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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한국에서 태어난 ‘세계 문화’

“K팝은 국뽕인가” 이는 한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반복되어 온 질문이다. 그러나 이 물음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이유는 K팝을 바라보는 해석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특히 한국 언론은 K팝이 해외에서 거둔 성취를 전할 때 '세계가 인정했다', '국격 상승', 'K컬처의 위상'과 같은 국가주의적 수사를 즐겨 사용해왔다. 이러한 표현들은 K팝의 성취를 곧바로 하나의 국가적 사건으로 환원시키며 문화적 성과보다 국가적 자부심이라는 감정적 가치를 우선시한다.   그러나 이 같은 해석은 K팝이 어디에서 출발해 어디로 향하는지 그 복잡한 작동 원리를 설명하기에는 지나치게 단순하다. K팝은 특정 국가의 정체성을 대변하거나 국가주의적 감정을 고취하기 위해 만들어진 문화가 아니다. 오히려 세계가 주도적으로 소비하고 해석하고 재배열하며 성장시킨 문화적 생태계에 가깝다. 오늘의 K팝은 한국의 문화가 아니라 한국에서 태어난 세계 문화다.   K팝은 애초부터 국내용으로 기획된 콘텐츠가 아니다. 아이돌의 공식 데뷔 이전 단계에서 기획사들은 이미 글로벌 팬덤을 상정해 음악의 구조, 비주얼 콘셉트, 퍼포먼스 디자인을 설계한다. 한국어와 영어가 뒤섞인 가사, 다국적 멤버 구성, 월드 투어 중심의 활동, 서사적 구조를 가진 뮤직비디오 등 이 모든 것이 K팝이 처음부터 '세계를 향한 문화 언어'로 만들어졌음을 증명한다. 이는 국가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국경을 넘나드는 감각과 하이브리드한 미학이 K팝의 본질이다.   K팝의 산업 구조는 이러한 성격을 더욱 명확하게 드러낸다. 해외 시장을 고려한 음악 제작 방식, 글로벌 팬덤 운영 시스템, SNS에 최적화된 확산 전략, 국가를 초월해 작동하는 팬덤 네트워크는 K팝을 단순한 음악 산업이 아닌 글로벌 유통 시스템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K팝은 이제 한국 대중음악의 수출품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문화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뜻한다.   국뽕은 감정적 국가주의의 산물이며, K팝은 문화적 글로벌리즘의 결과물이다. 이를 동일한 범주 안에서 논하는 것은 본질을 흐리는 단순화에 불과하다. 마치 복잡한 영화 서사를 홍보영상처럼 축소해버리는 오류와 다르지 않다.   이러한 맥락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다. 이 작품은 K팝의 미학과 한국적 문화를 대대적으로 활용하지만, 정작 제작국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고 제작사 역시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이다. 이 영화가 골든글로브 또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 성과를 거두더라도 그 영광은 미국 제작사 몫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골든글로브 애니메이션 영화 부문 후보에 오른 것 역시 한국 영화산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K팝이 가진 세계관적 매력을 글로벌 제작사가 새롭게 해석한 결과일 뿐이다. 이 사실은 K팝이 더 이상 ‘한국에서만 이해되는 문화’가 아니라, 글로벌 창작 시스템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문화적 자원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지난 5월 공개 직후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부문 최다 시청 기록을 경신했고, 극 중 가상 걸그룹 '헌트릭스'가 부르는 OST '골든(Golden)'은 빌보드 차트에 진입하며 실제 음악 팬덤을 형성했다. 허구의 캐릭터가 현실의 음악 시장으로 넘어와 실질적인 소비를 이끌어내는 이 기묘하고도 매혹적인 풍경은 K팝의 세계관이 산업 전반과 연결돼 어디까지 확장돼 왔는지를 가늠케 한다.   이제 K팝은 음악을 넘어 서사·캐릭터·퍼포먼스·브랜드·팬덤이 결합한 복합적 지식재산 체계로 움직인다. K팝의 세계관 확장은 단순한 팬들의 열광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글로벌 콘텐츠 경쟁의 한복판, 즉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와 디즈니의 세계관 전쟁, 스트리밍 플랫폼의 서사 확장 전략과 같은 시대적 조건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흐름이다. K팝은 이 변화에 가장 빠르게 적응한 장르 중 하나다.   아이돌 콘셉트와 의상, 뮤직비디오 속 상징과 이야기 조각들은 더 이상 단발적 이미지가 아니라 팬덤이 읽고 해석하며 재조립할 수 있는 거대한 세계관의 구성 요소로 작용한다.     K팝 팬덤 역시 단순한 소비자에서 벗어나 능동적으로 세계관을 생산하는 담론 공동체로 진화했다. 음악과 영상, 콘셉트 포토 속 숨은 서사를 찾아내고 서로의 해석을 교환하며 새로운 세계관을 창조하는 과정은 K팝을 음악 산업의 영역에서 문화적 서사 생산 체계로 전환시킨다.   세계는 K팝을 한국적 음악으로만 보지 않는다. 세계가 K팝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것이 한국적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K팝은 서양의 팝·힙합·EDM·R&B, 일본식 아이돌 시스템, 한국적 정서, 미국식 프로덕션이 중층적으로 결합된 문화적 하이브리드다. 이 다층적 구조는 K팝을 특정 국적의 음악이 아니라, 어디서든 번역되고 변주될 수 있는 보편적 문화 언어로 만든다. K팝의 세계적 확장은 이처럼 끊임없이 재구성되고 재생산되는 유연성의 결과다.   K팝을 국뽕으로 축소하는 시선은 K팝의 세계적 확장성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협소한 시각이다. K팝은 이미 세계 곳곳에서 다시 번역되고 해석되며 재조립되고 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이러한 흐름, 즉 문화의 이동, 세계관의 확장, 팬덤의 재배열을 영화적 이미지로 응축해 그 확장을 가장 영화적으로 구현한 사례다.   이즈음 K팝을 바라보는 미주 한인 사회의 시각 역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K팝이 본국에서는 때때로 국뽕이라는 담론 속에서 소비되는 반면, 미주 한인들에게 K팝은 정체성을 지탱하고 가시화하는 상징으로 기능한다. 특히 다문화 환경 속에서 성장하는 한인 2세대에게 K팝은 주변화되기 쉬운 자신의 존재감을 회복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문화적 매개체다. 동일한 K팝이 서로 다른 사회적 맥락 속에서 전혀 상반된 정서로 번역되는 지점은 매우 흥미롭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특정한 감정으로 이 문화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자리에서 K팝이 어떤 의미로 소비되는지 섬세하게 관찰하는 일일 것이다. 그것이 K팝이 세계 속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가장 정확히 이해하는 방식이다. 김정 영화 평론가 [email protected]세계 문화 문화적 성과 문화 언어 문화적 생태계

2025.12.24.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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