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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 없는 여정, 결국 자신과 마주하다

스페인 출신 감독 올리베르 락스(Oliver Laxe)의 ‘시라트’는 애초에 서사적 만족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관객은 인물의 목적이나 갈등을 따라가기보다 사막과 밤, 반복되는 전자음의 리듬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이 불편하고 불안정한 리듬은 점차 강한 몰입으로 전환된다. 불완전하고 거친 영화지만, 그 감각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로드 드라마처럼 보이는 이 영화의 중심에는 모로코 사막에서 벌어지는 불법 레이브 파티가 자리한다. 이민자, 국경, 이동의 문제들이 배경으로 스치지만, 영화는 이러한 사회적 맥락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는다. 그 의미들은 종종 모래 위의 발자국처럼 남았다가 이내 사라진다. 구성은 산만하고 줄거리는 최소한에 가깝다. '시라트'는 이야기의 진척보다 감각의 지속을 선택하는 영화다.     스페인에 사는 중년 남성 루이스는 어린 아들 에스테반과 함께 모로코 사막으로 향한다. 목적은 단 하나다. 몇 달 전 흔적도 없이 사라진 딸 마리나를 찾기 위해서다. 그녀는 유럽을 떠돌다 사막 한가운데서 열리는 불법 레이브 파티에 갔다는 이야기만 남긴 채 연락이 끊겼다.     루이스와 에스테반은 사막 외곽에서 레이브 공동체와 조우한다. 밤마다 울려 퍼지는 전자음, 트랜스 상태에 빠진 사람들, 국적과 배경이 뒤섞인 무리 속에서 그들은 마리나의 흔적을 묻고 또 묻는다. 누군가는 그녀를 본 것 같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한다. 정보는 단편적이고 불확실하다.     레이브 행렬은 더 깊은 사막으로 이동한다. 루이스는 딸에 대한 단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하나로 이 위험한 여정에 합류한다. 사막은 점점 가혹해지고 물과 연료는 부족해진다. 공동체 내부의 긴장도 서서히 드러난다. 레이브의 열광은 밤이 지나면 사라지고 낮의 현실은 잔혹하다.     '시라트’의 레이브는 배경이 아니라 ‘상태’다. 반복되는 저음, 맥동하는 비트, 밤과 사막이라는 극단적인 조건은 인물들을 방향 감각 상실 상태로 몰아넣는다. 여정 도중 예기치 못한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면서 레이브에 모여든 집단은 급격히 붕괴한다. 이 사건은 영화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는 충격적인 전환점이 된다. 이들은 고립된 채 사막을 건너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루이스와 에스테반 역시 극한의 조건 속에서도 계속 전진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딸을 찾겠다는 목적은 점점 희미해지고 여정은 생존 그 자체가 된다. 희망은 사막의 모진 바람에 점점 말라간다. 결국 루이스는 모든 것을 잃은 상태로 사막 한가운데 남겨진다.     영화는 마리나의 행방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여정은 완결되지 않고, 남는 것은 침묵과 공허, 그리고 끝내 건너지 못한 다리뿐이다.     '시라트’는 친절한 영화가 아니다. 상징은 설명되지 않고, 인물의 심리는 해설되지 않으며, 서사는 자주 단절된다. 그러나 영화가 의미를 비워두는 이유는 공허를 선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시라트’는 의미를 제시하지 않음으로써, 의미를 찾으려는 관객의 태도 자체를 시험한다.     이 작품은 매우 현실적이고 문자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은유적이고 시적인 층위를 지닌다. 육체적으로 사막을 횡단하는 여정은 곧 정신적 사막을 통과하는 고통스러운 심리의 과정과 겹쳐진다.     레이브는 전통적인 종교 의식과 구조적으로 닮았다. 반복되는 리듬, 밤이라는 시간, 집단적 몰입, 개인 정체성의 희석. 차이가 있다면 초월의 주체가 신이 아니라 음악과 신체라는 점이다. '시라트'의 인물들은 신념을 고백하지 않는다. 대신 비트에 몸을 맡기고, 자신을 잊고, 타인과 구분되지 않는 상태에 도달하려 한다. 레이브는 쾌락의 장이 아니라 초월을 시도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그러나 영화는 이 초월이 얼마나 불안정한지를 반복해서 보여준다. 음악이 멈추는 순간 공동체는 즉시 해체된다. 낮이 오면 사람들은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진다. 레이브는 지속 가능한 세계가 아니라 잠시 허락되는 상태에 불과하다. ‘시라트’는 이 일시성을 미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레이빙 이후의 침묵과 공허를 길게 붙든다. 영화가 집요하게 응시하는 것은 열광의 순간이 아니라 그 이후에 남겨진 잔여다.     영화가 만들어내는 정서는 단순하지 않다. 레이브 장면에서 느껴지는 기쁨과 해방감은 곧 상실감과 슬픔으로 전환된다. 이 감정들은 명확히 구분되지 않은 채 뒤섞이며, 불안한 상태를 형성한다.     그 결과 '시라트'는 이상한 꿈처럼 관객에게 남는다. 장면의 세부를 또렷이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몸의 감각은 분명하게 각인된다. 저음의 윙윙거림과 모래의 질감, 지옥의 아래와 천국의 한 조각 사이에서 면도날 위를 걷는 듯한 감각. 이 영화는 이해되기보다 체험되는 방식으로 관객에게 도달한다.     사막이라는 공간은 이 감각을 증폭시킨다. 물도 없고 피할 곳도 없는 땅에서 느껴지는 파멸감은 인물의 선택보다 환경에서 비롯된다. 광활한 풍경은 인간을 작고 무력하게 만든다. 인물들은 자연의 변덕과 자신의 근시안적인 판단에 쉽게 희생된다. 이때 사막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영화의 윤리적 조건이 된다. 레이브의 집단적 열광조차 이 공간 앞에서는 덧없는 것으로 전락한다.     후반부의 충격적인 전환은 이 영화의 성격을 분명히 한다. 이 반전은 서사를 정리하지 않고 오히려 더 큰 균열을 남긴다. 많은 관객은 결말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시라트'는 만족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루이스와 에스테반의 고난에 찬 여정은 완결되지 않는다. 그 체험 자체로 충분한 밀도를 지닌다. 비전문 배우들을 포함한 출연진의 연기는 이 위험한 구조를 끝까지 지탱한다.     '시라트’는 완결된 영화라기보다 결핍을 드러내는 영화다. 날것 그대로의 카타르시스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며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통과하고 있는가.     영화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목적지나 건너야 할 다리를 보여주기보다, 불안정한 경계 위에 머무는 상태를 지속시킨다. 그 끝에 남는 것은 해석이 아니라 신체에 각인된 감각이다. 이 공허함은 실패의 흔적이 아니라 우리가 서 있는 자리, 다시 말해 자기 자신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음을 인식하게 하는 감각에 가깝다.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았고, 제98회 아카데미상 국제장편영화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김정 영화 평론가 [email protected]목적지 여정 모로코 사막 정신적 사막 사막 외곽

