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 가까이에 사는 지인이 점심시간에 맞추어 하얀 쌀밥에 시금치나물과 무나물을 보자기에 싸들고 왔다. 밥에서 김이 나오고 시금치나물과 무나물 위에는 깨소금이 뿌려져 있다. 지인이 반찬 위에 뿌려진 깨소금이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묻는다. 깨소금의 뜻? 뭐 깨소금에는 소금이 안 들어가지만 풍미를 돋우지 않나. 요즈음에는 소금 들어간 깨소금도 있을까. 나는 빈약한 지식을 주절주절 읊었다. 내가 답다운 답을 내놓지 못하자 지인은 시금치나물을 가리켰다. 그리고 반찬에 뿌려진 깨소금은 네가 반찬에 처음 젓가락을 대는 것을 뜻한다고 했다. 나를 위해 지금 막 만든 음식이고 이렇게 톡톡 뿌려 놓으니까 막 완성한 것 같고 먹는 사람에게 보여주는 요리한 사람의 마음. 아 대접받는 거네. 어쩐지 깨를 뿌린 반찬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더라고. 곰곰 따져보면 막 조리한 온기 있는 음식에 뿌려진 깨소금은 쉽게 눅눅해지거나 향을 잃기 때문에 음식을 내기 직전에 뿌려야 그 신선한 맛과 향이 온전히 지켜진다. 그래야 음식을 만든 사람과 그 음식을 먹는 사람 사이를 향긋하고 풍미 있게 이어준다. 그렇게 푸릇한 시금치 위에 별처럼 뿌려진 깨소금을 떠올려 본다. 우선 깨소금을 뿌린 반찬이 시야에 들어오면 먹기도 전에 기분이 좋아진다. 설령 상 위에 한두 가지 반찬뿐이라고 한들 정갈하게 느껴진다. 젓가락을 들어 음식을 가져오면 혀끝에 순간 음식의 풍미가 입속에서 터지듯 퍼진다. 깨소금을 씹는 오독한 식감은 또 어떤가. 깨소금은 시금치 무침이라는 큰 그림을 완성하는 마음의 마지막 붓 터치가 아닐까 싶다. 깨소금은 미리 만들어둔 반찬을 대충 내어주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건강과 행복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맛이 살아있는 최상의 상태로 차려낸 정성의 표현이다. 주인공이야 당연히 시금치지만 깨소금은 시각, 향, 식감으로 음식의 감각적인 요소를 끌어올려 원재료의 맛이 잘 전해지도록 돕는다. 그런 의미에서 요리한 사람의 마음이 고스란히 먹는 이에게 가 닿도록 돕는 깨소금이야말로 사람과 사람 사이 필수 불가결의 조연이다. 깨소금에 담겨 전해지는 감성이 풍부해서 좋다. 요리에서 원재료가 가진 맛처럼 사람의 본성이 깨소금을 타고 쏟아진다. 우리 가게 손님 무하마드는 가나에서 이민을 왔다. 20년 동안 어린 딸과 함께 살았다. 아파트가 좁은지 여름옷을 가져오면 다음해 여름에 찾아간다. 겨울옷도 마찬가지다. 궁색해 보이지만 가나가 프랑스 지배를 받아서인지 옷 모두가 프랑스에서 만든 옷이다. 집에서 세탁해도 아무렇지 않을 옷을 가게에 맡기는 이유는 세탁 방법을 몰라서일 것이다. 그의 꼬마 딸이 커서 뉴욕으로 이사했다. 항상 어깨가 축 늘어져 피곤해 보이지만 성실하게 살아가는 그가 조금은 측은해 보이기도 했다. 몇 주 전 바지 두 개를 가져와 급하게 세탁을 부탁했다. 웬일인지 궁금했는데 너무 좋아 싱글벙글하면서 이야기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데이트한다고 수줍어하며 웃는다. 얼마나 좋은 일인가. 젊은 청춘 혼자 외롭게 딸을 키우고 이제는 새로운 삶의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 같아 나도 기뻐해 주었다. 바지를 찾으러 왔다. 바지 주머니에 돈을 조금 넣어 아무 말 하지 않고 내주었다. 바지 위에 깨소금을 함박눈 내리듯 쏟아붓고 소낙비 내리듯 쏟아부어 주었다. 내 마음속으로. 양주희 / 수필가이아침에 깨소금 마음 순간 음식 가지 반찬 바지 주머니
