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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반려견과의 불편한 식사

LA 한인타운에서 가끔 찾는 식당에서 우연히 ‘불편한 식사’를 했다. 음식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평일 점심 시간이라 붐비는 시간이었는데 어떤 손님이 강아지를 데려왔다. 맹견은 아니었지만 키가 큰 종이라 작은 식당 내부에서 모든 손님들이 보게 됐다. 하얀 털에 귀여운 짓이라도 하는지 연신 웃음을 자아냈다. 누구도 문제삼지 않는 분위기였다.   문제는 이 큰 강아지가 식당 종업원에게 안기기도 하고, 여기저기 냄새도 맡으면서 스킨십을 나누는 모습을 보이면서 시작됐다. 강아지의 털이 여기저기 날렸지만 친절했던 종업원은 이내 그대로 쟁반을 들고 테이블에 음식을 서빙하기 시작했다. 이게 맞는 것인지 불편했다.     강아지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어려서 집에서 강아지를 키우며 신기하고 즐거웠던 기억이 아직도 있다. 충직하고 순수하고 바보처럼 주인을 따르는 강아지를 보노라면 큰 즐거움과 기쁨이 앞섰다. 잠도 같이 자고 음식도 나눠먹으면서 연대를 나눈 것은 물론이었다. 하지만 음식을 판매하는 식당은 다르지 않나.   조그만 강아지를 캥거루 새끼처럼 가슴에 품거나, 이동용 가방에 넣었다고 해도 결국엔 마찬가지다. 일부 견주들은 식당 음식을 몰래 강아지들에게 먹이거나, 물을 먹이게 종이컵을 달라고 주문하기도 한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도를 지나친 행동이다.   식당 업주가 가장 먼저 주의해야 한다. 보건국에서도 이를 심각한 위반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최악의 경우 수백 달러의 벌금에 영업 정지 처분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애견들의 식당 출입은 두 가지 조건에서만 가능하다. 먼저 보조견 또는 서비스 동물(Service Dog)일 경우다. 장애인이나 노약자, 시각 장애인 또는 정신 건강과 치료를 위해 법적으로 허용한 경우다. 이 조건에 해당해도 동물의 식당 내 음식물 섭취는 허용되지 않는다.   두 번째로 식당 자체가 개방되어 있는 경우다. 해당 업소와 패티오 공간이 애완견 또는 동물에게 허용된 공간이라는 것을 미리 고지하고 있다면 입장이 가능하다. 이렇게 애완견을 허용하더라도 테이블 위나 의자 또는 식기에 접촉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개들은 식당문이 아닌 패티오에 따로 마련된 입구를 이용해 출입해야 한다. 또 어떤 경우에도 종업원들은 패티오의 개와 접촉할 수 없다. 귀엽다고 쓰다듬거나 껴안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님들이 해당 식당을 이용한다면, 전혀 불편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종종 애완견들과 고양이들을 손님으로 보는 애견카페 같은 식당들도 생겨나고 있다.   LA와 OC 한인타운 주요 한식당들은 위생 규정을 이유로 애완견들의 입장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식당 입구에 고지하고 있다. 아예 밖에 묶어 놓도록 한다든지 차에 두고 오라는 메시지가 담기기도 한다.   고급 식당이건 그렇지 않은 식당이건 손님들의 위생과 안전을 위해 지켜야 하는 규정들이 있다. 자신이 사랑하는 강아지만큼 타인들의 위생과 건강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손님을 받기 위해서 모른 척 강아지 출입을 눈감아 주는 업주나 종업원들의 태도도 문제다. 누군가 신고를 한다면 티켓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혹시 방문한 식당에서 애완견을 보게 된다면 귀엽다고 만지지 말고, 규정에 따르라는 조언부터 해줘야 좋은 견주가 아닐까.   애완견을 키우면서 오랜 시간 함께 하자는 약속만큼이나, 타인에게 배려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사람들 사이에서의 약속도 지켰으면 한다. 최인성 / 사회부 부국장중앙칼럼 반려견과 불편 고급 식당이건 식당 종업원 강아지 출입

