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서쪽에 떠 있는 '걸프 아일랜드' 알고 가면 큰 재미
메트로 밴쿠버 서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길게 뻗은 걸프 아일랜드(Gulf Islands)가 수려한 자연경관 뒤에 숨겨진 기상천외한 과거사로 주목받고 있다. 단순한 휴양지로만 알려진 이곳은 사실 흑마술 의식이 자행된 사이비 종교의 거점이자 국가 간의 영토 분쟁이 얽힌 역사의 현장이다. 최근에는 섬의 모든 생명체를 목록화하는 생태 보존 노력까지 더해지면서 인류의 욕망과 자연을 향한 경외심이 교차하는 다채로운 이야기를 뿜어내고 있다. 이 군도의 역사에서 가장 기괴한 대목은 1920년대 드 코시 섬(De Courcy Island)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사이비 종교 단체다. 스스로를 이집트 신의 환생이라 칭한 에드워드 아서 윌슨은 나나이모 인근에 공동체를 세우고 신도들을 규합했다. 하지만 이 단체는 시간이 흐르며 강제 노동과 고문, 살인 미수 등 각종 추문에 휩싸이며 타락의 길을 걸었다. 신도들에게서 빼앗은 금화가 여전히 섬 어딘가에 묻혀 있다는 소문이 돌 만큼 이들의 행적은 지역사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독특한 건축물과 편의 시설도 여행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프로텍션 섬에는 캐나다에서 유일하게 바다 위에 떠 있는 수상 펍(Dinghy Dock Pub)이 운영 중이다. 육지가 아닌 바다 위 부표 위에 지어진 이 펍은 지역의 명물로 꼽힌다. 메인 아일랜드(Mayne Island)에는 고대 공법인 진흙과 흙을 이용해 지은 코브 하우스(Cob House)가 자리 잡고 있다. 현대적인 캐나다 건축 양식과는 확연히 대비되는 외관 덕분에 전 세계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 이색 숙소로 인기가 높다. 영국과 미국 사이의 영토 분쟁이 치열하게 대치했던 돼지 전쟁(The Pig War)의 현장도 이곳이다. 1859년 산 후안 섬의 국경 획정을 두고 양국 군대가 맞붙는 긴박한 상황이 벌어졌다. 1846년 체결된 조약의 문구가 모호해 경계선을 어디로 둘지를 두고 갈등이 빚어진 결과다. 대치 기간 중 발생한 유일한 희생자가 농장의 돼지 한 마리뿐이었다는 점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이 분쟁은 1872년 스위스 제네바에서의 중재를 거쳐 현재의 국경선으로 확정됐다. 자연 생태계를 보존하기 위한 현대의 노력도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갈리아노 아일랜드에서는 섬에 서식하는 모든 생명체를 기록하는 대규모 생물 다양성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농장의 염소부터 숲속의 이끼, 버섯, 보이지 않는 박테리아까지 모든 종을 목록화하는 이 연구는 시작된 지 10여 년 만에 3,400종이 넘는 생물체를 확인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수려한 풍광 속에 감춰진 인간의 욕망과 갈등, 그리고 자연을 향한 진심 어린 탐구가 오늘날 걸프 아일랜드를 더욱 신비롭게 만들고 있다. [체크포인트 · 이것만은 꼭] 걸프 아일랜드를 방문할 계획이라면 각 섬의 독특한 역사적 배경을 미리 숙지하는 것이 여행의 질을 높이는 방법이다. 섬 사이를 오가는 페리 운항 시간이 계절마다 다를 수 있으므로 일정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특히 인기가 높은 수상 펍이나 코브 하우스 같은 명소는 예약이 필수다. 자연 보존 프로젝트가 활발한 만큼 산림이나 해안가를 산책할 때는 쓰레기 배출에 각별히 유의하며 생태계 보호 수칙을 지키는 태도가 필요하다. 섬 곳곳에 남아 있는 원주민들의 역사적 흔적을 존중하며 조용히 자연을 만끽하는 것이 진정한 걸프 아일랜드 여행의 묘미다. 밴쿠버중앙일보편집국아일랜드 밴쿠버 걸프 아일랜드 갈리아노 아일랜드 밴쿠버 서해안
2026.01.12. 1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