2026.01.13. 19:58
가게 가까이에 사는 지인이 점심시간에 맞추어 하얀 쌀밥에 시금치나물과 무나물을 보자기에 싸 들고 왔다. 밥에서 김이 나오고 시금치나물과 무나물 위에는 깨소금이 뿌려져 있다. 지인이 반찬 위에 뿌려진 깨소금이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묻는다. 깨소금의 뜻? 뭐 깨소금에는 소금이 안 들어가지만 풍미를 돋우지 않나. 요즈음에는 소금 들어간 깨소금도 있을까. 나는 빈약한 지식을 주절주절 읊었다. 내가 답다운 답을 내놓지 못하자 지인은 시금치나물을 가리키며 이 깨소금은, 이 시금치나물 네가 처음 먹는 거라는 뜻이라고 했다. 나를 위해 지금 막 만든 음식이고 이렇게 톡톡 뿌려 놓으니까 막 완성한 것 같고 먹는 사람에게 보여주는 요리한 사람의 마음. 아 대접받는 거네. 어쩐지 깨를 뿌린 반찬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더라고. 곰곰 따져보면 막 조리한 온기 있는 음식에 뿌려진 깨소금은 쉽게 눅눅해지거나 향을 잃기 때문에 음식을 내기 직전에 뿌려야 그 신선한 맛과 향이 온전히 지켜진다. 그래야 음식을 만든 사람과 그 음식을 먹는 사람 사이를 향긋하고 풍미 있게 이어준다. 그렇게 푸릇한 시금치 위에 별처럼 뿌려진 깨소금을 떠올려 본다. 우선 깨소금을 뿌린 반찬이 시야에 들어오면 먹기도 전에 기분이 좋아진다. 설령 상 위에 한두 가지 반찬뿐이라고 한들 정갈하게 느껴진다. 젓가락을 들어 음식을 가져오면 혀끝에 순간 음식의 풍미가 입속에서 터지듯 퍼진다. 깨소금을 씹는 오독한 식감은 또 어떤가. 깨소금은 시금치 무침이라는 큰 그림을 완성하는 마음의 마지막 붓 터치가 아닐까 싶다. 깨소금은 미리 만들어둔 반찬을 대충 내어주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건강과 행복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맛이 살아있는 최상의 상태로 차려낸 정성의 표현이다. 주인공이야 당연히 시금치지만 깨소금은 시각, 향, 식감으로 음식의 감각적인 요소를 끌어올려 원재료의 맛이 잘 전해지도록 돕는다. 그런 의미에서 요리한 사람의 마음이 고스란히 먹는 이에게 가 닿도록 돕는 깨소금이야말로 사람과 사람 사이 필수 불가결의 조연이다. 깨소금에 담겨 전해지는 감성이 풍부해서 좋다. 요리에서 원재료가 가진 맛처럼 사람의 본성이 깨소금을 타고 쏟아진다. 우리 가게 손님 무하마드는 가나에서 이민을 왔다. 20년 동안 어린 딸과 함께 살았다. 아파트가 좁은지 여름옷을 가져오면 다음 해 여름에 찾아간다. 겨울옷도 마찬가지다. 궁색해 보이지만 가나가 프랑스 지배를 받아서인지 옷 모두가 프랑스에서 만든 옷이다. 집에서 세탁해도 아무렇지 않을 옷을 가게에 맡기는 이유는 세탁 방법을 몰라서일 것이다. 꼬마 딸이 커서 친구와 룸메이트로 뉴욕으로 이사했다. 항상 어깨가 축 늘어져 피곤해 보이지만 성실하게 살아가는 그가 조금은 측은해 보이기도 했다. 몇 주 전 바지 두 개를 가져와 급하게 세탁을 부탁했다. 웬일인지 궁금했는데 너무 좋아 싱글벙글하면서 이야기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데이트한다고 수줍어하며 웃는다. 얼마나 좋은 일인가. 젊은 청춘 혼자 외롭게 딸을 키우고 이제는 새로운 삶의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 같아 나도 기뻐해 주었다. 바지를 찾으러 왔다. 바지 주머니에 돈을 조금 넣어 아무 말 하지 않고 내주었다. 바지 위에 깨소금을 함박눈 내리듯 쏟아붓고 소낙비 내리듯 쏟아부어 주었다. 내 마음속으로. 양주희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깨소금 마음 순간 음식 바지 주머니 프랑스 지배