2025.05.19.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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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멘토가 된 반려견과 교감, 삶을 바꾸다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우리는 종종 영화를 통해 위안을 얻는다. 영화는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은 것들을, 생각을, 상상을, 바람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있다.     ‘프렌드’가 바로 그런 영화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눈물을 흘릴 준비를 하시라. 감동의 눈물을!   사람과 개가 친구가 된다는 사실은 하나도 놀라울 게 없다. 이미 개는 우리의 친구가 된 지 오래다. 그러나 개가 당신의 삶의 멘토가 된다면 어떨까.     영화 '프렌드'는 한 여성과 개 사이의 우정을 섬세하게 탐구한다.   뉴욕 맨해튼에 사는 작가 아이리스(나오미 왓츠)는 친구이자 멘토인 월터(빌 머레이)를 잃고 슬픔에 잠긴다. 거기에 더해 80킬로그램에 달하는 아폴로라는 이름의 점박이 그레이트데인을 자신에게 남기고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아이리스는 난감한 상황에 빠진다.     개를 키울 수 없는 작은 아파트에 사는 아이리스는 ‘캣 퍼슨(cat person)’이다. 그녀의 평온했던 삶은 혼란에 빠진다.   아이리스와 아폴로와의 동거, 위풍당당하면서도 다루기 힘든 아폴로로 인하여 애지중지하던 가구들이 파손되고 결국 퇴거 통지까지 받는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보다 실존적인 문제들이 아이리스의 마음을 흔든다.   새로운 룸메이트 아폴로의 존재는 아이리스에게 월터를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주인을 잃은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월터의 낡은 티셔츠를 붙잡고 아이리스를 쳐다보는 아폴로를 바라보며 아이리스는 월터를 읽는다. 삶과 죽음의 문제, 잃어버린 친구, 그리고 작가로서의 자신의 내면세계에 대하여 다시 생각한다.   이제 아폴로는 자살로 세상을 떠난 월터에 대한 슬픔의 짐을 지고 살아가야 한다. 아폴로처럼, 아이리스 역시 그 슬픔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모른다. 둘의 슬픔은 동일하다. 상실의 그늘 속에서 아이리스와 아폴로는 슬픔을 뒤로하고 서로의 존재를 받아들인다.   아이리스와 아폴로의 새로운 관계는 치유적 유대감으로 승화한다. 서로의 슬픔을 통해 교감하는 인간과 개의 감성 체계, 떠나간 친구의 소원을 지켜줘야 하는 우정, 그리고 그런 가운데 찾아오는 유대감의 치유! 영화는 아이리스의 슬픔만큼이나 주인을 잃은 반려견의 슬픔을 애틋하게 포착한다. 아폴로의 무표정은 너무나 주인을 닮았다.   오랜만에 보는 빌 머레이의 연기, 역시 그는 무표정 연기의 달인이다. 아이리스가 월터를 회상하는 장면들에 지속해서 등장하는 머레이의 연기는, 월터라는 인물이 어떻게 아이리스와 아폴로에 깊은 영향을 주었는지를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씁쓸하면서도 달콤한 드라마 ‘프렌드’는 전형적인 ‘뉴욕 영화’이다. 맨해튼의 멋진 풍경이, 문학적이고 비유로 가득 찬 대사와 함께 가슴 따뜻한 우정 이야기의 훌륭한 백드롭 역할을 해준다.   영화는 사랑했던 사람을 잃은 개의 슬픔을 사실적으로 연기한 빙(Bing)이라는 신인 배우의 섬세한 연기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개에게도 오스카 주연상이 주어진다면 빙의 차지였을 것이다. 그는 데뷔작에서 단순히 반려견 연기가 아니라, 그가 주인 월터에게서 배운 ‘진심’을 연기한다. 인간과 반려견의 유대 관계가 이토록 깊은 인생의 여정일 수 있음을 빙의 연기를 통해 실감하게 된다. 김정 영화 평론가 [email protected]반려견과 멘토 반려견과 교감 작가 아이리스 룸메이트 아폴로

2025.04.30.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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