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는 다시 중대한 시험대에 서 있다. 정권 교체는 민주주의의 자연스러운 과정이지만, 이번 국면은 단순한 권력 이동을 넘어선다. 대통령 개인의 사법 리스크와 권력분립의 긴장이 동시에 부각된 상황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도 이례적이다. 이는 한 정치인의 운명을 넘어, 민주주의 제도의 내구성을 묻는 역사적 질문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은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를 유지해왔다. 대통령이라도 법과 제도 위에 설 수 없다는 원칙은 민주화의 핵심 성과였다. 그러나 한국의 대통령제는 구조적으로 긴장을 내포하고 있다. 강력한 행정권, 단임제의 시간적 제약, 국회 권력 구도의 변화, 극심한 정치적 양극화는 충돌을 암시하고 있다. 대통령과 국회, 대통령과 사법부의 갈등은 반복되어온 정치적 패턴이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경우 그 긴장은 더욱 직접적이다. 대선 이전부터 진행 중이던 형사 사건들이 존재했고, 일부는 상급심 판단을 남겨두고 있었다. 대통령 취임 이후 재판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의 문제는 곧 헌법 해석과 권력분립의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의 형사소추를 제한한다. 그러나 ‘소추’의 범위와 이미 기소된 사건의 재판 지속 가능 여부를 두고 해석이 엇갈린다. 이는 단순한 법리 논쟁이 아니다. 헌법이 정치적 압력 속에서도 독립적으로 작동하는지, 사법부가 권력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지를 시험하는 중대 상황이다. 사법적 판단이 정치적 해석과 충돌할 때 사회적 분열이 얼마나 깊어질 수 있는지도 경험했다. 이재명 정부에서 사법부는 두 요구 사이에 놓여 있다. 하나는 법과 원칙에 따른 엄정한 판단이고, 다른 하나는 국정 안정이라는 현실적 고려다. 후자를 의식한다는 인상이 형성되면 독립성은 의심받는다. 반대로 원칙을 강조할수록 정치적 중립성 논란이 뒤따를 수 있다. 이 균형을 지켜내는 일이 사법부의 책무다. 견제와 균형은 민주주의의 핵심 장치다. 일방적 입법이나 극단적 대치는 협치의 정신을 훼손할 위험이 크다. 이재명 대통령을 둘러싼 논쟁은 양분되어 있다. 지지층은 정치적 수사라고 주장하고, 반대 측은 법 앞의 평등을 강조한다. 이 대립은 단순한 사실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사법 절차에 대한 사회적 신뢰의 문제다. 재판 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하다면 결과와 무관하게 제도에 대한 신뢰는 유지될 수 있다. 그러나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의심이 확산하면 판결 이후에도 갈등은 이어질 것이다. 민주주의의 정당성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서 나온다. 한인 사회는 한국 정치의 직접적인 영향은 받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고국과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지 않은가. 특히 미국 사회가 강조하는 법치주의와 권력분립의 가치에 비추어 볼 때, 한국의 현재 상황은 민주주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척도로 읽힐 수밖에 없다. 해외 동포의 시각에서 중요한 것은 특정 인물의 정치적 성패가 아니다. 대통령이 누구든 법의 적용이 일관되고 권력분립이 유지된다면 민주주의는 지속된다. 반대로 제도가 흔들리면 그 파장은 국가 신뢰도 문제로 확산하는 것이 자명하다. 