약 등 약물 중독으로 목숨을 잃는 홈리스 비중은 높게 나타났다.     지난 28일 LA시 케네스 메지아 회계감사관은 ‘2023 홈리스 사망 현황’ 통계 보고서를 발표하며 홈리스 900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지난해 홈리스 사망자가 전년 1167명과 비교해 눈에 띄게 줄어든 수치라고 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통계는 LA 관할지 내 거리, 셸터, 프리웨이 등에서 숨진 홈리스를 집계했다. 감사관 측은 LA카운티검시국 통계를 이용했다고 설명했다.   홈리스 사망 원인은 사고사(accident)가 75%(678명)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다음으로 자연사 18%(160명), 살인 4%(40명), 자살 2%(16명), 사인불명 1%(6명) 순이다.   이와 관련 LA타임스는 홈리스 사망 원인 자체 분석을 통해 65%(545명)가 마약 등 약물과 연관됐다고 보도했다. 이들 사망자는 펜타닐, 메스암페타민(필로폰) 등을 남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문은 약물 관련 홈리스 사망 증가는 거리의 위기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홈리스 사망자의 73%는 거리, 텐트, 주차장, 공원, RV, 빈 건물 등에서 생을 마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홈리스 인종별 사망자는 라틴계가 32%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흑인이 31%로 나타났다. 흑인은 LA시 전체 인구의 8%지만 홈리스의 33%를 차지하고 있다. 백인 사망자는 30%로 집계됐다.   지역구별 홈리스 사망자는 14지구가 30%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다음으로 1지구 12%, 13지구 9% 순이다. LA카운티홈리스서비스관리국(LAHSA)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홈리스가 가장 많은 지역구는 1·9·14지구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LA카운티 전역 홈리스 사망자는 1467명으로 집계됐다.     한편 LA 캐런 배스 시장과 시의원들은 홈리스 문제 해결을 거듭 약속했다.     홈리스 사망자 보고서 발표 이후 배스 시장은 성명을 통해 “홈리스 위기상황 속에서 벌어진 모든 죽음은 비극”이라며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가족과 친구 모든 분께 애도를 표한다. 홈리스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긴급대책 마련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홈리스 사망자가 가장 많았던 14지구 유니스 헤르난데스 시의원은 “보고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을 보여주는 비극”이라며 “홈리스 위기를 막기 위해서는 주거시설 마련에 더 힘쓰고 거리 의료지원팀 활동도 더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형재 기자 [email protected]홈리스 목숨 홈리스 사망자 홈리스 위기상황 지역구별 홈리스

2024.03.31.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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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무엇을 위해 목숨 걸 건가

누구도 믿지 마라. 나도 못 믿는다. 불타던 사랑도 시들해지고 죽자 사자 우정을 다짐하던 친구도 헤어지면 소식이 까마득해진다. 믿는 도끼에 발등이 자주 찍히고 함께 잘 나가다 돌아서면 웬수가 된다. 영원은 없다. 한결같은 믿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생은 어차피 각자도생(各自圖生), 스스로 제 살길을 찿는다.       ‘각자도생’은 ‘조선왕조실록’에 처음 등장하는 한국판 고사성어다. 대기근이나 전쟁, 국운이 위기에 달했을 때 백성들이 스스로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유래된 말이다. 실록에 따르면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등 두 차례의 큰 전란과 대흉년으로 백성들이 처참한 고통을 받던 때가 ‘각자도생’의 시기라고 적고 있다. 어떤 훌륭한 이념과 사상도 목숨줄만큼 지켜낼 소중한 가치는 없다.   한(漢)나라 말, 위, 한, 오 삼국으로 나눠져 서로 황금권좌를 차지하기 위한 쟁탈전이 벌어졌다. 짚신 짜던 유비는 푸줏간 하던 장비(張飛)와 관료의 목을 베고 떠돌던 관우(關羽)와 더불어 도원(桃園)에서 의형제 결의(結義)를 맺는다.   ‘의를 맺어 형제가 되니 천하사람을 도와 백성을 편안케 하려 함이다. (중략) 의리를 저버리고 은혜를 잊는 자는 천벌을 내려 죽이소서’라고 뜻을 모으고 복숭아 밭에서 소를 잡아 제사 지내며 하늘에 맹세한다. 서로 형제처럼 여기고 함께 잠자며 수족과 같이 여겼는데 장비는 관우가 연장이어서 극진하게 형으로 모셨다고 촉서에 전해진다.     대장동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끌벅적이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제일 무섭다. 속속들이 안다. 멀리 있는 사람은 짐작만 할 뿐 상세한 내용을 잘 모른다. 한푼 두푼 절약하며 먹고 살기에 급급한 민초들은 민간업체가 부정한 방법으로 감이 안 잡히는 천문학적인 이익을 누렸다는 보도로 자괴감에 빠진다. 불나비가 불을 쫓듯 죽기살기로 돈에 목숨을 걸었던 대장동 도원결의 형제(?)들이 벌이는 기막힌 난타전은 차후 영화의 소재로 재생산 될 여지가 충분하다.     도원결의(桃園結義)는 뜻이 맞는 사람들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같이 행동하기로 약속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돈은 애물단지다. 화를 불러오고 불화의 근원이 된다. 애당초 이들이 맺은 의리는 대의명분이 아니라 자기 주머니 챙기기였으니 파토 날 소지가 다분했다. 결론은 패가망신 개망신 몰락으로 종착된다.   요즘 나는 머리 흔들며 자신을 부정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 동안 믿고, 알고 있었던 것들, 추종하고 따르던 것들이 편견과 아류의 집합이 아니였는지 의심한다. 이념의 틀에 자신을 가두고 한쪽 방향으로 편향된 사고에 골몰한 것은 아닌지. 배신과 증오, 진실과 거짓이 난무하고 ‘좌’ 아니면 ‘우’로 낙인 찍히는 시대의 비극에 양다리 걸치고 힘없는 소시민으로 사는 것이 슬프고 부끄럽다.     각자도생의 반대말은 공생이다. 너도 살고 나도 사는 함께 만드는 세상이다     한겨울 삭풍에 흔들려도 뿌리만 살아있으면 나무는 봄꽃을 피운다. 누구를 위해서도, 무엇을 위해서 목숨 걸지 않고, 어떤 것에도 충성맹세 하지 말고, 평탄하고 분명한 길 따라 가면 돌부리에 채여 실족할 일 없을 것이다.     아무도 내 삶을 살아주지 않는다. 지금은 끝이 안 보이는 아수라장이지만 곧 종착역에 도착하리라. 종점에서 흔들려도 뿌리 뽑히지 않는 튼실한 나무로 서리라. 그 때까지 부디 이념에 갇혀 괴물이 되지 않기를.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목숨 대장동 도원결의 사상도 목숨줄 의형제 결의

