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칫 그럴 듯한 사자성어처럼 보이는 이 말은 먼 거리에 있는 별까지의 거리를 구할 때 사용하는 방법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태양의 주위를 1년에 한 번씩 돈다. 사실은 지구가 태양을 완전히 한 바퀴 도는 기간을 우리가 1년으로 잡은 것이다. 그러므로 지구가 태양을 돌며 그리는 원의 한 쪽 끝에서 다른 쪽 끝, 예를 들어 춘분과 추분, 혹은 하지와 동지는 그 원에서 정확히 서로의 반대 방향에 위치한다. 어떤 별을 예로 들어 지구의 하지 때 그 별의 각도를 재고, 반 년을 기다렸다가 동지에 다시 그 별의 각도를 잰다고 하면 두 시점의 지구는 태양을 기준으로 정 반대 방향에 놓이게 된다. 게다가 우리는 지구와 태양과의 거리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삼각측량법에 의해서 그 별과의 거리를 구할 수 있다. 거꾸로 말하면 지구는 가만히 있지 않고 공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이다. 오랫 동안 인류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땅이 세상의 중심이어서 태양을 비롯하여 우주 만물이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는 것이 소위 천동설이다. 코페르니쿠스와 같이 일찍 눈을 뜬 선지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때까지 아직 망원경도 발명되지 않았고 천체 관측 기구도 정밀하지 않아서 정확한 측량을 할 수 없어서 반박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1838년 독일의 천문학자였던 프리드리히 베셀이 백조 자리에 있는 별 하나를 관찰하여 최초로 그 별까지의 거리를 알아내는데 성공했다. 백조 자리 별의 정확한 연주시차를 밝혀 내서 그 별까지의 거리를 알아 낸 것이다. 따지고 보면 간단한 기하 문제를 푼 것이지만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원의 내각의 합은 360°이다. 그러므로 원을 360등분 하면 중심각이 1°인 부채꼴이 된다. 다시 그 부채꼴을 3,600 등분 한다면 중심각은 1/3600도가 될 것이다. 이렇게 나온 각, 즉 1도를 3,600으로 나눈 각을 기하학에서는 1초라고 한다. 등식으로 표시하면, 1도=3600초가 된다. 천문학에서는 연주시차가 1초가 되는 별까지의 거리를 파섹이란 단위로 표시하기로 했다. 그러므로 연주시차를 측정해서 1초의 각도를 갖은 별까지의 거리를 1파섹이라고 하며 약 3.25 광년의 거리다. 먼 별 사이의 거리를 나타낼 때는 파섹이란 단위를 쓰면 편리하지만 태양계 내에서의 거리는 AU라고 하는 천문단위를 사용하는데 1AU는 태양에서 지구까지의 거리다. 그러니까 태양에서 지구보다 30배나 멀리 떨어져 있는 해왕성까지의 거리는 쉽게 30AU라고 할 수 있다. 참 간단하다. 그러므로 파섹은 별까지의 거리에 사용하고, 태양계 안에서 행성간의 거리는 AU를 쓰면 간단하고 편하다. 그러나 연주시차를 이용해서 별까지의 거리를 구하는데 지구 대기권의 산란 현상이 지장을 주고 또 아주 멀리 있는 별이나 은하의 거리는 연주시차가 너무 작아져서 정확히 구할 수가 없다는 단점이 있다. 현재 100파섹 정도의 거리가 연주시차를 이용해서 거리를 구할 수 있는 한계라고 한다. 어쨌거나 연주시차는 아주 작은 각도를 정밀하게 측정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는데 아무리 가까운 별이라도 연주시차는 1/5000도 정도라고 한다. 각도기의 1도를 5,000으로 나눌 수 있을 만큼 정밀한 관측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작가) 박종진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연주시차 지구의 하지 지구 대기권 반대 방향
2023.03.10. 15:38