이번 사법 리스크가 헌정 질서 안에서 안정적으로 정리된다면 1987년 체제의 회복력을 입증하는 사례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제도적 신뢰가 크게 훼손된다면 또 하나의 깊은 상처로 기록될 수 있다. 정치는 갈등을 수반하지만 민주주의는 그 갈등을 제도 안에서 해결하는 체제다. 대통령의 사법 문제 역시 헌법과 제도의 작동 여부를 가늠하는 시험이다. 권력이 법 위에 서지 않는다는 원칙, 그리고 법이 정치 도구로 전락하지 않도록 지키는 균형이 지금 요구된다. 한국 현대사는 여러 위기를 넘어왔다. 감정이 아닌 원칙, 진영이 아닌 제도에 대한 신뢰가 중심이 될 때 민주주의는 유지된다. 이재명 정부와 사법부, 국회의 긴장은 그 시험의 한 장면이다. 역사는 이 순간을 기록하고 있다. 훗날 이 시기가 제도의 성숙을 증명한 시기로 남을지, 신뢰를 흔든 사례로 남을지는 지금 그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동포사회가 바라는 것은 하나다. 어떤 정권 아래에서도 대한민국의 법치와 권력분립이라는 민주주의의 뼈대가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동포사회가 고국에 바라는 분명한 메시지다. 박철웅 / 일사회 회장발언대 이재명 정부 이재명 대통령 민주주의 제도 국회 대통령
2026.02.22. 19:09
어느 국가, 어느 사회이건 시스템은 망가지게 마련이다. 체코 프라하의 한 아파트 소유주들의 HOA 미팅은 사회주의 나라에서 고생(?)하는 민주주의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실험장이다. 인간이 지닌 그 무한의 소유욕을 영화는 ‘휴먼 코미디’로 표현한다. 그 자신 코미디언이기도 한 체코의 지리 하벨카의 연출 데뷔작 ‘오너스’는 체코 시민들의 재산에 대한 소유욕을 소재로 민주주의 제도의 맹점과 자본주의가 지닌 비인간적 속성을 풍자적으로 파헤친다. 아파트 소유주 모임 회장 자흐라드코바 부인이 HAO 미팅을 소집한다. 오래된 건물의 수리를 논의하고 안건은 투표로 결정하기 위해서다. 아프리카 학생 6명에게 아파트를 렌트해 주고 있는 루비코바 부인은 조례의 세부 사항을 일일이 외우다시피 한다. 참석자 수를 세는 간단한 절차조차 걸고 넘어가는 피곤한 윈칙주의자.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아 자신들을 사업가로 칭하는 체르마크 형제, 갓 이사 온 임신부와 그녀의 남편, 병원에 입원한 어머니 대신 한 표 행사를 위해 참석한 스벡 씨, 투자 가치를 높이기 위해 다락방 지을 공간을 더 확보하려는 니트란스키 씨, 모든 게 귀찮아 절차 진행에 무조건 반대만 하는 방해꾼 쿠밧 씨, 회의 내내 졸고 있는 재무담당 소콜 교수, 소련의 사회주의 시절이 더 좋았다고 불평만 늘어놓는 아파트 3채 소유주 밀로스 씨 등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소유주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려는 민주주의적 절차는 간데없고 인종과 성적 차별 발언이 난무하며 서로의 감정 대립은 극에 달한다. 결국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다. 방해꾼, 멍청이, 또는 사기꾼 한 명의 권리만으로도 모든 게 중단된다. 민주주의는 이루기도 어렵지만 유지하기는 더 어렵다. 규칙은 시민 사회 질서 유지의 최소의 도구이다. 그러나 결정을 방해하는 것은 오히려 규칙이다. 아파트 3채를 소유한 자의 3표 행사가 모든 걸 교착 상태로 만들어 버린다. 미국의 망가진 선거인단 제도에 대한 맹렬한 풍자로 읽힌다. 하벨카 감독의 알레고리는 간단명료하다. 3막 연극처럼 구성된 영화, 행동하는 민주주의를 냉소적으로 비판하는 다크 코미디 ‘오너스’를 통해 그는 민주주의는 한마디로 ‘개판’이라고 말한다. 합의에 도달하기 전, 각자의 이기주의에 밀려 건물이 희생될 상황까지 이른다. 의로운 자들의 연대는 독단적인 한 사람의 심술궂은 방해로 무너져 버리고 만다. 김정 영화평론가 ckkim22@gmailcom미국 민주주의 민주주의적 절차 아파트 소유주들 민주주의 제도
2023.08.25. 17: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