2026.02.04.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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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컬처에 빠지다] K팝은 다리, 한국이 목적지

K팝과 K드라마는 한국 역사상 어떤 것보다도 국제적인 관심을 끌어모았다. 미국과 전 세계 학교에서는 수천 개의 K팝 동아리가 생겨났으며, 학생들은 좋아하는 뮤직비디오의 가사를 부르고 안무를 연습한다. 성인과 학생들은 K드라마 팬클럽을 만들어 배우와 스토리에 대해 토론하고, 좋아하는 드라마의 결말을 추측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로 인해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며, 한국어 수업 등록자 수가 급증했다. 언어 교육 기관인 ‘라이브 더 랭귀지(Live the Language)’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어는 미국인들이 두 번째로 많이 검색하는 언어로 나타났다.     나는 뉴욕의 기차와 버스에서 한국 관광객들과 한국어로 대화하며 연습하는 것을 좋아한다. 종종 그들에게 농담으로 경고하곤 한다. 뉴욕뿐 아니라 미국 전역에는 한국어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들의 대화가 그렇게 비밀스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관광은 양방향으로 확대되고 있다. K드라마는 관광객들로 하여금 자신이 좋아하는 장면이 촬영된 장소를 직접 방문하고, 아이돌의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한국을 찾게 만들었다. 그들은 한국이라는 땅을 방문하고 싶어하며, K드라마는 그들을 그곳으로 데려가는 다리가 되고 있다.   그러나 다리는 다리일 뿐이다. 다리가 목적지는 아니다. K드라마는 높은 제작 수준과 뛰어난 배우들의 연기로 인해 더 고급 예술인 영화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한국 영화가 국제적으로 최고 수준의 상을 받게 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K팝은 다르다. 대부분의 팝 음악은 진지하거나 영속적인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전 세계적으로 팝 음악은 대개 산업 프로듀서들에 의해 제작되고, 대체 가능한 가수들이 상품으로 여겨지며, 청소년과 어린이를 주요 타깃으로 한다. 이들은 결국 성인이 되어 더 성숙한 취향을 가지게 된다.   이제 질문을 던져보자. 이 아이들이 단순한 가사와 반복적인 비트로 이루어진 음악에 싫증을 느끼고 문학의 깊이 있는 언어로 관심을 돌릴 때, K팝 다리는 그들을 어디로 데려갈 것인가?   K드라마는 가벼운 TV 오락물에서 한국의 진지한 영화로 시청자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그러나 K팝은 청취자를 한국의 고급 음악 예술로 끌어들이는 데는 아직 성공하진 못한 듯하다.   어쩌면 이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닐 것이다. 팝 음악이 본질적으로 갖는 특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한 가지를 시도해 보자. 한인 친구들에게 진지한 음악 아티스트의 이름을 물어보라. 그들은 여러 유럽 클래식 작곡가의 이름을 말할 것이다. 아마도 몇몇은 그들이 좋아하는 뛰어난 미국 재즈 뮤지션의 이름도 언급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판소리의 아름답고 어려운 예술을 수행하는 한국 아티스트나, 재능 있는 한국 현대 작곡가, 혹은 한국 뮤지컬의 창작자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생각해보라. K드라마가 다리이고 한국이 목적지라면, 반짝이고 강력한 K팝 다리는 어디로 이어지는가.     우리는 K팝 다리를 통해 사람들이 한국 음악 예술의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가도록 돕고 있는가. 아니면 그들이 K팝 다리의 끝에서 방향을 바꾸어 유럽과 미국 음악의 더 깊은 의미를 찾아 떠나게 방치하고 있는가.   나는 전 세계 모든 장르의 음악을 사랑한다. 때로는 진부한 가사와 단조로운 음악으로 가득 찬 팝송조차 즐긴다. 그러나 더 높은 목적을 가진 음악, 인간의 영혼을 탐구하고 상상의 경계를 넓히는 음악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한국에는 이런 고양된 음악이 넘쳐난다.   K팝이라는 흥미진진한 다리를 건너오는 사람들을 한국이라는 위대한 땅의 영혼과 정신의 아름다움으로 따뜻하게 맞이하자. 로버트 털리 / 코리안 아트 소사이어티 회장K컬처에 빠지다 목적지 다리 한국 음악 한국어 수업 한국 관광객들

2025.01.27.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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