2022.11.29.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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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담보하고 걸어가는 광야…영성 다듬어지는 곳

최근 고고학자 성경학자 사이에서는 '시내산'이 이집트에 있는것이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 있다는 학설이 대두하고 있다.   현장 답사를 위해 미주 지역에서 세마포 호도스 선교회(대표 켄 안 선교사)가 처음으로 순례단을 모집했다.     미주성시화운동본부 공동대표 송정명 목사는 지난 2월21일~3월5일까지 사우디아라비아 지역 순례 일정에 참여했다. 시애틀 형제교회 권준 목사 뉴욕 시라큐스한인교회 지용주 목사가 동행했다.   특히 이번 답사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에서 한방 주치의로 일했던 김승학 박사가 현장에서 직접 세미나까지 진행했다. 송정명 목사의 답사기를 게재한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걸어간 길 방향 감각조차 잃을 황량한 지역 백성들의 원망과 아우성 있었던 곳 성경의 흔적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한마디로 말하면 감격과 흥분의 시간이었다.     모세와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걸었던 광야 길을 직접 눈으로 보았고 걸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광야가 어떤 곳인지는 현장에 직접 서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그야말로 놀라운 영적 도전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모세가 이집트 바로의 왕궁에서 차세대 왕자로 이집트의 역사 문화 정치 리더십 등의 훈련을 40년간 받아 왔지만 그의 영성은 오히려 미디안 광야에서 다듬어 졌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는 장소다.   광야는 길도 없고 물도 없다. 식량도 구하기 어려운 곳이다. 방향 감각조차 찾기 어려운 곳인데 때로는 세찬 모래 바람이 불어 앞뒤를 구별할 수도 없었다.   이런 길을 40년간 걸어 간다는 것은 목숨을 담보해야 하는 고행길이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과 도우심 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곳이다. 영성이 절로 다듬어 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곳에는 성경에 기록된대로 그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집트에서 실수로 애굽 사람을 주먹으로 때려 죽이고  바로왕의 눈길을 피해 미디안 광야로 도망쳐 나와 피곤함에 지쳐 앉아 있던 모세의 우물도 있었다.     그 근처에는 장인이 될 미디안 지방의 제사장 이드르가 살고 있던 집터도 남아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모세가 이드로의 양떼를 치면서 양들을 몰고 올라 갔다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나셨던 하나님을 만나 애굽에서 종 살이 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라는 특별한 명령을 받았던 호렙산(시내산)의 흔적을 생생히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시내산은 산세가 험하고 그 높이가 2285미터가 넘기 때문에 우리 일행이 함께 정상에 오르기에는 무리한 일정이었다.   사우디 사람들은 그 산을 '라오즈' 산으로 불렀다.     산 정상은 불로 그을린 검은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불 가운데 강림하셨던 하나님의 흔적이라고 믿고 있다. 만약 산 정상에 오르겠다면 4~5명이 텐트를 준비해서 야영하는 일정을 잡아야 할 것 같다.   그 바로 아래는 엘리야 선지가 아합왕의 부인 이세벨의 복수를 피해 도망친 뒤 기도하던 엘리야의 동굴도 있었다.   당시 모세는 시내산에 올라가 40일 동안 기도하고 십계명이 새겨진 돌 판을 받느라고 일정이 늦어졌다. 그러자 산 아래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론을 충동질해서 자기들을 인도할 신을 만들자고 금 송아지 우상을 놓고 경배하며 춤을 추었다. 놀라운 것은 그 제단의 흔적이 지금도 있다.     주변에는 200만 명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이 장막을 치고 거할 수 있는 넓은 평지도 있다.   