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힘의 시대를 맞은 한국 외교
2026년 새해 벽두부터 세계는 냉혹한 패권주의의 파고를 경험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사태가 그 사례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강대국들의 힘의 논리는 늘 약소국의 운명을 결정지어 왔다. 1905년 ‘가쓰라-태프트 협약’도 그 하나다. 미국의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특사인 미국 전쟁부(United States Department of War) 장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와 일본 제국의 내각총리대신 가쓰라 다로가 1905년 7월 29일 도쿄에서 은밀하게 맺은 협정이다. 실제 회담이 열린 날짜는 7월 27일이고, 회담 내용을 담은 각서(memorandum)상의 날짜는 7월 29일이다. 당시 태프트는 전쟁부 업무로 필리핀에 가는 길에 일본에 잠시 들러 이 협약을 맺었다. 이 협약의 목적은 일본 제국의 한국 식민 지배와 미국의 필리핀 식민 지배라는 양국의 이해 관계에 대한 상호 확인이었다. 이 협약으로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을 지배를 인정하고, 대신 미국은 일본의 한국 식민 지배를 묵인했다. 뿐만 아니라 통킹만 사건을 조작해 베트남 전쟁의 구실을 만들었던 사례도 있고, 핵을 포기한 우크라이나를 러시아가 침공하는 행태에 이르기까지 국제 사회에서 ‘힘’은 곧 ‘정의’로 둔갑해 왔다. 1989년 12월 20일, 조오지 H.W. 부시 행정부 시절 남미 파나마의 마누엘 노리에가를 숙청하기 위해 단행된 군사 공격의 2판을 보는듯한 느낌이다. 지난주 ‘하나의 중국’을 내세우며 대만을 포위하는 중국의 대규모 군사 훈련을 비판하기는커녕, 이 훈련은 평상시 군사 훈련이라며 애써 평가 절하한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는, 내가 크게 비판하지 않을 테니 곧 있을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에 관여하지 말라는 암시로, 역시 지역적 패권주의를 인정하는 이러한 힘의 원리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곧 이어 미국 우선주의(MAGA)를 외치는 트럼프 행정부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타국의 주권을 흔드는 행보를 2026년 새해 벽두부터 보이고 있다. 지난 1월 3일,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를 침공,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붙잡아 12시간 안에 뉴욕의 감옥에 수감한 사건은 남의 나라를 치는 것이 이제는 별로 대단치 않은 일처럼 여겨지는 패권 제국주의의 귀환을 상징한다. 겉으로는 마두로 대통령이 마약 카르텔과 테러리스트 들의 두목이라는 이유와 부패한 정치로 수백만의 이재민을 반출했다고 체포했지만 속으로는 반미 정책을 쓰는 그와 베네수엘라의 풍부한 석유 자본이 중국과 쿠바 등으로 가는것이 마음에 안들어 결국 중남미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베네수엘라 정권 교체를 위해 침략한 것으로 보인다. 많은 민주 단체들이 반발하고 있지만 문제의 속성이 그리 단순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러한 힘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유 우방이라 일컫는 국가들조차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일본, 유럽연합, 그리고 한국마저도 관세 장벽을 낮추기 위해 수천억 달러를 미국에 헌납하며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이는 곧 ‘힘이 없으면 언제든 당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방증한다. 한때 자유와 민주주의, 자유 무역의 수호자를 자처했던 미국은 이제 심각한 마약 문제, 천문학적인 국가 부채, 민주주의의 퇴행이라는 내부적 진통 속에서 보호 무역주의로 회귀하고 있다. 미국이 계속해서 세계의 패권국으로 남을지, 아니면 쇠락한 제국의 길을 걸을지는 스스로 마주한 거대한 기로다. 힘의 원리가 지배하는 세계 질서 속에서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은 명확하다. 한미동맹이라는 튼튼한 근간을 유지하되, 일본과는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도모하고, 중국과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하며 실리를 챙기는 균형 잡힌 외교가 절실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재명 정부가 표방하는 ‘국익 최우선 외교 정책’은 매우 시의적절하며 깊이 공감하는 바다. 강대국들의 패권 다툼 속에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대한민국의 이익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당당한 외교만이 우리를 지켜낼 수 있기 때문이다. 새해를 시작하며, 균형 잡힌 국익 외교를 통해 대한민국이 더 이상 강대국들의 눈치를 보는 나라가 아닌, 새로운 외교 위상을 확고히 하기를 염원한다. 힘의 논리를 넘어서는 지혜로운 외교로 우리 민족의 평화와 희망을 일궈나가야 할 때라는 생각이다. 김동수 / 희망과 평화재단 이사장·OCSD 평통 협의회 자문위원발언대 한국 외교 한국 식민 베네수엘라 침공 베네수엘라 사태
2026.01.14. 19:39