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세에서 44세의 한인 핵심 노동인력 중 이민 1세대의 비중이 타 민족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고, 경제활동을 하는 인구 비중도 상대적으로 많은 편에 속했다. 연방통계청이 2016년 인구센서스 데이터를 분석해 지난 26일 발표한 백인과 소수민족의 주간 소득자료에 따르면, 소수민족의 25세에서 44세 사이의 인구의 각 세대별 비중에서 한인은 1세대가 86.4%, 2세대가 13.2%, 그리고 3세대 이상이 0.4%로 나왔다. 이민 역사가 오래된 중국은 1세대가 77.4%, 2세대가 21.1%, 그리고 3세대 이상이 1.5%였다. 소수민족 전체로는 1세대가 80.1%, 2세대가 18.3%, 그리고 3세대 이상이 1.6%로 나타났다. 일본의 경우는 1세대가 54.1%로 가장 적었으며, 2세대가 19.8%, 그리고 3세대가 26.1%로 가장 캐나다와 됐음을 알 수 있다. 남아시아인은 1세대가 76.8%, 2세대가 22.7%, 그리고 3세대 이상이 0.4%이었으며, 흑인도 68.9%, 26.4%, 그리고 4.6%로 2, 3세대의 비중이 높은 편에 속했다. 유럽계의 백인들은 1세대가 9.7%인 반면 2세대가 15%, 그리고 3세대 이상이 75.3%로 나타났다. 다시 경제활동인구를 보다 세분화 해 볼 때, 한인은 25-34세가 54.2%, 35-44세가 25.7%, 그리고 45-64세가 21.4%로 백인이나 일본, 흑인, 중국인보다는 젋은이가 많은 편에 속했다. 반대로 필리핀, 남아시아, 서아시아, 라틴아메리카, 그리고 동남아시아보다는 적었다. 그럼 2015년에 연간 평균 고용된 주를 보면 한인 남성은 46.5주로 중국인의 47.1주를 제외하고 백인이나 다른 민족들보다 더 오래 고용을 유지했다. 평균 주급에서 한인은 1720달러로 일본의 1750달러를 제외하면 백인이나 중국인, 남아시아인 등 모든 다른 민족보다 많았다. 여성의 경우 한인은 44.4주로 중국인, 백인, 일본인, 필리핀인 등에 비해 적은 편이었다. 그러나 평균 주급은 1450달러로 모든 민족 대비 가장 높은 편이었다. 백인 여성은 1120달러로 대부분의 소수민족 여성들에 비해 낮은 편이었다. 각 민족별 특성 분석에서 중간 연령 부문에서 한인 남녀 모두 33세로 필리핀인, 남아시아인, 흑인과 같았으나, 백인이나 일본인의 34세보다는 많았고, 33세 중국인, 30세 동남아시아인, 31세 라틴아메리카인보다는 많았다. 밴쿠버, 토론토, 몬트리올 등 3대 도시에 거주하는 비율이 전체 한인 남성 중 76%로 모든 민족 중에 가장 높았다. 중국인과 남아시아인은 71%, 일본인은 52%, 필리핀인은 60%였으며, 백인 26%에 불과했다. 여성도 한인은 72%로 중국인과 남아시아인과 같이 같이 비중이 가장 높았다. 반면에 전원지역에 사는 인구 비중에서 한인 남성과 여성은 모두 5%로 백인이나 일본인을 빼면 4가장 높은 편이어었다. 이번 분석에서 한인의 주간 소득은 백인고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결론이다. 그러나 한인 남녀가 중국인과 함께 학사 학위 이상자 비율이 백인보다 35~40% 높은 것을 감안할 때 결국 높은 학력으로 백인과 같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봤다. 표영태 기자한인 백인 인과 남아시아인과 한인 학사 한인 남성
2022.01.27. 13:07
살인죄로 40년 넘게 감옥에 갇혔던 흑인 남성이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났다고 AP 등이 23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주리주 항소법원 제임스 웰시 판사는 잭슨 카운티 검찰이 요청한 사흘간의 증거 심리 끝에 케빈 스트릭랜드(사진·62)에 대한 유죄 판결을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그는 "스트릭랜드의 유죄 선고에 이용된 증거들이 판결 이후 철회되거나 틀렸다는 사실이 입증됐다"며 "유죄 판결에 대한 법원의 확신이 훼손돼 유죄 판결을 취소해야 한다"고 밝혔다. 스트릭랜드는 18세였던 1978년 미주리 캔자스시티의 한 주택에서 발생한 총기 살인사건 용의자로 지목돼 이듬해 유죄 판결을 받아 42년간 감옥에서 지냈다. 당시 주택에 괴한들이 난입해 총을 쏴 20대 3명이 숨졌다. 그는 사건 당시 자신은 집에서 TV를 보고 있었다며 범행을 부인했다. 그러나 총격에서 살아남았던 유일한 생존자 신시아 더글러스가 스트릭랜드를 범인 중 한 명으로 지목했다. 1978년에 열린 첫 재판에서 유일한 흑인 배심원이 스트릭랜드에 대한 무죄 의견을 고수해 배심원단 의견 불일치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두 번째 재판에서는 백인으로만 배심원이 구성됐고, 스트릭랜드는 물증없이 더글러스의 진술만을 근거로 50년간 가석방없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반전은 당시 스트릭랜드를 범인으로 지목했던 목격자 더글러스가 자신의 증언을 번복하면서 벌어졌다. 그는 가족과 친구, 동료들에게 당시 경찰이 스트릭랜드를 범인으로 지목하라고 압력을 가했다고 고백했다. 또 정치인과 법률 전문가들을 찾아 자신이 엉뚱한 남성을 지목한 것을 바로잡게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거짓으로 증언한 더글러스는 2015년 사망했다. 스트릭랜드는 워싱턴포스트(WP)에 "감옥에 있는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바다와, 그리고 어머니 무덤에 가고 싶다"며 "어머니의 묘지에 차가 멈추지 않는다면 차에서 뛰어내려 기어서라도 가겠다"라고 말했다. 배심원단 백인 백인 배심원단 배심원단 의견 살인 누명
2021.11.24. 2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