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최신기사

[무대와 시선] 백남준의 당부, 강익중의 실천

‘요즘처럼 한국인임이 자랑스럽게 생각될 때가 없었다’는 한인을 많이 만난다. 그들은 한결같이 ‘모국 사랑으로 가슴이 뜨겁다’고 실토한다. 나도 그렇다.   지난 9월 4일 일어난 조지아 현대차 LG 에너지 솔루션 합작공장 건설현장 급습 사태를 충격 속에 지켜보며 마치 내 가족이 그 끔찍한 일을 당한 듯 분노가 차 올랐다. 특별히 미국에 사는 모든 한인이 그런 기분이었을 것이다. 모국 떠나 살면 모두 ‘열혈 애국자’가 된다더니 정말 그런 것 같다.   문화담당 기자로 일하던 2000년 4월, 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선생이 뉴욕 구겐하임 뮤지엄에서 대규모 회고전 ‘The World of Nam June Paik’을 열고 있을 때 그의 뉴욕 소호 스튜디오에서 가졌던 인터뷰가 요즘 자주 떠오른다.   당시 백남준 선생은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라 거동이 불편한 상태였다. 어렵게 인터뷰 승인을 받았는데 며칠 앞두고 비서에게 전화가 왔다. 백선생의 컨디션이 갑자기 나빠져 불가피하게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있다는 통보였다.     항공편에 호텔 예약까지 마치고 세계적 대가와의 만남을 들뜬 기분으로 기다리고 있던 중이라 눈 앞이 캄캄했다.   나름대로 이쪽 상황을 설명한 후 재고해 주기를 요청하고 기다렸는데 다음날 비서가 다시 전화를 주었다. “백남준 선생께서 모든 일정을 취소해도 한국신문사 기자는 만나겠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스튜디오에서 만난 백남준 선생은 신체적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어 신문 기자라는 사실 만으로 너무도 다감하고 친절하게 응대해 주었다.   인터뷰 중에도 계속 그는 한국 소식을 궁금해 했으며 이런저런 모국의 어려움에 마음 아파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데 백선생이  당부했다. “미국에 살아도 한국인임을 잊지 말고, 멋있게 잘 살아요.”   2006년 73세의 나이로 이 거목 아티스트가 세상을 떠났을 때, 미국 속 모든 한인에게 전하는 듯했던 ‘한국인의 정체성’ 당부가 더욱 크게 다가왔던 기억도 새롭다.   뉴욕에 거주하며 전세계에 한글을 홍보하고 있는 설치미술가 강익중(65)씨야 말로 백선생의 당부를 실천하고 있는 작가다.   홍익대학에서 서양미술을 전공하고 미국에 유학, 미술명문 ‘프랫 인스티튜트’를 졸업한 그는 가로 세로 3인치 조각에 다양한 방법으로 문화, 인간의 삶과 희로애락,  세계평화의 메시지를 담는 유명 아티스트다.   그는 독특한 작품으로 이미 세계적 대가의 반열에 올라 있다. 1994년에는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서 백남준과 ‘멀티플/다이얼로그’전을 함께 열기도 했다.   그가 지난해 맨해튼 뉴욕 한국 문화원 벽에 설치한 대형 한글 벽화(가로 26피트, 높이 72 피트)는 이미 한국을 상징하는 뉴욕의 대표적 작품이 됐다. 이 작품은 전세계 50여 나라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주제로 보내온 다양한 한글을 한 글자씩 써넣은 2만 개의 작은 조각작품으로 제작됐다.   그가 올해 한글날을 앞두고  또 하나의 근사한 한글 홍보 이벤트를 펼친다.   캠핑용 에어스트림 트레일러에 한글 조각 6000여 개를 붙이고 아이비리그 대학을 순회하며 한글 홍보 행사를 갖는다. 9월 26일부터 10월9일까지 보스턴을 시작으로 브라운, 예일, 유펜, 프린스턴, 코넬 등을 방문한다. 그리고 한글날인 10월9일 뉴욕 문화원으로 돌아와 학생들과 함께 한글의 우수함, 철학적 의미를 나눈다.   그는 한글은 단순한 문자가 아니라 우주의 질서가 담긴 철학이며 예술이라고 강조한다. “자음과 모음이 합쳐져 하나의 소리를 내는 한글 이야말로 조화와 균형, 연결의 의미를 품고 있어 분열된 이 시대를 치유하는 약”이라는 것이 그가 작품으로 보여주는 한글의 정의다.   올해는 유난히 강익중의 한글 사랑과 한글 순회전시가 아름답게 마음에 다가온다. 유이나 / 칼럼니스트무대와 시선 백남준 강익중 백남준 선생 설치미술가 강익중 당시 백남준

2025.10.06. 19:01

썸네일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