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업] 손주들과 소울푸드 김치
지난달 봄방학이라고 스페인과 뉴멕시코주에 사는 두 딸 가족 8명이 집에 다니러 왔다. 손주들은 12살부터 사춘기인 16살까지 다양하다. 로스앤젤레스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친 딸들은 대학 시절부터 우리를 떠났다. 대학 졸업 후 잠시 귀향했다가 대학원과 수련의, 박사 과정을 타지에서 하면서 또 집을 떠나야 했다. 그리고 취업과 결혼 후에는 아이들의 교육과 경제적 편안함 등을 이유로 로스앤젤레스 대신 다른 주와 타국에 정착했다. 그런 딸들이 가족과 함께 고향을 찾아온 것이다. 손주들의 방학 기간이 다르다 보니, 사촌끼리 함께 지낼 수 있는 날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다. 미국과 유럽의 봄방학은 부활절을 전후해 시작한다. 씨앗을 뿌리는 농번기에 일손을 보태기 위해 봄방학이 생겼다고 배웠던 것 같은데, 이는 근거가 없다고 한다. 미국 대학의 봄방학 문화는 1930년대 뉴욕주 북쪽에 있는 콜게이트 대학 수영팀이 플로리다주 포트 라우더데일에서 겨울 훈련을 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고 한다. 그 후 1960년대에 미시간 주립대학의 글렌돈스와토우트 영문학 교수가 영문학과 학생들과 함께 봄방학을 보냈던 경험을 책으로 출간하면서 ‘봄방학’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그 책 제목이 ‘보이들은 어디 있어요(Where the Boys Are)?’였고 나중에 영화로도 만들어져 인기를 끌었다. 그 후 봄방학은 학생들에게 휴식을 주고 즐겁고 건전한 사교활동을 하는 기간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사반세기 후인 1990년대에 흑인 학생들 중심의 봄방학 이벤트가 등장했다. 거리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길거리 파티’로 잘 알려진 남부의 힙-합 파티인 프리크닉(Freaknik)이다. 손주들은 혼혈이다. 현대식 표현을 빌리자면 다른 인종(multi-race)의 남녀가 만나 이룬 다문화(mixed-culture) 가정에서 태어나 자라고 있다. 한국 혈통인 엄마와 인종(race), 민족(ethnicity) 또 국가(nation)가 다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났다. 다행히 아이들은 자신에게 동양적인 것, 한국적인 것들이 있는 것을 좋아하고, 자랑스러워한다. 내가 미국에 첫발을 내디뎠던 반세기 전에는 나를 보고 얼굴색이 노랗다고, 눈·코가 작고 광대뼈가 높은 몽골리안 같은 모습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었다. 그래서 편치 않았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세상은 변했다. 다민족 국가인 미국의 혼혈 인구 비율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2010년 300만명이었던 혼혈인구는 2020년 3300만 명으로 급증했다. 미국 전체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숫자다. 실제 DNA 검사를 해 보면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다 보니 언어도, 음식 종류도 많다.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교육구인 LA통합교육구(LAUSD)의 학생 중에는 집에서 영어 대신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언어 종류가 90가지 이상이라고 한다. 내가 손주들에게 가르칠 만한 한국적인 것은 무엇이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도 그리 많지가 않다. 다만 기회가 되는대로 한국의 역사와 문화, 어른을 존중하는 태도, 생활 습관 등을 알려 줄 것이다. 교육이라는 방식이 아니라 그저 아이들이 보고 배우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 집에 오면 한국 음식 맛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아이들에게 한국적인 것을 알려주는 민간대사의 역할이 내가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은 흰밥과 된장찌개, ‘할머니표 김치’를 원했다. 공부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나 잠시 쉴 수 있는 봄방학에 우리 집에 모두 모여 북적대는 것이 기뻤다. 우리 집이 그들의 봄방학 중심지가 될 수 있어서 감사했다. 이번 봄방학은 영화나 프리크닉 식과는 다른 가족 중심의 휴식이었다. 그리고 음식을 중심으로 하는 봄방학에 김치가 한가운데에 있었다. 특히 아이들은 ‘할머니표 김치’를 좋아했다. 차세대 한국인의 소울푸드 역시 김치와 밥이 중심이 될 것이다. 손주들과의 다음 김치 파티를 기대하면서 김치에 대해 더 연구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니카 류 / 종양방사선학 전문의·한국어진흥재단 명예 이사장오픈 업 소울푸드 손주 봄방학 문화 봄방학 이벤트 미시간 주립대학
2026.05.13. 18: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