금 송아지를 만들고 그 앞에서 춤을 추던 모습을 보았던 모세가 우상을 불살라 가루를 만들고 물에 뿌려 백성들에게 마시라고 명령했던(출 32:15-20) 그 냇가의 흔적도 그대로 있었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건기라서 물은 말라 있었지만 흔적은 여전하다. 그 아래 지역에는 맷돌 모양의 돌이 많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동행한 김승학 박사는 그 절구 같이 생긴 돌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만나를 갈아 먹었던 돌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출애굽기 17장에 기록된 르비딤 광야를 갔을 때의 감동도 잊을 수 없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물을 마시지 못하고 지냈기 때문에 모세에게 물을 달라고 아우성을 치며 원망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 모습을 보고 바위를 갈라 물을 공급해 주셨다. 그때 물을 내었던 큰 바위가 갈라진 채 아직도 그대로 버티고 있었다. 그 높이가 웬만한 아파트 7~8층 높이는 되는 것 같다. 누구나 압도당할 수밖에 없고 성경을 믿는다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바로 그 들판에서 갑자기 아말렉 군대의 기습을 받게 된다. 모세는 아론과 홀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고 지상 전투는 여호수아에게 부탁했다. 산에 올라간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하면 이스라엘 군대가 승리하고 모세의 팔에 힘이 빠져 손을     잠깐 내리면 아말렉 군대가 역습을 해오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았던 아론과 홀이 모세의 팔이 내려오지 못하도록 받쳐주었던 그 곳이다.   결국 이스라엘 군대가 아말렉 군대를 무찌르고 모세는 그곳에 기념 돌을 세웠다. 그곳을 '여호와 닛시(출 17:15)' 라고 불렀다. 승리의 현장이다.   그 근처  평평한 들판에는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거했던 터전들이 여기 저기 남아 있었다.     그 지역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모랫길을 약 3마일 이상 걸어 카메라에 담았다.   아직은 관광객이 갈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도로 사정이나 교통편도 불편했다. 특히 광야는 관광 버스 운행이 어렵기 때문에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그곳 사람들은 미국에서 한인이 이렇게 많이 들어온 것을 보고 깜짝 놀라 했다. 지금까지 유럽 지역에서 소수의 그룹이 간혹 방문한 경우는 있다고 했다.   우려가 되는 부분도 있다. 앞으로 관광지로 개발이 되면 여행자에게는 편안할 수 있겠지만 원형 그대로의 보존이 어려울 것 같다는 걱정도 든다. 아무래도 관광지로 개발이 되면 그 주변에 선물 가게 식당 커피숍 같은 상점이 들어오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 지역이 원형대로 보존되기보다는 상술에 의해 운영될 것 같다.   사우디 일정을 끝내고 출애굽의 일정을 따라서 요르단으로 들어가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모세를 불렀던 느보산에도 올라 가보았다  바로 눈 앞에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갈 가나안 땅을 보여 주셨던 그 곳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너는 그곳으로 건너가지 못할 것"이라는 섭섭한 말씀을 주셨던 바로 그 곳이다.   40년간 이스라엘 백성에게 수많은 원망과 삿대질 심지어는 돌팔매질을 당하면서 이곳까지 전심의 힘으로 인도해왔던 모세 아닌가. 꿈에도 그리던 그 가나안 땅에 본인은 들어갈 수 없다는 소리를 들었던 심경이 어떠했을까 하는 깊은 생각을 해봤다.   이번 순례와는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지만 물질 문명의 첨단을 과시하고 있는 두바이를 돌아볼 수 있었던 것도 유익했다.     앞으로 세마포 선교회는 미주 한인 교인들에게 이런 사실을 바로 알리기 위해 대대적인 세미나도 진행할 계획이다. 김승학 장로와 미국의 저명한 학자도 초빙할 예정이다.   동시에 오는 11월에 두 번째 순례단을 보낼 계획이 있다. 목회자들과 관심 있는 교인들이 직접 현장을 한 번 다녀 오기를 강력히 권한다.  목숨 담보 이스라엘 백성 사우디아라비아 지역 미디안 광야

2022.03.21.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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