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전체

최신기사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눈부셨던 봄빛도 스러집니다

바람 불면 풀잎도 눕겠지요 / 눈부셨던 봄빛도 스러집니다 / 쑥부쟁이 하얀 꽃 밀랍 되어 / 가벼워진 황홀로 맺혀 있을 겁니다 / 꺼져가는 당신을 안았지요 / 기댄 얼굴이 깃털 같아서 / 들썩이는 심장 소리에 날아갈까 숨도 쉬지 못했어요 // 마를 게 없는 남루한 등뼈를 손바닥에 각인시키며 / 빈 껍질로 지나가 버릴 것을 알면서도 / 사랑한다는 말을 못 했지요 / 마른 가지의 잎이 덧없음을 알았을까요 // 한 가닥 감정이 붉어져 / 귓가에 흰 눈이 소복하게 앉았던 날 / 힘없는 눈빛이 다녀오라는 말 대신 / 진통의 시간을 침묵으로 쏟으셨지요 / 천근의 눈꺼풀을 감지 못하셨지요 / 열 갈래 흐트러진 소음으로 감아 내렸지요 // 의연하지 못한 슬픔이 연극처럼 막을 내리고 / 철없던 시절은 돌아올 수 없는 계절을 보내고 / 회한의 모퉁이마다 덧없음이 바람으로 섞여 왔다가 / 바람처럼 지나간다는 걸 // 그 아득함으로 그때가 되면 / 나도 바람 따라가겠지요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언젠가는 마지막을 대하게 될 것입니다. 먼저 와서 먼저 가는 것이 아니라 일정 없이 늦게 와도 먼저 떠날 수 있습니다. 어떤 생명은 모질게 긴 세월을 이 땅에 뿌리 내리며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 같이 우리를 지으신 이 앞에 서게 될 날이 있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이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들조차도 예외 없이 돌아가는 길에 서게 될 것입니다.   선물이라는 책을 만든 저자 세 명이 Ross Hill 묘지를 찾아갑니다.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지만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찾아갑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따뜻한 손 잡음을 경험합니다. 나는 당신에게 또 당신은 나에게 무언의 이야기를 가슴으로 나눕니다. 우리는 한낮의 오후에 세 그루 나무처럼 서 있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묘지 앞에 서 있는 우리의 침묵은 수십 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언제 어디서인가 맞닿은 풍경이 우리의 머릿속을 영화의 장면처럼 지나갑니다.     우리는 언제 무엇이 되어 어떻게 만날 것인가의 질문 앞에 머리가 숙여집니다. 한낮은 더위도 우리의 발걸음을 떼어 놓지 못합니다. 한동안 먼저 가신 당신들과 아직 살아서 종착지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 우리들의 대화는 끝이 없습니다. 마치 작은 간이역을 통과하는 열차 속 사람들처럼 다음 역을 기대하며 높은 등받이에 몸을 기댑니다. 차창 밖으로 내려놓은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점점 멀어지는 사람들에게 작별을 고합니다. 동에서 서로 넘어가는 태양을 한동안 붙들어 놉니다. 점점 길어지는 그림자를 밟으며 우리는 돌아옵니다. 끝도 없이 우리는 작은 묘비에 써있는 이름들을 불러주며 지나갑니다. 어딘가에 세워질 내 묘비 하나씩을 떠 올리며 묘지와 세워질 묘지의 긴 강을 건너갑니다.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거부할 수 없는 그 길을 갑니다.   눈부셨던 봄빛도 스러집니다. 찬란한 윤슬의 반짝임도 멀어져 갑니다. 겨울의 찬바람도 윙윙 귓가를 지나갑니다. 슬픔도 사라지고, 웃음도 저 언덕을 넘어 숲으로 감추입니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 하고 당신을 보냈습니다. 회한의 모퉁이마다 덧없음이 바람으로 섞여왔다가 바람처럼 지나간다는 걸. 아득한 그때가 되면 우리 모두도 바람 따라간다는 걸. 연극은 막을 내리고 텅 빈 무대엔 남겨진 말들이 살아나 가벼워진 황홀로 맺혀 있을 겁니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묘비 하나씩 심장 소리 시인 화가

2025.08.18. 14:46

썸네일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