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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 전 젊은 통기타 가수의 노래를 들으면서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 산다는 것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노래 뒤를 편안히 뒤따라오며 전체를 아우르는 기타 반주 때문이었다.   행여 늦을까? 처져 있는 느낌이 되지 않을까?의 염려를 무색하게 드러나지 않으면서 단단하게 뒤를 받쳐주는 편안함을 느껴보았다. 삶의 보조를 맞춰 걸음을 옮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았다. 삶의 고난 속에서 거친 발걸음으로 걸어보기도 하고 삶의 어려운 고비마다 발끝에 힘을 모아 뛰어보기도 한다. 때로 기쁨으로 다가오는 순간에는 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어 나를 지으신 이에게 기도하기도 한다.   나를 필요로 하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은 나를 고무케 한다. 나를 기다리는 것들이 굉장히 많아지는 정원의 아침이 밝아올 때. 다시 오겠다던 약속을 저버리지 않는 것들, 가령 예를 들자면 작은 묘목, 잔가지를 많이 가진 나무, 스스로 씨를 뿌릴 줄 아는 들꽃들이지요. 약속을 지키고 있어요라고 말하듯 잎을 펼치고 주먹만 한 꽃망울을 터뜨린다. 조용히 그들의 곁에 다가가면 반가움의 인사를 내 눈에 마구 쏘아대는 것이 아침햇살처럼 따스하다. 바람에 손을 흔드는 건지 잎사귀가 앞뒤로 팔랑거린다.   아침을 뒤따르며 저들의 걸음을 따라 한걸음 물러 걸어본다. 잘 살았다고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 걸음은 바른 걸음이 되었을 것이다. 숨을 고르고 흘러가는 계절을 바라보다 보면 세상의 행복은 다 나의 행복이 된다. 무슨 세상의 행복이 다 자기 행복이냐고 반문하겠지만 그건 사실이다. 작은 꽃 한 송이 피어나는 데에도 몇 계절이 바뀌어야 하고 수많은 낮이 지나고 밤이 찾아와야 한다. 꽃 한 송이 속에는 바람과 햇살과 밤하늘 별빛과 아침을 기다리는 그리움과 기대어 함께 자라고 피어나는 연민과 쏟아지는 빗줄기의 시원함과 한나절의 목마름이 층층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그 떨림이 내게서 사라지는 날이 오면 나는 사라진 존재로 남겨질 것이다. 모든 생명 있는 것들 앞에서 나의 숨이 거칠어진다면 나는 죽은 것이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뒤돌아 계절을 배웅하면서 점점 더 소중해지는 건 찰나 같은 시간이다. 그 시간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간다면 그 시간 속에 펼쳐지는 모든 것은 내 것이 된다.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세월을 탓하지 말자. 그 시간을 소중히 함께 걷다 보면 시간은 어느 새 나의 손을 잡고 시간의 은밀한 첫 시작부터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순간까지 친밀한 손잡음으로 연결해 줄 것이다. 퀼트의 조각처럼 엮어 이어지는 일상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려낼 것이다.   나이 들면서 소중한 것 하나는 노동이다. 노동은 거룩한 것이다. 그리고 노동의 결과는 늘 정직하다. 헛되게 부풀려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고무풍선처럼 김빠지는 일도 없을 것이다. 땀 흘리며 일 한 후 찾아오는 보람이랄까. 아니 행복이라 말해야 옳을 것이다. 아침이 밝아 정원에 호미 한 자루 들고 시작한 정원일은 정오를 훨씬 넘긴 후에야 허리를 편다. 소쿠리에는 한 움큼의 잡초와 시든 꽃가지와 부러진 나뭇가지와 마른 잎사귀들로 가득하다. 불필요한 삶의 찌꺼기들도 광주리에 가득 걸러지는 아침을 맞이하자.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당신의 정원에서 당신이 보내준 것들을 가꾸다 어느 날 당신이라는 나라로 돌아가고 싶다. 봄이 가고 다시 뜨거운 여름이 왔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밤하늘 별빛과 통기타 가수 묘목 잔가지

2025.06.30.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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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별밤

