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조언보다 중요한 것
누군가 고민을 상담해 오면 우리는 당장 효과를 볼 수 있는 명쾌한 조언을 해야만 할 것 같은 강박을 느끼곤 한다. 특히 선배나 지도자, 성직자의 위치에 있다면 강박의 정도는 더할 것이다. 가깝게 지내는 청년 교도 형제가 한 집에 살고 있다. 20대 후반이고, 형은 직장에, 동생은 대학원에 다닌다. 한 집에 살게 되면 갈등은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대치가 길어지는 것 같아 걱정이다. ‘모두가 은혜이니, 서로를 은혜로 생각해라’ ‘모두가 부처이니, 서로를 부처님 대하듯이 존경해라’ 교무로서 경전 내용을 전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고, 진리적으로도 틀린 말이 아니다. 문제는 과연 이 말을 듣고 ‘아 그렇지, 바로 화해해야지’ 이럴까. 감정이 상해 있는 상황에서 내용의 옳고 그름은 큰 역할을 하지 못할 것 같다. 경전에 “스승과 제자의 정과 의리가 부자(父子)같이 무간하여야 가르치고 배우는 데에 막힘이 없고, 동료 사이의 정과 의리가 형제같이 친밀하여야 충고와 권장을 주저하지 아니하나니, 그러한 뒤에야 정이 통하고 심법(心法)이 전해질 수 있다.”라고 하셨다. 서로 윤기(倫氣)가 흐르고 정과 의리가 쌓인 후에야 비로소 법이 전해질 수 있다는 말이다. 정서적 친밀감과 신뢰가 부족한 상황에서 성현의 말씀은 서자서 아자아(書自書 我自我·글은 글이고 나는 나)가 되기 십상이다. 지금 필자가 해야 할 일은 섣불리 경전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일일 것이다. 예비 성직자 시절, 간혹 후배들이 고민을 상담한 적이 있다. 속 시원한 조언을 해 줄 만큼 공부가 깊지 못한 것이 주된 이유였지만, 조언보다는 주로 듣는 편이었다. 교무가 된 지금 생각해 봐도, 첫째, 복잡다단한 인간사에 문제를 단박에 해결할 만한 시원한 조언이 가능하기는 한 걸까? 더구나 개인의 물리적 상황, 가치관 등이 제각각인 상황에서. 둘째, 상담 과정에서 고민의 내용이 구체화되어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가는 경우도 적지 않고, 이미 답을 알고 있는 경우도 의외로 많다. 조언을 구하러 왔지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해와 위로가 목적인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후배들이 깊이 있는 조언을 해주는 선배들보다 필자를 조금 더 찾았던 이유가 아닐까 한다. 고민을 하소연하는 사람은 감정적으로 격해져 있다 보니 평소에 비해 객관적 입장에서 사안을 바라보기가 쉽지 않다. 한 걸음 떨어져서 사안을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상담자의 편견과 집착 역시 쉽게 눈에 들어온다. 이런 상황에서 바로 이성적, 논리적으로 상담자의 과실을 따지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 상대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 경청과 공감, 위로 후 시비 이해와 선후 본말을 따지는 것이 순서에 맞을 것이다. 일단 만나서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각자의 입장을 따뜻하게 들어주려고 한다. 성현들의 지혜가 담긴 경전의 말씀이 무용하다는 말이 아니다. 먼저 정과 의리가 통한 이후에야 비로소 진리와 법문은 본래 목적을 달할 수 있다고 믿는다. [email protected] 양은철 교무 / Won Meditation Center삶의 향기 조언 물리적 상황 지도자 성직자 공감 위로
2026.03.02. 1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