우리말에서는 숨을 쉰다고 말합니다. 쉬다라는 말은 숨과 관련이 있는 말입니다. 우리말에서는 동사나 형용사의 어간이 명사와 관련되는 예가 많습니다. 우리 신체 기능 중에서 제일 소중한 것은 숨을 쉬는 것입니다. 숨을 더 이상 쉬지 않으면 죽습니다. 숨이 멎었다는 표현은 그대로 죽었다는 뜻입니다. 또한 숨을 거두었다는 말도 더 이상 숨을 쉬지 않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목숨이라는 표현은 그래서 나온 말입니다. 눈을 감는다는 표현은 비유적인 느낌이 있습니다. 눈을 감는 행위가 꼭 죽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은 듯이 잠을 잔다는 표현을 합니다. 눈을 감는 게 그저 잠을 자는 것이거나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숨이 막힌다든지 숨이 찬다든지 하는 표현에서 숨은 단순히 쉬는 것만이 아니라는 점도 알 수 있습니다. 숨을 급하게 쉬거나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것은 괴로움입니다. 힘든 일을 하거나 빨리 움직여야 할 때 숨이 차오릅니다. 숨을 쉬기가 어렵습니다. 긴장하거나 누군가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당할 때 아예 숨을 못 쉬기도 합니다. 죽을 것 같다는 말은 이럴 때 딱 알맞습니다. 너무 숨을 빠르게 쉬거나 쉬지 못하는 상태는 죽음 바로 앞의 괴로움입니다. 하지만 숨을 빨리 쉬지 않으면 진짜 죽습니다. 저는 가파른 산을 빠르게 오를 때 이런 극도의 고통을 느낍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고, 천천히 올라도 크게 문제가 없는데도 빠르게, 숨차게 오릅니다. 숨이 차면 힘들지만 그 후에 이어지는 시간은 마음을 편하게 합니다.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거친 숨소리가 위로가 되는 순간입니다. 숨은 나를 단련시킵니다. 등산을 즐기는 사람이나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경험하는 기쁨일 겁니다. 운동이라는 게 대부분 가쁜 숨을 느끼며 성장하게 하는 행위입니다. 우리말 쉰다는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지금까지 이야기한 숨을 쉬는 겁니다. 빠른 숨도, 거친 숨도, 가쁜 숨도 모두 숨을 쉬는 겁니다. 가슴이 터질 듯한 행위입니다. 괴롭지만 즐겁고, 죽을 것 같지만 살아있음을 느끼는 행위입니다. 숨을 쉬는 것은 살아있음을 증언합니다. 숨만 잘 쉬어도 충분히 훌륭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숨 쉬는 수련이 종교에서 기본인 것은 그러한 이유일 겁니다. 좌선, 요가, 명상이 모두 숨 쉬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운동과는 반대 방향의 숨쉬기네요. 쉬다의 다른 뜻은 휴식입니다. 휴식 역시 숨을 쉬는 겁니다. 가쁜 숨을 거두고, 참았던 숨을 서서히 토해내는 과정입니다. 다 토해내고 나면 시원한 마음이 몸을 풀어줍니다. 그런 우리의 모습을 쉬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쉰다는 말에는 나무 그늘 아래에서라는 배경이 잘 어울립니다. 그래서 쉬다를 의미하는 한자 휴(休)의 모양이 사람 인(人)과 나무 목(木)으로 이루어져 있을 겁니다. 숨 쉴 식(息)은 코를 의미하는 글자[自]와 심장을 의미하는 글자[心]가 합쳐져 있네요. 숨이 막히면 코와 심장이 괴롭습니다. 전헌 선생님과 소식을 나누다가 ‘헐떡헐떡이쉬엄쉬엄 보다 푹 쉽니다’는 말씀이 인상 깊었습니다. 급하면 더 숨이 많이 쉬게 되고, 그래서 다시 살아난다는 생각을 합니다. 산에 오르면 가쁜 숨이 고마울 때가 있습니다. 헐레벌떡 숨이 가쁜 시간이 지나면 그때는 너무 힘들어 죽을 것 같았지만 그다음부터는 힘들어도 두려움이 적어집니다. 숨이 가빠올 것은 알지만 그 숨도 다시 잦아들 것을 내 몸이 제대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 몸은 가빴던 기억을 안고, 더 큰 헐레벌떡도 견디어 냅니다. 다시 살아나는 몸입니다. 힘들어도 숨이 차도 잘 견뎌냅시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쉴 때가 찾아옵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나무 그늘 좌선 요가 반대 방향
2022.10.09. 1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