여행자의 쉼 / 머무르고 싶은 곳 머무르고, 쉬고 싶은 곳 자리를 펴는 게 아닌가 싶으오 / 별이 아름다운 곳에 머물고 있소 / 작은 캐빈 다락방에 누우면 / 선루프 통해 쏟아져 내리는 별빛 아래 / 행복에 겨워 바람에 기대어 살다 /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 그의 생각에 꽃피우고 한없이 펼쳐진 / 그의 세계 속에 편안한 나의 스타치오를 펼치고 있소 / 밀려오고 밀려가는 파도 따라 얼마나 걸었는지 / 하늘과 수평선 맞닿아 검은 푸루션 블루로 변해갈 때 즈음 / 시간은 멈추었다오 // 살아간다는 것 / 비밀스러운 문들을 열어가는, / 숨겨진 나와 얼굴을 마주하는, / 한 걸음 다가가지만 서먹해지는, / 빛이 그리운 날이오 / 뼈저리게 빛이 그리운 날 / 나도 모르는 발걸음은 호수로 향하고 있지 / 살아간다는 것 슬프지만도 / 그렇다고 행복에 겨워 사는 것은 더욱 아닌 것이오 / 삶을 시로 바꾸어 살고 싶은 사람이 있지 / 그런 아름다운 사람이 부러워지오 / 밤하늘 별빛과 함께 다가오는 얼굴 / 여행길에 만나 손잡아 주는 사람 / 노을 붉어지고 다음 이어가는 하늘 이야기 / 어둠 속 별빛 아래 걸으며 마음 뺏어가고 있소 / 별꽃 피고 바람 쉴 새 없이 / 밤 하늘 꽃향기 날라 주는 새벽 향해 / 별 꼬리 길게 내리는 별밤 / 멀리 교회당 보이고 시프러스 나무 / 눈 맞추는 고흐의 마지막 손놀림 / 그 떨림이 느껴지오 / 별꽃 피는 밤하늘 바라보다 잠이 들었나 보오 / 선루프 두드리는 빗소리에 잠이 깨었소 / 새벽이 오고 있소 / 별밤은 내 안에 잊힐 리 없소     작은 호수와 전나무 숲 길이 있는 비밀정원이 어딘가에 있으리라 막연히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시카고에서 선명하게 볼 수 없는 별자리들을 보고 싶었다. 누워서 하늘에 아롱진 별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촉촉이 물기를 먹은 나뭇가지가 봄을 향해 벌써 준비를 마친 듯 금방이라도 꽃눈을 터뜨릴 기세다.     봄날 같은 날 별을 보러 간다. 생각이 없으면 이룰 수 없는 꿈같은 시간을 붙잡았다. 처음 보는 낯선 풍경이 포근하게 다가왔다. 앞선 풍경들을 뒤로 지우며 도착한 곳은 입구부터 하늘을 찌를듯한 나무들이 잔가지를 바람에 흔들리며 반겨 주었다. 작고 아담한 다락방을 가진 오두막은 낯선 동양인을 맞이할 완벽한 준비를 마친 후였다. 선루프가 있는 다락방에 누우면 별빛이 쏟아져 내릴 것이다. 새벽 커피를 내리면 작은 오두막에 커피향이 가득하겠지.   호수를 향한 길고 반듯한 데크에 앉아 호수 위에 펼쳐질 밤과 새벽과 아침 사이를 머리로 그리며 바라보고 있다. 새벽녘의 숲길은 청량하기만 하다. 모든 것들이 살아나는 시간이요. 잠든 것들이 깨어나는 시간이다. 북쪽 하늘 북극성이 작은 별자리들을 거느리고 별빛을 거두는 시간이기도 하다. 어둠이 걷히고 점점 붉은 하늘가로 떠오르는 달무리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당신의 선물이었다. 별밤에 별들을 가슴에 담고 먼동이 틀 때까지 밤하늘이 보여준 기막힌 장면들은 어둠 속에 펼쳐진 빛들의 향연이었고 하루가 태어나고 있는 생명의 움직임이었다. 무엇을 주고라도 바꿀 수 없는 삶의 기쁨이었고 내게 주어진 나머지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이 되었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별밤 밤하늘 별빛과 하늘 이야기 하늘 꽃향기

2023.12.18.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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