2025.12.31. 17:10
또 잃어버렸다. 보청기를 오른쪽 한쪽만 끼고 다니다가 어디서 빠졌는지 모르겠다. 다행히 워런티가 있어 새것을 받았다. 보청기를 또 잃어버리지 않는 무슨 방법이 없을까 궁리를 하다 전가의 보도(?)를 빼 들었다. 끈을 사용하는 것이다. 오른쪽과 왼쪽 보청기를 연결하고 가운데는 집게가 달린 끈이다. 목에 걸고 다니기엔 좀 거추장스럽고 보기 흉하지만 할 수 없다. 나이가 들면 어린애가 된다고 바지가 왜 그렇게 흘러내리는지 모르겠다. 바지 치켜올리기에 바쁘다. 허리띠를 죄어도 흘러내린다. 요즘은 어깨띠를 사용하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할 수 없다. 건축 현장에서 사용하는 보통 띠보다 폭이 배가 넓은 공업용 띠를 구입해 매고 다닌다. 띠 위에 띠를 착용했다. 허리가 편안하고 바지도 덜 흘러내린다. 몇 개의 선글라스를 잃어버리고 난 위에는 끈을 메서 목에 걸고 다닌다. 선글라스를 바지 주머니에 넣으면 어느새 슬그머니 빠져나간다. 요즘 윗저고리 주머니는 좁아서 안경과 선글라스를 같이 넣을 수 없다. 지갑도 끈으로 허리띠에 연결했다. 유대(紐帶)란 끈과 띠를 말한다. 끈과 띠를 사용하여 물건을 잃어버리는 것을 방지한다. 시니어의 거추장스러운 모습이다. 그러나 끈이나 띠로 연결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아내다. 가끔 아내를 잃어버려 당황한다. 지난달 병원에 갔다 나오는 길이었다. 차에 타기 전 화장실에 들렀다 가기 위해 화장실을 찾았더니 복도 건너편에 남자 화장실 표지가 보인다.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오니 아내가 보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갔지만 거기에도 없었다. 주차장까지 가 보았지만 헛수고였다. 다시 2층으로 올라가니 아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도 화장실에 갔었다고 했다. 내가 또 실수를 저질렀다. 나 화장실 가는 것만 생각했지 아내에게 화장실 가고 싶지 않으냐고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 나, 나, 나만 생각하는 나. 몇 년 전 그랜드캐년을 세 번째 구경 갔었다. 나는 관광을 가면 수박 겉핥기로 구경하지만 아내는 확대경 눈을 가지고 구경한다. 나도 모르게 아내를 앞질러 가서 거리가 멀어지고 만다. 아내가 한 번은 나에게 항의했다. 혼자 걸어가는 데, 어떤 할머니를 만났는데 왜 남편하고 오지 않고 혼자 왔느냐고 묻더란다. 자기를 생과부로 만들었다며 핀잔을 줬다. 유럽으로 단체관광을 갔을 때였다. 가이드가 우리 부부를 유심히 관찰했다며 한마디 했다. 두 분이 같이 먹고 자고 하는 데, 낮에 관광할 때는 따로따로라는 것이다. 그는 나에게 “아저씨 이리 오세요”하더니 아내의 손을 잡게 했다. 그러더니 “앞으로는 이렇게 손을 꼭 잡고 같이 다니세요”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옛날이나 지금이나 끈으로 메기 전에는 힘들 것 같다. 윤재현 / 전 연방정부 공무원열린광장 끈과 남자 화장실 바지 주머니 바지 치켜올리기
2023.05.15. 18: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